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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전략]




교과서대로 하는 꽉 막힌 경영, 아둔하기 짝이 없다. 문제가 터져도 제대로 해결 못 하고 눈치만 보는 월급쟁이 근성도 마찬가지다.

영악한 경쟁자들의 먹잇감이 되기 딱 좋다. 책에 나오는 그대로 하려면 인공지능(AI)을 쓰면 된다. 그래서 기발한 묘수풀이, 화끈한 문제해결이 아쉽고 ‘한 건’ 해낸 자랑스러운 업적이 출세의 영웅담이 되곤 한다. 그런데 짜릿한 성공은 마약과도 같아서 원칙대로 하는 평범한 일처리는 한심해 보이기 시작한다. 무리하면 나중에 덧난다는 신중론은 한가한 혹은 비겁한 소리가 된다.

하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아서 무리한 영웅놀이의 후폭풍으로 회사가 망가지는 경우도 많다. 그 원인과 해답을 생각해보자.

묘수풀이 vs 무리수
안 되면 되게 한다. 어떻게든 풀어낸다. ‘해결사 K 사장’의 브랜드다. 세상 물정 모르는 2세 승계 회장님 눈에는 최고의 전략가이자 해결사로 보인다. 야심만만한 임직원들은 그의 화끈한 영웅담을 흉내 낸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해결사 K 사장이 벌인 일들은 골칫거리로 가득하다.

기발한 묘수풀이로 알려진 금융계약은 시장 상황에 따라서는 회사가 거덜 날 수도 있는 내용이고, 신통하게 따온 사업은 나중에 더 큰 손해로 돌아올 담합의 결과였다. K 사장이 여기저기 자기 얼굴로 읍소해서 해결했다는 일들은 문제를 잠시 덮어두었을 뿐이고, 그 대가로 회사의 기밀을 고스란히 넘겨준 경우도 있었다.

순진한 2세 회장님이 뒤늦게 문제를 발견해도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K 사장은 회사 나가면 그만이고 ‘유능한 경영자’로 포장된 그의 경력은 정치적 자산이 되어 있다. 화끈한 문제해결을 보고받다 보니 어느새 공범이 되어버린 회장님은 폭탄이 된 K 사장의 입을 신경 써야 한다. “재주 피우는 놈들 조심하라”는 선대 회장님의 말씀은 비슷한 일들을 겪은 체험담이었는지도 모른다.

K 사장의 무리수에 질려버린 회장님은 이젠 반대로 원칙과 정도(正道)만을 강조한다. 선제적 정보 파악과 문제해결에 나서는 사람은 졸지에 외부세력과 연결되어 회사 등치는 위험한 인물로 찍힌다.

그렇다고 K 사장의 무리한 일에 신중론을 펴다 찍혀서 물러난 사람들이 복권되는 것은 아니어서 입 다물고 눈치 보며 살아남는 처세술이 모두의 마음속에 새겨진다. 결국 회사는 사술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눈 뜨고 당하는 무능한 집단이 된다. 묘수풀이와 무리수 사이에서 나름 애쓴 사람들만 억울할 뿐이다.

묘수풀이 3번이면 바둑 망친다는 말이 있듯이 기발한 책략, 화끈한 문제해결은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독이 되는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교과서에 나오는 남들 다 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이길 수가 없다. 남들이 바보가 아니니 예측해서 대비를 하고 반칙과 사술에 내부를 교란하는 이간질, 심리전까지 나오면 속수무책이 된다.

유능한 경영자는 무턱대고 도박에 나서서 이겼다고 좋아하고 졌다고 남 탓하기보다 필요한 시점에 득실을 판단해서 결정적 순간에 위험부담을 안고 승부를 건다. 자기 돈 아니라고 무턱대고 질러대는 ‘먹튀’를 가려내고 세심하게 책임과 보상을 따진다. 묘수풀이와 무리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셈이다.

점수에서 크게 뒤진 권투선수는 막판 KO를 노리고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왜 무리한 펀치를 던지느냐고 다그치면 선수는 ‘무난하게 지는’ 방법을 찾는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화끈한 업적’만 요구하면 무리한 수술에 나서서 환자를 잃고, 반대로 책임만 물으면 위험한 수술은 아예 피해버려서 살릴 수 있던 환자가 죽는다.

명장면의 함정과 전략의 현실게임이론을 생각해 보자. 1등과 2등이 같은 조건에 있다면 2등은 다른 전략을 써야 이긴다.

바람과 물결에 의지해서 레이스를 펴는 요트경기가 대표적인 예인데, 2등이 다른 전략으로 승부를 걸다 실패하면 2등도 못 지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위험한 무리수인지 과감한 도전인지는 판단의 타당성으로 볼 일이지 결과만으로 평가한다면 여론재판에 불과하다.

적절한 시점에 상황에 맞게 계산된 위험을 부담하는 것이 전략의 지혜지만, 사람들은 소설과 영화에 나오는 기발한 전략에 중독되어서 현실과 판타지를 혼동하고 무책임하게 묘수풀이를 기대한다.

역사에 기록된 탁월한 전략은 전쟁의 수많은 사연 중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뽑아낸 것이고, 기록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반영돼 있다. 소설과 영화는 여기에 재미를 위한 각색이 더해진 것인데 제갈량의 비단 주머니 같은 비책을 시도 때도 없이 요구하면 하던 일도 망가진다.

요즘 인기 있는 역사 콘텐츠에는 평생 전투 한 번을 못해 본 책상물림 선비들이 장군들에게 매복과 기습을 안 한다며 호통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 급히 징집한 농민군에게 그런 전술이 가능할 리가 없고 전쟁에 닳고 닳은 상대가 호락호락 당한다는 보장도 없다.

적을 기만하고 이간시키려면 정보전 역량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상대가 바보가 아니라면 아군도 같이 속이는 어려움이 따른다. 여진족과 전투하면서 기만·유인전술을 쓴 장군을 나라의 위신을 손상시켰다며 탄핵한 선비들의 나라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요동에서 압록강까지 후퇴하는 을지문덕의 군대는 무력한 패잔병으로 매도되다 해임되고, 몰리다 못해 적진에 가서 시를 쓰고 온 을지문덕은 간첩으로 몰려 즉결처분을 받을 것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기발한 전략을 위해서는 남다른 준비가 필요하다.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은 판옥선과 화포, 이를 운영하는 작전 역량이 갖춰졌을 때 가능하다. 을지문덕의 기만·유인전술은 밀리는 전황에도 동요하지 않고 반격을 준비하는 국가의 전쟁 역량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훈련도 장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남다른 묘수를 펼치려면 더 큰 위험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풍림화산(風林火山)손자병법은 군사를 움직일 때는 바람(風)처럼 빠르게 하고 나아가지 않을 때는 숲(林)처럼 고요하게 머물며, 치고 나갈 때는 불(火)처럼 맹렬하게, 지킬 때는 산(山)처럼 무겁게 버티라고 가르친다.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다케다 신겐의 이야기를 상징하는 말로 유명해졌는데 원문에는 구름 속 별과 같이 숨고 벼락처럼 치고 나가라는 얘기도 더해진다.

바람처럼 불처럼 나갈 때와 숲처럼 산처럼 버틸 때를 나눈 것은 기발한 책략과 안정적 운영을 조화하면서 필요할 때 위험을 무릅쓰고 힘을 모아 돌파하는 경영자의 균형을 의미한다.

모든 부대에 특수전을 요구할 수도 없고 아무리 막강한 특수부대라도 1년 365일 고공낙하와 해상침투를 강행할 수는 없다. 맡은 역할과 필요한 상황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들떠서 007 첩보 요원처럼 설치면 회사는 엉망이 된다.

사실 묘수풀이와 무리수 사이의 줄타기, 기발한 책략과 안정적 운영의 조화는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기발한 책략과 화끈한 해결사’의 한심한 스토리가 반복되는 것은 이런 세상사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경영자의 무능함 때문이다.

‘죽기로 싸우자’는 무책임한 주장이 충성으로 포장돼 권력투쟁의 승리로 이어지고 ‘어떻게든 해낸다’는 투지로 포장된 먹튀 꼼수가 경영자의 허영과 불안을 달래주는 판에서 제대로 된 경영의 지혜는 설 자리가 없다. 곡학아세(曲學阿世)는 이런 현실에 좌절하다 편승한 선조들의 지혜였는지도 모르겠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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