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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당시 수낵 영국 총리,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G7 정상회의에서 나란히 섰다. 수낵 총리는 이번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마크롱 정부와 바이든 정부의 운명도 기로에 놓여있다.
영국 보수당의 14년 집권이 막을 내리고, 노동당이 화려하게 귀환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650석 가운데 과반을 훌쩍 넘는 412석을 확보해 압승을 거두면서 말이죠. 14년 전인 2010년과 반대입니다. 당시 13년간 집권했던 노동당은 2010년 총선에서 참패하고 보수당에 정권을 내줬습니다. 10여년 주기로 영국 민심은 좌파 정당과 우파 정당을 번갈아 손을 들어주는 상황입니다.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이웃나라 프랑스 역시 선거 열기로 뜨겁습니다. 마크롱 정부의 운명은 오는 7일 총선 결선투표 결과에 달려 있습니다. 중도 성향 집권 여당의 자리를 위협하는 쪽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초강경우파'입니다. 지난달 30일 1차 투표 결과를 보면 '초강경우파' 국민연합(RN)이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초강경우파 정당의 집권 가능성이 이 정도로 가시권에 들어온 건 프랑스 역사상 처음입니다. 물론 결선투표를 앞두고 '반 RN' 연대가 결성되면서, RN이 과반을 넘기는 '절대 다수당'에서는 멀어지고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그 결과, RN 대표인 조르당 바르델라가 총리직에 오를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 "누적된 분노, 집권 정당에 대한 피로감"

두 나라 유권자들의 불만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려운 경제, 늘어나는 이민자, 줄어드는 복지 혜택 등. 한마디로 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미국 ABC 방송은 영국 보수당과 프랑스 마크롱 정부, 여기에 대해 미국 바이든 정부가 처한 위기는 공통적으로 집권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피로감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습니다. 유권자들은 한 정당이 너무 오래 집권하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영국 유권자들이 2019년 총선에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완수를 공약으로 내건 보수당에 표를 몰아줬다 실망했고, 이번 총선은 그동안 누적된 좌절과 분노가 한꺼번에 표출된 결과라고 평가했습니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물가 급등과 실질 임금 감소 등에 분노한 유권자들이 집권당을 매섭게 심판한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이는 최근 프랑스와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주요국 총선에서 집권당이 고전한 바 있고, 이란 대선에서는 야당인 개혁당이 선전하고,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위태로운 상황과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 역시 보수당의 14년 집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좌절감을 패배의 주요인으로 꼽았습니다. 르몽드는 보수당 집권 기간 브렉시트와 팬데믹, 우크라전쟁 여파로 인한 경제적 타격 등을 겪으면서 영국의 상당수 유권자가 나라의 미래에 대해 비관하게 됐으며, 이런 분위기가 선거 결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총선 1차 투표에서 유권자들이 중도 성향의 집권 여당 대신, 양 극단의 진영에 표를 몰아준 건 정권 심판 성격이 강합니다. 재임에 성공해 7년째에 접어든 마크롱 정부에 대한 기대가 분노로 바뀌었고, '마크롱주의(마크롱 대통령식 정책)'를 무너뜨리자는 민심이 팽배해진 탓입니다.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마크롱만 아니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는 '초강경우파'의 돌풍으로 나타났습니다.

■ '요람에서 무덤까지' 노동당의 귀환

그렇다면 두 나라 유권자들의 불만은 비슷한데, 왜 영국은 좌파 정당을, 프랑스의 상당수 유권자는 극단적 우파 정당을 선택한 걸까요.

2019년 총선에서 영국 유권자들이 보수당에 압도적인 표를 몰아줬을 때, 걸었던 기대는 브렉시트를 통해 영국의 전성기를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내 집 마련과 안정적인 일자리 등 장밋빛 희망에 부풀어있었지만 보수당 집권 기간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장기적인 긴축 정책으로 고물가와 공공 서비스 악화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공공 의료 서비스가 무너진 데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습니다.

영국 노동당 키어 스타머 대표. 노동당의 승리로 신임 총리로 취임했다.
높은 물가 상승률은 경제 성장률 정체와 맞물려 생활비 위기도 초래했습니다. 영국의 물가상승률은 2022년 10월 11.1%로 정점을 찍었다가 이후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상황입니다. 이로 인해 기록적인 수의 사람들이 푸드뱅크에 의존하고 있고, 영국인 4명 중 1명 꼴로 끼니를 거른다는 조사도 나왔습니다. 직장을 잃고 돈이 없어 집에서 내쫓기는 세입자가 급증하며, 지난해에는 '생애 첫 주택 구매자'보다 노숙자가 더 많았던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한 여론조사업체의 올해 설문조사에서 영국인의 78%가 '경제가 좋지 않다'고 답했는데, 이는 올해 조사 국가 중 가장 암울한 전망이었습니다.

■ "이민자 문제도 낙제점…자랑할 게 없어"

영국 유권자들은 이번 총선의 4가지 핵심 이슈로 경제와 인플레이션, 국가의료시스템, 그리고 이민자 문제를 꼽았습니다. 그럼 브렉시트 완수에 주요 원동력이었던 이민자 문제 해결은 어떻게 됐을까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영국행 이민 행렬이 줄어들기는 커녕 2022년과 지난해 유입된 이민자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이 때문에 총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영국인들은 브렉시트 이후 보수당 정부의 이민자 문제 해결 방식에 훨씬 더 불만족스러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수당 정부의 이민자 처리에 대해 '매우 또는 상당히 불만족스럽다'는 응답이 브렉시트 전인 2016년 4월에는 62%였던 데 비해 올해는 69%로 더 늘었습니다.

이를 두고, 런던 퀸메리 대학교 정치학 교수이자 '브렉시트 이후 보수당'의 저자인 팀 베일은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24'와의 인터뷰에서, "보수당은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국경 통제와 관련해 성과나 혜택 측면에서 크게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영국 보수당의 리시 수낵 총리가 총선 참패에 책임지고 사퇴했다.
결국, 무엇 하나 뚜렷하게 잘한 게 없는 보수당은 유권자들에게 외면당했습니다. 대신 유권자들은 과거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사회복지 정책을 탄생시킨 노동당에 정권을 다시 맡기면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라는 기대 심리가 노동당의 역대급 승리로 이어졌다는 분석입니다. 또 좌파 색채를 옅게 하고, '중도 좌파'를 표방한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의 전략도 영국 유권자들이 좌파로 선회한 핵심 이유 중 하나로 꼽힙니다. 스타머 대표는 "민족주의의 부상은 노동당이 정치에 불만을 느끼는 많은 사람의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 "기득권 정당에 다 실망… '극우' 왜 안돼?"

프랑스 역시 최근 몇 년 간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선진국 44개국 중 37개국에서 2022년 1분기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전년도 같은 분기보다 최소 두 배 이상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여기에는 프랑스도 포함됐습니다. 프랑스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초 정점을 찍은 이후 1년 동안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프랑스 국민 4명 중 3명은 자국의 현재 경제 상황이 여전히 나쁘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정치적 파급 효과도 두드러졌습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세금 인하와 물가 동결, 최저임금 인상을 약속하는 이유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와 입소스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 4명 중 1명은 경제와 관련해서는 국민연합 RN을 가장 신뢰한다고 답했습니다. RN 지지자들은 "좌파, 우파, 중도에게 다 기회를 줘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RN에도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극우'라는 게 무슨 상관인가"라고 반문합니다.

보수당 대 노동당 양자 구도가 굳어져있는 영국과 달리, 프랑스 정치권은 극좌부터 좌파, 중도 성향의 범여권동맹, 우파, 극우까지 스펙트럼이 좀 더 넓고, 판세를 뒤집기 위해 정당간 합종연횡도 빈번한 편입니다. 다시 말해 선택지가 더 다양하고, 어느 정당이 누구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 매번 선택지의 성격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1차 투표에서 RN에 표를 던진 상당수의 유권자들은 "지금껏 가보지 않은 길에서 어쩌면 자신들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있습니다.

프랑스 국민연합 RN이 총선 1차 투표에서 압승을 거뒀다.
프랑스는 다른 EU 회원국과 비교해 평균 수준의 이민자 수를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최근 프랑스 내 외국인 혐오 정서가 확산하는 점도 RN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습니다. RN은 반이민정책을 강화해 이민자 추방을 늘리고, 순수 프랑스 국민에게만 각종 사회복지 혜택을 주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이런 자국 우선주의 메시지는 남녀노소를 불문한 다양한 유권자층에 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두고,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최근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에서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극우가 득세하고, 중도좌파가 퇴조하고 있는 반면 영국에서는 노동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영국이 뜻밖에 '사회민주주의의 보루'로 떠올랐다"고 보도했습니다.

프랑스에서 국민연합 RN의 약진, 그리고 영국에서 노동당의 귀환은 인기 없는 집권 여당 덕에 얻은 반사이익 성격도 큽니다. 그런 만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유권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는 실망감과 분노로 변해 심판의 화살로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끝사랑'이란 게 존재하기 어려운 정치판에서 유권자들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각 정당이 민심에 끊임없이 귀기울여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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