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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제재·코로나19로 민생고 악화…'히잡시위'로 누적된 불만 투표로 표출
보수층 결집 우세 전망 무위…"1차기권 유권자, 최악 우려해 개혁후보 찍은 듯"
'최종 결정권' 최고지도자 틀 안에서 히잡 단속 완화 등 사회정책 완화 전망


이란 대선 결선 투표 기표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스탄불·서울=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강훈상 기자 = 이란 대통령선거에서 예상을 깬 개혁파 후보 마수드 페제시키안의 당선은 이란 내부에 팽배한 정부를 향한 불만이 투표로 표출된 것으로 해석된다.

페제시키안이 다선의원이긴 하지만 이번 대선 전까지만 해도 거의 무명에 가까운 정치인이었다는 점에서 이란 국민은 사실상 '막연한 기대'에 표를 던진 셈이다.

그만큼 이란이 처한 여러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선 정치적 변수와 변화가 시급하다는 데 민심이 쏠렸다고 할 수 있다.

이란 국민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만성적인 경제난과 민생고다.

이란은 천연자원과 노동력이 풍부하지만 50여년에 걸친 미국과 유럽의 제재를 받는 동안 경제가 고립과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15년 서방과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타결로 돌파구를 찾는 듯했으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전례없는 고강도 제재를 부활하자 이란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을 2년 넘게 겪으면서 민생고는 더 악화했다.

최근 10년간 달러 대비 환율이 20배로 뛰었고 연 50% 안팎의 물가 상승, 약 20%에 달하는 젊은층 실업률은 서민층 일상을 짓눌렀다.

여기에 2021년 집권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강경 보수 일변도 정책은 큰 반감을 불렀다. 2022년 전국적으로 확산한 '히잡 시위'로 팽배한 반정부 여론이 분출했으나 정부가 이를 유혈진압하고 대거 사법처리해 '강제 봉합'했다.

민생고와 사회통제에 대한 불만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 투표 보이콧으로 이어져 올해 초 총선과 지난달 대선에서 잇따라 최저 투표율로 나타났다.

라이시 대통령의 헬기 추락사고로 예기치 않게 성사된 이번 대선 역시 보수파의 승리가 점쳐졌으나 유일한 개혁진영 후보인 페제시키안이 역대 최저 투표율 속에 '깜짝 1위'에 오르면서 돌발 변수가 생겼다.

페제시키안이 일으킨 '변화의 바람'은 결선 투표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김혁 한국외국어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는 "1차 투표에서 허를 찔린 보수층이 결집해 강경 보수인 사이드 잘릴리 후보가 우세하다는 전망이 대체적이었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이란이 겪는 고립과 경제난을 해결하려면 미국 등 서방과 관계가 변화해야 하는데 1차 투표에서 기권한 유권자가 최악의 상황을 우려해 (보수 후보 당선을 막으려고) 결선 투표장에 나와 개혁파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결선 투표율은 48.7%로 1차보다 약 10% 포인트(약 600만표) 높았다.

페제시키안 후보는 1차보다 약 597만표를 더 얻었고, 잘릴리 후보는 1차에서 본인을 포함한 보수파 후보 3명이 얻은 표를 단순 합산한 만큼 득표했다.

1차에서 기권했다가 결선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대부분이 개혁파 페제시키안 후보를 선택했다고 해석될 만한 대목이다.

강경 일변도였던 외교·사회 정책에 대한 변화와 경제난 해결을 바라는 이란 민심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란 대선 역사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양상은 아니다.

1979년 이란 이슬람공화국 건국 이후 이란 민심은 대선에서 보수와 개혁 진영을 주기적으로 오갔기 때문이다.

이란 대통령은 임기 4년으로 1차례 연임이 가능해 대체로 8년 주기로 보수와 개혁 성향의 대통령이 당선됐다.

이번엔 예외적으로 라이시 대통령의 급사하면서 3년만에 대선이 다시 치러지긴 했지만 이란 민심은 보수 강경파 정부 다음으로 개혁파 대통령을 다시 선택했다.

이란 대통령에 당선된 마수드 페제시키안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예상 외로 빨리' 개혁파 정부가 새로 들어서게 됐지만 이란 통치 구조상 대대적이고 전격적 변화 가능성은 작다는 게 일반적 전망이다.

신정일치 체제의 이란은 정책의 최종 결정권자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아닌 최고지도자로 특히 국방, 안보, 외교와 같은 국가 주요 정책은 최고지도자 결심에 따른다.

김 교수는 "이란은 대통령 권한이 제한적이어서 실질적인 대내외 정책의 변화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강경 보수 정책에 대한 이란 민심의 제동이 확인된 만큼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완화된 사회 분야 정책은 기대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페제시키안 후보가 공약한 히잡 단속 완화와 같은 온건한 사회 정책은 바로 시행돼 선거로 나타난 민심에 부응하되 서방과의 관계 개선은 당장 실행되지 않는 '통제된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뜻이다.

결선 투표율이 1차보다 10%포인트 높아지긴 했으나 70%를 넘었던 역대 대선과 비교하면 여전히 저조했다. 1차 투표에서 개혁파 후보의 이변으로 투표에 대한 관심이 커지긴 했지만, 정치에 대한 실망을 단번에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20년간 보수와 개혁 정부를 모두 겪어봤지만,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을 본 이란 국민의 정치 불신이 여전하다는 사실이 이번 결선 투표에서도 드러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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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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