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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동서고금 화장(化粧)은 여인들 부속물이며, 숙명이고, 놀이다.

이집트 유물 중 걸작으로 평가받는 기원전 14세기 파라오 아크나톤의 왕비 네페르티티 채색 흉상을 봐도 그녀는 화장한 모습이다.

네페르티티 흉상
베를린 신 박물관 소장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고 분을 바르며 옷매무새를 만지는 여성 모습은 남성이나 여성 화가 모두가 숱하게 그린 그림이다.

인상주의 이후 작품 중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그림은 베르트 모리조(1841~1895)가 1880년께 완성한 '화장하고 있는 여자'다.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며 인상주의 전시회에 빠짐없이 참가한 모리조였지만, 여전히 여성 사회 활동이 존중받지 못하던 시절이어서 그녀는 여성들 실내 활동을 주로 그렸다. 거울 보는 뒷모습으로 선명하지 않게 그린 건 여성 활동 제약을 은연중에 암시한 것일까?

'화장하고 있는 여자'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비슷한 시기, 미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한 존 화이트 알렉산더(1856~1915)는 여성들 일상을 윤택하게 그린 화가였는데, '머리 손질을 하는 젊은 여인'(1890)에서 그녀 표정과 자세는 당당하고 풍요롭다.

서너 가지 색만 사용했지만, 녹색 원피스와 검정 허리띠는 심적 안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머리를 만지는 자세에서 여성 고유의 매력을 흠씬 풍긴다.

'머리 손질을 하는 젊은 여인'
개인 소장


입체주의, 표현주의 등 다양한 화풍을 실험한 네덜란드 화가 레오 게스텔(1881~1941)이 그린 '안방의 여자'(1910)는 모더니즘 시대 돌입에 걸맞게 명쾌한 표정과 도발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모리조가 그린 거칠고 흐릿한 풍경에서 서너 발 나아간 모습이다.

'안방의 여자'
개인 소장


미국 인상주의 화가 프레더릭 칼 프리스크(1874~1939) 역시 다양한 여성 활동을 즐겨 그린 화가다. 스스로 '빛을 탐구한 화가'로 부를 만큼 그의 그림엔 파스텔 색조를 입은 화사한 여성들이 밝은 빛 아래 유희하듯 움직이고 있다.

'무대에 오르기 전'(1913)이라는 작품 제목에서 보듯 공연에 나서는 한 여성이 화장하는 모습은 그림 색조처럼 밝다. 거리낄 게 전혀 없어 보인다.

'무대에 오르기 전'
커먼 뮤지엄 오브 아트 앤 가든 소장


시대를 당겨 동양을 본다. 일본 우키요에 화가 기타가와 우타마로(1753~1806)는 미인도에 천착한 화가다. '머리 매만지는 여인'(1793) 등 화장하는 유곽 여인들을 다수 그렸다.

다양한 표정과 미세한 손짓 등 개성적인 표현을 통해 집합명사로서의 여성을 넘어서고자 했던 노력이 엿보인다.

'머리 매만지는 여인'
뉴욕 공립도서관 소장


성리학 영향으로 보수적이었던 조선 회화에서 화장하는 내밀한 여성을 그린 그림은 무척 찾기 어렵다.

한 그림에서 보는 조선 여인의 화장 모습이다. 복장이나 자세로부터 여염집 규수가 아님을 감지할 수 있으며, 들뜬 표정에서 시간을 함께 보낼 연인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상상하며 감상한다.

'미인 화장'(18세기)으로 불리는 이 그림은 '단원'이라는 낙관 때문에 김홍도의 것으로 전해지지만, 붓질 흔적이나 묘사력, 그림의 흥취에서 김홍도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미인 화장'
서울대 박물관 소장


바야흐로 남자도 화장에 열중하는 시대지만, 오랫동안 화장은 여자의 전유물이었다. 자신감을 찾기 위한 방법이든, 타인에게 잘 보이려는 수단이든, 단순한 소일거리든, 화장하는 여성은 자신을 가꾸는 데 몰입하는 생동에 찬 모습이다.

때로 화장 시간은 길어진다. 화장은 기다림에 지친 남자와 다툼을 유발하기도 한다. 남자들이여, 기다려라. 그림에 드러난 것처럼 여자들이 행복해하는 시간이다. 지루함에 몸이 꼬인다면, 그대들도 거울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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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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