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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 저자 피터 자이한
“미국이 만든 세계화, 그로 인한 도시화가 저출산 불러”
“저출산 시대, 생산 시절 해외 이전으로 새 경제 체재 구축해야”
“한국, 멕시코·베트남·인도네시아와 협력해야”


한국 정부가 지난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쏟아부은 예산은 279조9000억 원.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당장 올해 3월 출생아 수는 1만9669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7.3% 감소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물론 현 정부는 각종 재정 지원책은 물론 출산을 꺼리게 하는 경제·사회 구조를 바꾸는 처방을 내놓으며 ‘아이를 낳아라’고 외친다. 하지만 이 방법이 최선일까. 저출산 관련 책을 쓴 저자로부터 저출산의 원인과 해결법, 저출산에 직면한 한국이 나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편집자 주]

어떤 문제든 해결을 위해선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우선이다. 한국이 직면한 ‘저출산’ 문제를 풀기 위해 저출산이 빚어진 원인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지정학 전문가이자 글로벌 인구·안보 전문가인 피터 자이한은 저서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영문 제목 The end of the world is just the beginning)에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세계화를 일으켰고, 세계화 덕분에 역사상 처음으로 경제개발과 산업화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면서 도시화가 이뤄지고 이로 인해 인구구조에 변화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미국이 이제 탈(脫)세계화에 나선 상황에서 세계화의 수혜를 입었던 국가는 경제적으로도 인구 구조적으로도 위기에 처했다. 한국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경제 구조는 수출과 수입 의존도가 높기에 세계화의 덕을 봤다. 하지만 자이한의 논리라면 세계화로 인한 도시화, 그로 인해 저출산이라는 문제를 떠안은 한국은 탈세계화된 세계에서 경제 발전은 고사하고 경제를 지탱해 줄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을 지켜만 봐야 한다. 자이한은 “세계화 없이 한국의 경제는 존재하지 못하며, 출산율 회복 없이는 자본 구조나 노동생산성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한국은 저출산을 ‘국가 비상사태’로 선언했다.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영문 제목 The end of the world is just the beginning) 저자인 지정학 전문가이자 글로벌 인구·안보 전문가인 피터 자이한이 줌(zoom)으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조선비즈

다만 그동안 내놓은 일련의 저서에서 ‘한국의 위력’에 주목했던 자이한은 “탈세계화의 난관을 헤쳐 나갈 창의력, 기술, 집요함, 의지를 갖춘 국민은 한국인”이라고 칭송한다. 한국이 저출산이라는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에 조선비즈는 미국 중부 덴버에 거주하는 자이한과 지난달 19일 줌(zoom)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이한은 “한국인은 그동안 현실에 맞서 도전하는 모습과 3~4년 만에 경제 모델 전체를 완전히 재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며 “한국인은 항상 무언가를 만들어냈고, 거의 성공한다”고 강조했다. 자이한은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멕시코, 인도네시아, 베트남과의 경제 통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책에서 ‘미국이 만들어낸 세계화가 일으킨 산업화와 도시화가 인구구조 붕괴를 낳았다’고 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동맹을 구축해 소련을 저지하고 봉쇄하고 굴복시켰다. 새로 구축한 동맹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미국은 세계적으로 안전한 환경도 조성했다. 동맹국이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그 누구와도 경제교류를 하고 공급 사슬에 참여해 어떤 원자재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오늘날 자유무역이라 일컫는 세계화를 구축했다. 세계화 덕분에 경제개발과 산업화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고, 대량 소비 사회가 형성되면서 전 세계에 무역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세계 인구구조를 바꿔놓았다. 경제발전과 산업화로 수명이 연장되는 한편 도시화가 탄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도시화가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건가.

“농촌에서는 자녀가 노동을 하기에 부모에게 ‘공짜 노동력’을 제공한다. 이에 많은 아이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도시로 이사하면서 자녀를 많이 낳는 데 따른 경제적 인센티브가 사라졌다. 여기다 도시에서 자녀는 ‘비용’으로 여겨진다. 가장 빠르게 세계화한 한국, 독일 등의 인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가파른 감소세를 보인 이유다.”

─미국은 왜 이제 탈세계화를 택한 건가. 미국이 더 이상 세계화로 누릴 수 있는 이득이 없어서인가.

“미국의 세계화는 경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냉전에 맞서 싸우는 데 필요한 안보협력에 대한 보상이었다. 세계화는 동맹을 향한 일종의 ‘뇌물’이었고, 다른 국가를 동참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미국은 경제적 이득을 누리려고 세계 경제 구조를 유지해 온 것이 아니다. 세계화는 미국 시장을 세계에 개방한다는 뜻이었을 뿐, 미국의 동맹국들도 자국 시장을 개방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의 3분의 1 수준인 15% 정도로 낮다. 멕시코와 캐나다와의 무역을 제외하면 GDP의 약 8%로 떨어진다. 따라서 미국 경제에 미친 세계화의 영향은 절대 크지 않았다. 그리고 냉전이 끝난 후 30년 동안 미국은 세계에서 서서히 손을 뗐다. 세계 안보를 뒷받침하고 그 연장선에서 세계 무역을 뒷받침할 군사력을 지닌 나라는 미국 말고는 없다. 미국이 주도해 온 세계질서는 무질서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천신항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뉴스1

─미국이 세계화를 유지할 의지가 없는 세상에서 한국처럼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처한 현실은 비극뿐인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경제 활동의 상당 부분을 무역에 의지하고 있고, 저출산에 직면해 있는 이탈리아, 독일, 중국 등의 장래는 밝지 않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지난 세기 동안 현실에 맞서 도전했고, 경제 모델 전체를 완전히 재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한국인은 무언가를 만들어냈고, 거의 항상 성공했다. 10년 후 한국의 모습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지금과는 다른 경제 모델을 지닐 것이라고 본다. "

─한국이 저출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나.

“한국은 지난 50년 동안 세계에서 세 번째로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출산율을 회복하기 위해선 내년 출산율을 지금의 세 배로 높이고, 그 수준을 30년 동안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대규모 인간 복제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다 문화적인 문제도 있다. 한국의 여성 운동은 경제적 평등이나 정치적 평등보다 사회적 평등을 위한 운동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삶의 주도권을 남성에게 넘겨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혼모 문제도 한국에선 여전히 큰 문제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기도 하다.”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영문 제목 The end of the world is just the beginning) 저자인 지정학 전문가이자 글로벌 인구·안보 전문가인 피터 자이한. / 피터 자이한 제공

─책에서 한국보다 앞서 저출산에 직면한 일본은 생산시설 이전을 통해 노동력 부족 문제를 극복했다고 했다. 또한, 한국과 대만도 최첨단 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유가 뭔가.

“일본은 인구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아무도 인구 감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때 생산 시설 이전을 시작했다. 일본 기업은 2006년부터 생산 시설 대부분을 다른 나라로 이전해 해당 지역의 노동력을 이용해 상품을 생산하고 그 상품을 해당 지역에 판매했다. 여기서 올린 매출 일부를 일본으로 보내 고령화하는 일본을 부양했다. 일본은 미국이 자국 시장에 상품을 덤핑하는 행위를 질색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수십 년에 걸쳐 일본이 겨냥한 시장 내에서 상품을 제조하는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이런 새로운 산업 모델 덕분에 일본은 어느 정도 곱게 나이들 수 있었다. 일본처럼 산업 시설의 해외 이전을 시도할 만한 숙련 기술 인력과 자본을 보유한 나라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 영국 정도다. 한국이 생산 시설 일부를 해외로 이전했지만, 고부가가치 산업은 이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한국 경제에 대한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생산 거점을 미국으로 옮겨야만 한다는 건가.

“전 세계적으로 소비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고령화 심화에 따라 향후 15년 안에 대부분의 수요처가 사라질 것이다. 한국과 대만이 물건을 수출할 수 있는 곳은 북미와 동남아, 두 곳뿐인데 동남아는 미국과 일본의 놀이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미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움직여야 한다. 앞으로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네덜란드 등도 모두 이 작업을 수행해야 하기에 더 큰 비용이 들고 경쟁이 치열해질 거다. 따라서 미국이나 멕시코처럼 인구 증가세가 견고한 국가와 거래를 체결해야 한다. 미국이 가장 큰 시장이긴 하지만 유일한 나라는 아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 3개국이 체결한 자유 무역 협정)에 따라 미국 소비자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멕시코를 주의 깊게 바라본다. 다만, 멕시코 북부 노동력 대부분은 미국 기업에 잠식됐다. 이제는 멕시코 중부로 가야 한다. 캐나다도 인구가 많고, 인프라가 잘 구축된 프레리 등 유망한 지역이 많다.”

─북미 지역을 제외한 생산시설 이전 유망지를 꼽으라면.

“북미를 제외하면 인도가 가장 큰 소비 시장이지만, 인도에서 사업을 하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이다. 인도는 서로 느슨하게 연결돼 있을 뿐 30개의 서로 다른 경제권으로 이뤄져 있다. ‘10억 명의 소비자’라는 문구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대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가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베트남 경제는 농업 중심에서 중공업 중심으로 발전했고, 이제는 첨단 제조업 경제로 가려 한다. 베트남 대학 졸업생의 40%가 STEM(과학·Science, 기술· 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 전공자다. 인도네시아도 유망하다. 기술 수준은 낮지만, 25억 명이 넘는 노동력이 존재한다. 지금 한국이 필요로 하는 요소를 갖춘 비옥한 땅이다. 특히 조립 등의 분야에서는 중국보다 인도네시아가 낫다고 생각한다.”

─결국 출산율 저하를 막기 힘드니, 인구 감소에 대비할 경제 체제를 구축하라는 뜻인가.

“한국의 경제 모델은 기본적으로 가격 대비 훨씬 더 숙련된 노동력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이를 젊은 층이 소비하도록 수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델은 미래가 없다. 지난 세기 동안 인구가 감소했다가 다시 대체출산율(인구가 현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출산율로 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2.1명이어야 함)까지 올라간 사례는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경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제조와 관련한 많은 생산 단계를 한국 안에서 수행하기를 원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이 멕시코, 인도네시아, 베트남과 하도급 계약을 맺는 등 경제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구가 고령화할수록 이 문제는 더 중요해질 것이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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