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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빨대효과'에 소멸 위기…아토피 치유로 폐교 위기 극복한 산꽃마을
청년층 유입 위한 '리브투게더'에 주민 기대…대전과 통합이 대안 될까


폐교한 금남초
[촬영 박주영]


(금산=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금산은 충남 최남단에 위치한 인구 5만명 규모의 중소도시다.

2010년 1월 기준 5만6천190명에서 인구가 점차 줄어들다 지난달 기준 4만9천973명까지 떨어지며 5만명 선마저 붕괴했다.

유소년인구 100명당 고령인구를 의미하는 노령화지수는 424.4로 도내 15개 시·군 가운데 6번째로 높다.

1990년대까지도 국내 최대 인삼(人蔘) 주산지로서 자타공인 '인삼의 고장'이라 불리며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산업화·도시화로 점차 농업이 쇠퇴하며 위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인삼 농사로 호황 누렸지만…하루에 버스 두 번 다니는 '섬' 전락
"서울에 갖고 올라가 며칠 동안 판 인삼 값이 봉급생활자 한 달 월급과 맞먹은 적도 있었는데…"

남일면 마장1리에 사는 이장 박근배(62)씨는 한때 높았던 마을의 위상을 떠올리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1일 오후 마장1리 옛 금남초등학교 앞마을은 한낮인데도 지나다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1992년 폐교한 금남초 운동장에는 들풀이 무릎 높이만큼 자라 있었고, 한때 공장으로 쓰였음을 보여주는 양철 간판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증명하듯 너덜너덜 낡아 찢겨 있었다.

마을은 읍내 번화가에서 5㎞도 채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고즈넉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자물쇠가 걸려 있지 않은 집 앞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슬레이트 지붕이 덮인 단독 주택도 사람이 살지 않은 지 오래된 듯했다.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녹이 슨 금남초 교문
[촬영 박주영]


박씨는 "마장1리에 거주하는 가구는 85가구 정도인데, 그마저 4∼5채는 빈집으로 알고 있다"며 "대부분 70대 이상의 고령으로 마을에서 내가 두 번째로 젊다"고 말했다.

그도 마장1리에서 태어나 금산읍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퇴직 후 다시 돌아왔다.

집집이 인삼 농사를 지었던 30여년 전에는 마장1리에 금남초 동창 26명이 함께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했다.

박씨는 "그때 당시 인삼 1채(600g) 가격이 1만원을 호가했는데 지금 가격도 2만∼3만원밖에 안 된다"며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수십 배 이상 폭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0년 기준 금산의 인삼 재배면적은 1천18㏊(농가 수 5천214가구)로 전국 1위를 기록, 2위인 충북 음성(813㏊)을 훨씬 앞섰다.

그러나 2022년 금산의 인삼 재배면적은 611㏊(농가 수 926가구)로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재배면적과 가구 수 모두 1위인 강원 홍천(636㏊, 1천422가구)에 크게 뒤처졌다.

경기 침체로 인한 인삼 소비 감소로 가격이 폭락하면서 금산 지역 인삼재배 면적은 2008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기후 변화에 따라 인삼 재배지가 북상하면서 주산지도 바뀌었다.

금산수삼센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주민 박지철(70)씨는 "그땐 한 집에 삼대가 함께 살면서 다들 인삼 농사를 지었다. 500∼1천평 규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금남초 전교생 수가 600명에 육박했다. 학교 앞 구멍가게도 3∼4개나 있었다"고 전했다.

지금은 반경 2㎞ 안에 작은 편의점이나 식당은 물론 마트, 은행, 지구대, 소방서 등 기본적인 편의시설조차 찾아볼 수 없다.

하루에 두 번 금산읍을 오가는 시내버스는 현실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워 주민 대부분이 고령임에도 자차를 이용한다.

인삼 농사로 돈을 번 친지나 친척들은 농지를 팔아 대부분 인근 대전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렇게 대전이 '블랙홀'처럼 금산 인구를 빨아들이면서 마장1리는 소멸의 길로 들어섰다.

폐교 위기 학교 살린 아토피 치유마을…주거단지 조성해 지방소멸 대응
금산 지역 모든 마을이 마장1리와 같은 운명을 겪은 것은 아니다.

군북면 상곡리는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해발 904m)과 천태산(해발 715m) 사이에 자리 잡은 산마을이다.

금산 산꽃마을
[금산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산꽃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상곡리에는 지금은 산벚꽃을 보기 위해 봄철마다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찾고 있지만, 한때는 마을의 유일한 초등학교인 상곡초등학교가 폐교 직전까지 몰린 적도 있었다.

소멸 위험을 극복할 수 있었던 아이디어는 '자연 치유'에서 나왔다.

군이 2009년 상곡초를 '아토피·천식 안심 학교'로 지정, 교실 벽을 황토벽돌로 리모델링하고 교실에 킹벤자민·폴리샤스 등 아토피 피부염에 효능이 있는 식물을 심기 시작하자 수도권 학생들이 전학을 오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도 자녀의 아토피 치료를 위해 이주해온 도시민들에게 임대할 황토주택을 건립하며 힘을 보탰다.

그렇게 산꽃마을이 아토피 치유마을로 거듭나면서 2010년 10년 만에 처음으로 상곡초의 학생 수가 증가(16명→21명)한 뒤 현재까지 30명대 학생 수를 유지하고 있다.

군은 아토피 치유마을 리노베이션 사업을 지방소멸 대응을 위한 군의 핵심 정책으로 추진키로 했다.

현재 35가구 규모로 조성된 아토피 치유마을을 2030년까지 205개 동 규모로 확대, 고품격 주거단지를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중등 과정까지 연계할 수 있도록 아토피 특화 중학교를 조성하는 한편 커뮤니티 센터, 문화체육시설, 치유농장 등을 갖춘 농촌 창업이 가능한 일자리 특화 자족 마을로 만들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충남 최대 규모의 산림휴양단지인 남이자연휴양림 등과 함께 금산이 전국 최고의 건강 휴양마을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금산 아토피 치유마을 조감도
[충남 금산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폐교 활용해 청년층 위한 임대주택 건설…스마트 농업이 대안될까
마장1리 주민들은 스마트 농업이 마을을 살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령의 어르신들로는 더는 노동집약적인 전통적 농업 방식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스마트 농장은 적은 인력으로도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깻잎·딸기 등 고소득 특용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

충남도가 옛 금남초 부지에 추진하는 '충남형 농촌리브투게더'와 연계해 스마트 농업을 꿈꾸는 청년층을 유입할 수 있을 것으로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충남형 농촌리브투게더는 농촌지역 청년·서민에게 주거 안정과 주택 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분양 전환형 공공임대주택 공급 사업이다.

지난해 금남초 부지가 농촌리브투게더 사업 대상지로 선정됨에 따라 이달 중 철거에 들어가 내년 1월 착공할 계획이다.

2026년 입주를 목표로 태양광 패널과 고효율 보일러 등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갖춘 단독주택 20가구를 조성할 방침이다.

박지철 씨는 "몇십 년째 폐교 건물이 흉물처럼 남아 보기 싫었다"며 "폐교 앞에 쓰레기가 방치돼 마을의 미관을 해쳤는데, 드디어 사업이 추진된다니 너무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근배 씨도 "아토피 치유마을처럼 자녀들도 같이 와야 온 가족이 이주해 올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 초 인근에 1천500평 규모 상추 스마트팜 농장이 생겼는데, 젊은 사람들이 교육받는다고 왔다 갔다 하면서 마을이 활기를 띠고 있다. 리브투게더에도 청년들이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장1리 마을회관에서 이야기 나누는 주민들
[촬영 박주영]


장기적으로는 금산과 대전을 통합하는 방안도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된다.

금산과 대전은 지리상으로 인접해 있어 같은 생활권으로 묶여 왔는데, 2013년 충남도청사가 대전에서 내포(홍성·예산)로 옮겨가면서 이 같은 경향이 더욱 심화했다.

이에 따라 10여년 전부터 꾸준히 통합 논의가 제기돼 왔는데, 충남도가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는 데다 주민들 간에도 의견이 엇갈리면서 현재는 논의가 정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경제 규모 확대와 지역 개발로 도시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과 금산 인구가 대전으로 이동하는 '빨대효과'(대도시가 주변 도시의 인구·경제력을 흡수하는 현상)만 심해질 뿐이라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오노균 대전금산통합 범시민 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와 인구소멸을 겪었던 일본의 가와바 마을도 도쿄 세타가야구와의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소멸 위기를 극복했다"면서 "정주 인구 증가에는 한계가 있고 생활인구를 늘리는 것이 중요한데, 생활권이 같은 금산과 대전을 통합하는 것이 지방을 살리는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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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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