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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총선이 치러진 4일(현지시간) 런던의 BBC방송 건물 전광판에 총선 출구조사 결과가 표시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영국 민심이 14년 만에 노동당에 표를 몰아주며 변화를 택했다. 집권 보수당의 정책 실패가 부른 경제 침체와 무너진 공공복지에 대한 분노가 누적된 결과로 풀이된다.

조기총선 승부수를 던졌던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보수당은 최악의 참패를 기록하며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정권을 잡은 노동당은 국내외 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보수당과의 차별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노동당, 650석 중 412석 확보…보수당 3배↑

5일(현지시간) BBC 등에 따르면 전날 총선이 치러진 650개 지역구 중 648곳의 당선자가 확정된 가운데 노동당이 최소 412석을 차지해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보수당은 121석에 그쳤다.

이 밖에 중도 성향 자유민주당은 기존 11석보다 늘어난 71석을 확보해 3당 자리에 올랐다. 3당이었던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당 재정 유용 논란 등으로 내홍이 불거진 탓에 9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출구조사가 발표된 후 자정을 넘긴 5일(현지시간)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가 런던 선거사무실에서 당원과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이날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을 접견한 뒤 총리로 임명됐다. 이는 2010년 정권을 보수당에 넘겨준 이후 총선에서 줄줄이 패했던 노동당이 14년 만에 거둔 승리다.

앞서 그는 개표 진행중 열린 승리 연설에서 “우리가 해냈다”며 “변화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영국과, 영국의 노동자들을 위해 일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14년 쌓인 불만 터졌다”…보수당, 창당 이래 ‘최악 패배’

다만 이번 선거는 노동당에 대한 ‘기대’보단 보수당에 대한 ‘실망’이 더 짙게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뉴욕타임스는 2019년까지만 해도 보수당에 표를 몰아줬던 유권자들이 대거 돌아서게 된 것은 14년간 누적된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수낵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확보한 121석은 노동당 의석(412석)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는 직전 선거인 2019년 총선에서 365석을 확보했던 것과 비교해도 ‘참패’ 수준이다. 1834년 창당한 보수당의 190년 역사 안에서도 최악의 성적표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 겸 보수당 대표가 5일(현지시간) 지역구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유권자들이 보수당을 심판한 배경으로는 고물가와 경제난, 공공복지정책 붕괴, 여권 정치인들의 잇단 실정 등이 꼽힌다. 보수당 집권기가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과 겹치면서 물가가 급등한 상황에서 핵심 공약이었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위기를 부추겼다. 충분한 손익 계산 없이 추진된 탓에 무역과 투자가 급감했다.

재정 압박이 커지면서 공공서비스 등 보건정책은 크게 줄었다. 이민자 유입을 줄이겠다는 브렉시트의 명분과는 달리 이민자는 사상 최다 수준으로 늘었다. 여기에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코로나19 봉쇄 기간 총리실에서 잔치를 벌였다는 ‘파티게이트’까지 터지면서 보수당의 무능과 정책 실패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했다.

위기를 감지한 수낵 총리는 조기 총선을 선언하며 반전을 꾀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결국 보수당은 이번 총선에서 참패하며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됐다. 수낵 총리 자신은 이번 선거에서 ‘보수 텃밭’으로 꼽히는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지만, 리즈 트러스 전 총리와 현직 장관 두 명을 포함한 보수당 거물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수낵 총리는 총선 결과에 따라 이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사임 절차에 앞서 “죄송하다. 나는 이번 선거에 모든걸 쏟았지만 국민들은 영국 정부가 바뀌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냈다”면서 “패배는 나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에 그는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으로 당대표직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가 5일(현지시간) 지역구 당선이 확정된 뒤 엄지를 세우며 기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극우 성향 영국개혁당은 사상 처음으로 의회에 입성했다. 2019년 총선에선 1석도 확보하지 못했던 개혁당은 이번 선거에서 최소 4석을 획득했다. 이에 보수당에 실망한 보수 성향 유권자의 표심이 개혁당으로 옮겨갔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도화’ 된 노동당, 앞으로 어떤 정책 펼까

14년 만에 탄생한 노동당 정부가 영국의 대내외 정책 노선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도 관건이다.

총선 공약만 놓고 보면 보수당과 노동당의 정책은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치러진 4번의 총선에서 패배한 노동당이 이번에는 ‘중도 확장’에 집중하며 보수 유권자들의 입맛에 맞춘 공약도 다수 내걸었기 때문이다.

다만 ‘정권 심판론’을 내세웠던 만큼 비난 여론이 집중됐던 경제와 공공서비스 개선에는 힘을 쏟을 것으로 전망된다. 표심을 의식해 선거 기간에는 언급을 피했지만, 복지 확대에 필수적인 증세 정책을 내놓을지도 주목된다. 미등록 이민자들을 르완다로 추방하는 내용의 ‘르완다법’은 폐기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26일 영국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가려는 이주민들이 프랑스 북부 됭케르크 인근 해변에서 보트에 타고 있다. AFP연합뉴스


대외 정책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브렉시트를 후회한다는 여론이 높아진 만큼 EU와의 관계 재설정에도 나설 전망이다. 노동당은 국민투표로 결정된 브렉시트를 되돌릴 수는 없다고 밝혀왔지만, 무역, 국방, 안보, 교육 등 사안에서는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보수당 정부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과 핵억지력 유지 정책은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외적 환경은 녹록지 않다. 특히 최대 우방인 미국의 대선이 가장 큰 변수다. 나토 등 동맹에 적대적인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만큼 불확실성이 큰 탓이다.

유럽과 EU 내에서 몸집을 키우고 있는 극우 세력도 영국 정부에 여러 과제를 안겨줄 수 있다. 폴리티코는 극우가 득세하는 주변국과 달리 노동당이 압승을 거둔 영국이 뜻밖에 ‘사회민주주의의 보루’ 역할을 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우파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시기에 당선된 중도좌파 정부로서 큰 역할을 짊어지게 됐다는 평가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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