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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 여성은 생식이라는 생물학적 행위 수행에서 집단적 실패를 하고 있다”고 진단한 미국 역사학자 페기 오도널 헤핑턴. 그의 눈에도 한국의 인구 위기가 도드라져 보인 모양이다. “미국의 무자녀 비율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라고 하더니,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곳은 동아시아”라고 시선을 돌린다. 그중에서도 “한국 여성의 평균 출산 수는 0.8명이고, 싱가포르의 경우 1.1명”이라고 지목했다( 『엄마 아닌 여자들』).
이쯤 되면 지난달 19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가 비상사태’ 공식 선언은 과장이 아니다. 이날 발표의 핵심은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이다.
새 행정기관 설립이 반전의 계기가 되려면 부처와 장관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전제돼야 한다. 현 정부 들어 장관의 존재감이 미미한 부처가 저출산 업무를 상당 부분 담당하는 여성가족부다. 여가부 홈페이지엔 ‘브리핑’ 코너가 있다. 아이 돌봄 정책 등이 꾸준히 올라오던 이 코너는 지난해 7월 25일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준비 상황 발표’를 끝으로 1년간 업데이트가 멈췄다.


석달 넘도록 여가부 수장 공석 상태
김현숙 당시 장관이 “새만금 세계잼버리는 그 어떤 잼버리보다도 가장 안전한 잼버리로 개최될 수 있도록 전 부처가 차근차근 준비해 왔습니다”라고 말한 내용이다. 이후 상황은 떠올리기도 민망하다. 잼버리 망신으로 김 전 장관 교체는 공식화했다. 그런데 아직도 후임 장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당시 김행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을 후임자로 지명했다. 그러나 청문회 문턱에 걸려 낙마하자 퇴진을 준비하던 김 전 장관이 다시 저출산 정책을 맡는, 희한한 사태가 벌어졌다.

김 전 장관은 올해 신년사에서 “인구 위기에 맞서 저출산 대응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곤 두 달 만에 과거 일하던 대학으로 돌아갔다. 개인적으론 유리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저출산 관련 정책은 공중에 떴다. 어제 환경부 장관 후보자 등이 지명된 인선에서도 여가부는 빠졌다.
여가부 장관의 늘어진 인선은 속전속결로 이뤄진 의대 증원 과정과 대비된다. 윤 대통령이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건 지난 2월 6일이었다. 전공의가 병원을 뛰쳐나가고 의대생이 강의실에서 사라지는 혼란을 겪으면서도 속도전으로 밀어붙여 1509명 증원을 확정하기까지 석 달 남짓 걸렸다.
기관장 늑장 임명은 여가부만의 얘기가 아니다. 임기가 정해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도 지난 1월 김진욱 초대 처장 퇴임 이후 석 달 이상 지나서야 후임이 지명됐다. 이런 부처와 기관장에게 무슨 힘이 실릴까. 새 행정기관이 저출산 해결사로 믿어지지 않는 이유다.
현 정부의 비상 대책이 작동 가능할지 의문이다. 정부조직법을 바꾸려면 더불어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인데 여가부 장관을 비워두고 새 부처를 만들겠다면 손을 덥석 잡아줄까. 부처 신설이 좌절되면 저출산 대책은 물거품이 되는가.
정부의 과거 출산 정책 평가.
정부가 최근 발표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이 지경에 이른 원인은 실기한 정책 탓이 크다. 1983년에 이미 대체출산율(2.1)이 무너지고 84년부터 1명대로 하락했으나 96년까지 산아제한 정책을 지속했다. 그런 실기를 이번 정부가 또 해서야 되겠는가.


해외선 “한국처럼 될까 걱정” 보도


대통령 ‘비상사태 선포’ 진심인지
한국의 저출산과 여성 정책은 국제적 관심이자 걱정거리다. “여가부 장관을 더는 지체하지 말고 임명하라”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의 권고가 그런 인식을 보여준다. 로스 다우서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지난해 12월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칼럼에서 한국의 저출산이 14세기 유럽의 흑사병보다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의 추세는 암울한 놀라움을 뛰어넘는다”면서 “이는 우리(미국)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경고”라고 했다. 한국이 세계적 반면교사가 돼가는데 우린 장관이 공석이다. 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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