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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입원이란 이름의 불법감금> ② 가두는 사람
국민일보DB


“남성용 병상 한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사설구급대에 연락해서 환자를 이송하면 돼요.” 취재진이 최근 수도권의 한 정신병원에 전화를 걸어 가족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을지 문의해 보니 이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보호입원제를 통한 ‘불법 입원’이 실제로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거듭 병원 측에 물었지만 병원 측 답변은 하나같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보호입원은 정신질환자가 자·타해 위험 등이 있다는 진단이 있을 때 할 수 있다. 그러나 병원 관계자는 “가족끼리 상의만 하셔도 강제입원이 된다”고 답했다. 환자가 가족에게 폭력을 쓰거나 자해도 하지 않고, 평소 술을 많이 마시는 게 골칫거리인 가족이라고만 설명했는데도 얼마든지 보호입원이 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사설구급업체도 비슷한 문의에 친절한 답을 내놨다. 한 업체 측은 “강제입원은 가능한데 어느 병원을 알아봤느냐”며 “우리가 다른 곳을 알아봐 줄 수 있다”며 알선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 업체는 특정 병원을 소개하면서 “병원에 연락하기 전에 우리에게 먼저 꼭 연락을 달라”며 “다른 곳은 입원 비용이 60만원 정도 하는데 우리를 통하면 5만~10만원 정도 입원비를 빼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신병원과 사설구급대 측 설명을 종합하면 정신건강보건법이 요구하는 각종 요건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환자의 동의 없는 비자발적 강제입원이 가능했다. 특정 병원과 사설구급업체가 일종의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이 같은 불법 보호입원을 은밀히 진행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8년간 강제 보호입원 중 119 통한 합법절차 7.3%

4일 국민일보가 입수한 국가입퇴원관리시스템(AMIS) 내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8년 5월 1일부터 지난 6월 12일까지 자신의 의지에 반해 인신이 구속돼 강제입원한 환자 18만8907명 중 119구급대를 이용한 경우는 1만3817명(7.3%)에 그쳤다. 나머지 92.7%는 경찰이나 소방의 개입 없이 사설구급대 등을 통해 부적절한 방법으로 위법하게 입원이 이뤄진 셈이다.



통상 사설구급대의 환자 이송 비용은 건당 30만~50만원 선이었다. 서울의 한 사설구급대 관계자는 “가족 2명의 동의서가 있으면 입원할 병원을 직접 알아봐드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정신병원장은 “일부 병원은 환자를 데려오는 사설구급대에 환자 1명당 5만~10만원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환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환자를 정신병원에 가두는 일이 곳곳에서 손쉽게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환자 본인의 의사에 반해 정신질환 등을 증명하는 진단서도 없이 사설구급대를 통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은 위법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환자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인권침해도 심각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일부 정신병원과 사설구급업체가 손잡고 은밀하게 진행하는 불법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때 불법으로 강제입원됐던 40대 여성은 “사설구급대원이 다짜고짜 다가와 허리띠를 풀더니 내 목을 조여 끌고 갔다”며 “이런 물리적 폭력을 한번 겪은 환자는 트라우마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사설구급대원을 다시 만나게 되면 (과거와 같은 끔찍한 폭력을 당하느니) 가만히 잡혀가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2022년 9월 정신병원 입원을 거부하던 30대 남성이 이송을 시도하는 사설구급대원들에게 제압당하는 과정에서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환자 이송 비용 1건당 30만~50만원 사설구급대 ‘돈벌이’

사설구급대가 정신병원과 연계해 보호입원 환자 이송에 나서는 건 소위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경기 지역에서 정신병원을 운영하는 병원장은 “일부 병원은 사설구급대와 환자 이송을 두고 마치 먹이사슬처럼 연결돼 있다”며 “이렇듯 불법을 저지르는 병원 때문에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병원들은 더 힘들어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정신요양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생활인이 지난 13일 창살이 박힌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다. 기사와 직접 관계가 없는 이해를 돕기위한 사진입니다. 국민일보 DB


사설구급대와 일부 병원이 불법 영업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환자를 서둘러 입원시키고 싶어 하는 보호자들의 수요가 있다. 환자의 정신질환이 심하고 자·타해 가능성이 있어 부득이하게 보호입원을 택하는 보호자들도 있지만 일부는 다른 이유로 입원을 결정하기도 한다.

유시완 전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정신질환자가 스스로 병원을 가야 한다고 인식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때 보호자가 강제로라도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경찰과 소방은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잦고, 그러다보니 보호자들은 결국 사설구급대에 의존하게 된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의 개입 없이 사설구급대가 환자를 강제이송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복건복지부 관계자는 “사설구급대를 통해 입원하면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서 모두 부적격 결정을 내려 퇴원시키는 게 맞다”며 “병원까지 사설구급대가 경찰을 대동하는 경우만 예외적으로 이송을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의인 이화영 순천향대천안병원 교수도 경찰과 소방 관계자의 개입 없는 사설구급대의 강제 이송에 대해 “엄연한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사설구급대 단체에선 이런 불법 이송은 일부 업체나 개인 일탈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박정욱 대한구급차협회장은 “불법 입원 여부는 환자 이송 과정에서 강제성이 있느냐 없느냐로 갈린다”며 “환자를 이송하면 병원에선 출동 처치 기록증을 심의한다. 이때 강제로 이송된 정황이 있으면 환자를 즉각 퇴원 조치시킨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송비 수십만원에 형사처벌까지 받겠다는 사람이 과연 있겠느냐. 사설구급대원 대부분은 그런 위험 감수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환자 이송체계를 개선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사설구급대에 의한 이송도 문제지만, 119구급대는 바빠서 환자 이송에 모두 응하기 어려운 게 더 큰 문제”라며 “소방청과 경찰청, 복지부, 정신과 전문의 등이 모인 정신응급대응협의체에서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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