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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8일, 4남매의 아빠 41살 故 정슬기 씨는 집에서 쓰러진 뒤 다시는 출근하지 못했습니다. 쿠팡CLS 대리점의 '로켓배송' 기사로 일을 시작한 지 14개월 만이었습니다.

정 씨의 사인은 '심실세동·심근경색 의증'으로 대표적인 '과로사' 질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족들은 정 씨가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몸무게 10kg가량이 빠졌고, 숨지기 직전엔 매일 진통제와 해열제로 버텼다고 했습니다.

특히, 정 씨가 주 6일 저녁 8시 반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쉴 새 없이 배송하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며, 원청인 쿠팡CLS 측에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현재 과로사 산업재해 인정 기준은 4주간 주당 64시간인데, 정 씨는 주당 63시간을 일했고 업무상 질병 판정 기준에 따른 야간할증(22~06시) 30%를 감안하면 주당 77시간을 넘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쿠팡CLS 측은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라며 "업무시간과 업무량은 전문배송업체(대리점)와 택배기사의 협의에 따라 결정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 "개처럼 뛰고있긴해요.."…정 씨는 왜 이런 대답을 했을까?

정 씨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이자 쿠팡CLS의 간접고용 노동자였습니다.

하지만 대리점이 아닌 원청 쿠팡CLS 캠프로부터 직접적인 지시와 통제를 받았다고, 유족 측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래와 같은 근거 때문입니다.

정 씨가 쿠팡CLS 남양주2캠프의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계정과 나눈 업무상 메시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쿠팡CLS 남양주2캠프 직원은 정 씨에게 끊임없이 빠른 배송을 독촉합니다.

"남으신 거 최대한 빠르게 부탁드려요", "달려주십쇼", "언제쯤 마무리 되실까요", "한 시간은 너무 기네요. 40분에 끊어주십쇼" 등의 메시지가 시시각각 도착합니다.

정 씨는 "최대한 하고 있어요", "아파트라 빨리가 안 되네요",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 "얼른 할게요", "개처럼 뛰는 중요"와 같은 답변을 남깁니다.

빠른 배송에 대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제(3일) 서울 서대문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 열린 ‘쿠팡CLS 택배노동자 과로사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쿠팡CLS 캠프 측이 고 정슬기 씨에게 직접 지시하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공개됐다.

이 밖에도 정 씨는 캠프 입차 시간과 하루 배송 완료 수량 등을 모두 캠프 측에 보고했습니다.

건물의 문이 열리지 않거나 물품이 파손·분실됐을 때,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을 때, 주소를 모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캠프에서도 업무와 관련한 각종 공지사항을 카카오톡으로 전달해왔습니다.

이에 대해 강민욱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어제(3일) 서울 서대문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쿠팡은 배송업무에 있어 고 정슬기 씨에게 거의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직접 지시하고 통제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처참한 로켓배송으로 쓰러진 고 정슬기 씨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쿠팡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 유족·대책위, '구조적 문제' 지적…쿠팡CLS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

정 씨가 이처럼 과중한 업무를 맡게 된 데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게 유족과 대책위 측 주장입니다.

먼저, 쿠팡CLS 측이 택배기사들에게 본래 업무가 아닌 분류 작업을 떠넘기고, 다른 민간 택배사와 달리 하루 2~3차례 배송지와 캠프를 왕복하는 '다회전 배송'을 강요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정 씨 역시 주 6일 저녁 8시 반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20km 거리에 있는 배송지와 캠프를 하루 3차례씩 오갔다고 합니다.

또, 배송 마감시간 정책을 운영하며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던 미스(Done-Miss)'로 분류해 이른바 '클렌징', 배송 구역 회수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지적했습니다.

계약서에도 던 미스 '0.5% 이상'일 경우 구역을 회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택배기사들이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이유라고도 했습니다.

유족과 대책위는 쿠팡CLS가 캠프별 업무 카카오톡을 통해 지속적으로 배송 마감시간 준수를 거세게 압박하는 관행도 과로사를 부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쿠팡CLS 측의 입장은 다릅니다.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라며 정 씨가 쿠팡의 '근로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겁니다.

쿠팡CLS는 "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의 업무시간과 업무량은 전문배송업체와 택배기사의 협의에 따라 결정 되며, 쿠팡CLS는 택배기사의 업무가 과도하지 않도록 국토교통부 표준계약서에 명시된 주당 작업 일수와 작업 시간에 따라 관리해 줄 것을 계약 내용을 통해 전문배송업체에 요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쿠팡CLS 대리점 측이 지난달 3일 유족을 만나 "제가 유가족이면 산재 (신청) 안 한다"며 회유를 시도한 정황도 나왔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통해 공개된 유가족과 쿠팡 대리점 간의 대화 내용입니다.

대리점 측은 "산재는 기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확실히 된다는 보장이 있으면 상관없는데 조금 안 좋다는 내용들(이 있다)"며 "제가 쓰고 있는 노무사랑 다른 노무사랑 대외협력팀에 있는 사람까지 물어봤는데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좋지 않다고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관련 기사] 쿠팡 대리점, 숨진 택배기사 유족에 “저라면 산재 신청 안 한다” (2024.07.01.)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00659

고 정슬기 씨의 아내와 아버지 정금석 씨는 KBS와 만나, 쿠팡CLS 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했다.

■ 유족 "쿠팡은 대리점 책임이라며 발 빼…사과하고 인정했으면"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고 정슬기 씨의 아버지 정금석 씨는 "제 아들은 분명 쿠팡 로켓배송 일을 했는데, 아들이 떠난 지 한 달이 지난 오늘까지도 '사용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쿠팡은 모두 대리점 책임이라며 발을 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 씨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신이 '개'라고 얘기했겠나"라며 "부모로서 너무 안타깝고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고 정슬기 씨의 아내도 "우리 사회는 피해자들이 모든 것을 다 증명해야 한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며 "너무 답답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걱정이다. 아이들이 아빠를 많이 그리워한다"고 했습니다.

정 씨 아내는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쿠팡CLS 측이) 아이 아빠한테 가서 미안하다, 잘못했다, 내가 만든 시스템으로 이렇게 됐다고 하는 것"이라며 "인정할 건 하고, 개선할 건 해야 쿠팡도 일류 기업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이렇게 사람을 죽이고 한 가정을 망치면서까지 이러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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