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새로 발행된 일본의 지폐(사진 왼쪽)와 기존 지폐. 연합뉴스
일본 여행을 많이 가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외화인 일본 엔화 지폐가 3일 20년 만에 새로 발행돼 시중에 풀렸다. 새 1만엔권 주인공이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의 경제침탈을 주도한 인물이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새 지폐 발행 기념식에서 “오늘 1조6천억엔(13조7600억원)의 새 지폐를 세상에 내보낼 예정”이라며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캐시리스’가 진행되고 있지만, 현금은 누구나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결제 수단으로 앞으로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행은 오전에 새 지폐를 금융기관에 전달됐다. 새 지폐가 나왔지만 기존 지폐도 사용은 가능하다.
새 1만엔권에는 제일국립은행(현 미즈호은행)과 도쿄증권거래소 등 500여개 기업을 설립하는 데 관여해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1931)의 초상화가 들어갔다. 시부사와는 일제 강점기 경성전기(한국전력의 전신) 사장을 맡고, 제일국립은행을 조선에 진출시키는 등 경제 침탈에 앞장선 인물이다. 광복회는 지난 1일 성명을 내고 “일제 침탈 장본인의 화폐인물 결정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려는 기만적 행위”라며 즉각 철회를 촉구하기도 했다.
5천엔권에는 일본 여성 교육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쓰다 우메코(1864∼1929), 1천엔권에는 일본 근대의학의 기초를 놓은 기타사토 시바사부로(1853∼1931)의 얼굴이 들어갔다. 새 지폐엔 최신 위조 방지 기술도 도입됐다. 3디(D) 홀로그램을 사용해 지폐를 기울이면 초상의 얼굴 방향이나 무늬가 움직이는 듯 보이게 했다. 지폐에 이 기술이 채택된 것은 세계 최초다.
새 지폐 발행으로 경제효과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노무라종합연구소를 인용해 “자동판매기, 현금입출금기(ATM), 계산대 교체 등으로 약 1조6300억엔(약 14조원)의 경제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에서 마이너스 금리 등으로 현금을 집에서 보관하는 ‘장롱 예금’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대량으로 유통되는 새 지폐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캐시리스화가 급격히 진행돼 청년층을 중심으로 현금을 접할 기회가 줄고 있다”며 “앞으로 약 20년 뒤 새 지폐 변경 때는 ‘새로운 통화’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산업성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일본에서 현금을 사용하지 않은 결제 비율이 39.3%로 2013년(15.3%)보다 2.6배 증가했다. 다만 한국(95.3%)과 중국(83.8%) 등과 견주면 여전히 낮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