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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서울 대홍수' 때 北 수해 지원
물꼬 튼 대화, 분단 40년 만에 첫 이산가족 상봉으로
북측 자유왕래·예술단 주장… "선전선동 방편"
1985년 5월 28일 서울에서 열린 제8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에서 남북 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4년 9월 '서울 대홍수'로 불리는 수해가 발생했다. 태풍 '준'의 영향으로 서울에는 1일 하루에만 268.2㎜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피해도 어마했다. 침수와 산사태로 입은 재산 피해만 전국에서 약 232억 원에 달했다. 당시 자장면 한 그릇이 500원이었으니, 현재 화폐가치(2024년 자장면 평균 가격 7,000원)로 환산하면 약 3,200억 원의 피해를 입은 셈이다.

그런 홍수가, 남북관계에선 뜻밖의 훈풍을 몰고 왔다. 북한 적십자회가 쌀 5만 석, 천(옷감) 50만 m, 시멘트 10만 톤, 기타 의약품 등을 지원하겠다고 제안을 해온 것이다. 대한적십자사가 이를 수용했고, 꽉 막혔던 남북 간 대화에 물꼬가 터졌다.

남북은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젓기로 했다. 수재물자 교류로 얼굴을 맞댄 김에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서도 논의를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1985년 9월, 남북이 분단 40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과 평양에서 개최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 상호교환 행사는 그렇게 마련됐다.

통일부가 2일 공개한 5차 남북회담문서(1981년 12월~1987년 5월)에는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기까지 남북 간 논의 과정이 상세하게 담겼다. 주목할 점은 두 가지. 북한이 '이산가족의 자유왕래' 등 훨씬 적극적으로 교류 방안을 제안해왔다는 것과 북한이 예술단 방문 공연에 집착했다는 점이다. 특히 1985년 5월 이산가족 상봉을 주제로 열린 제8차 남북적십자 본회담 회의록에는 예술단 방문공연을 두고 양측이 대립하는 상황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남 : 이산가족들이 중심이 돼서 가는데, 축하를 위해서 예술단이 같이 간다 그런 거죠.

북 : 예술단 동반 상호교환방문 문제는, 금년이 조국해방 40돌이 되는 해이고 8·15(광복절)를 경축한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10여 년 만에 다시 열린 북남적십자회담에도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게 됨으로써 회담의 진전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8차 남북적십자 본회담 2일차 회의 중에서

1985년 9월 23일 서울과 평양에서 열린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상봉 행사 및 예술단의 공연 모습. 통일부 제공


당시 회의록을 살펴보면, 우리 측은 이산가족 상봉에 방점을 찍은 반면 북한은 정치적 목적의 예술공연단 교환방문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예술공연단 방문 인원을 이산가족보다 3배나 많이 제안한 게 그 방증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북한이 노리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유왕래 제안도 물론 이산가족을 전적으로 위한 게 아니었다.

남북회담 문서 공개 예비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김일성 시대에 북한이 먼저 남북 자유왕래를 주장한 것은 북한 스스로 남한 여러 지역에 가서 사상 문화 지령을 직접 전달하겠다는 의도가 담겼을 것"이라며 "예술단 공연 역시 선전선동을 위한 방편으로 서울 외 다른 지방에서의 공연도 요구했다"고 분석했다.

오늘날의 북한이 K팝, K드라마 등 한류 문화가 유입돼 체제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처럼, 당시 북한은 오히려 자신들의 예술공연을 통해 '남한에 북한을 동경하는 문화'를 심겠다는 전략을 폈을 것이란 얘기다.

북한은 1985년 8월 27일 한국 측 적십자 대표단을 평양 모란봉경기장에 초대해 북한 정권을 선전하는 내용의 집단체조를 관람하게 했다. 통일부 제공


하지만 북한의 의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85년 8월 27일 평양에서 열린 제9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에서, 북한은 우리 측 대표단에 북한 정권 선전을 목적으로 한 집단체조를 관람하게 하면서 우리 측이 항의하고 중도 퇴장하는 일이 벌어졌다. 의도를 파악했던 우리 측 대표단은 북한 측 제안을 호락호락 받아들일 뜻이 없었다. 남북은 이후 비공개 회담을 거쳐 300명 규모로 논의했던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규모를 50명으로 축소했다. 예술단 역시 당초 북한이 주장한 100명에서 50명으로 줄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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