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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양시 인덕원 일대의 아파트.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이재성 | 논설위원

세금 얘기는 복잡하고 재미없다. 사람들이 재미없는 세금 얘기에 관심을 가질 때는 그것이 ‘내 세금’일 때뿐이다. 출범 이후 줄기차게 부자감세를 해온 윤석열 정부가 총선 참패 뒤에도 주눅 들지 않고 감세 주장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부자감세가 남의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재정 파괴라는 ‘공유지의 비극’ 이전에 ‘공유지의 무관심’이 있다.

무관심은 ‘침묵의 나선 효과’로 증폭되어 이해관계가 명확한 소수의 주장이 과잉대표되고, 그것이 마치 공익인 양 사회 전체가 착각하게 하는 사태를 불러온다. 세금은 언제나 ‘내 문제’라고 생각하는 소수가 오랜 세월 지치지 않고 감세를 주창하면서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여론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됐다.

노무현 정부 당시 집이 없는 사람들도 세금폭탄론에 찬성할 정도로 재미를 본 감세론자들은 윤석열 정부 들어 상속세와 종부세가 중산층 세금이 됐다고 선동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의 한달 월세도 안 되는 종부세가 세금폭탄이라는 주장이 거짓이었듯이, 상속세와 종부세가 중산층 세금이라는 주장도 거짓이다.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가구 순자산 중앙값 2억3910만원)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중산층 기준(중앙값의 75~200%)을 적용하면 우리나라 중산층의 자산은 1억7900만~4억7800만원이다. 종부세는 1주택의 경우 공시가격 12억원(부부공동명의 18억원)부터 낸다. 시가 17억원(부부공동명의 26억원) 이하라면 종부세 낼 일이 없다. 상속세도 5억원까지 일괄 공제하므로 대부분 자산이 부동산인 우리나라에서 집 한채 가진 중산층은 상속세와 거의 관련이 없다. 집 없는 서민은 말할 것도 없다.

감세론자들의 주장은 거짓과 모순으로 가득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고 한 입으로 두말을 한다. 상속세는 폐지가 세계적 추세라며 우리도 폐지하거나 크게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인 금융투자소득세는 이미 만들어놓고 시행만 연기한 법을 아예 폐지하자고 한다. 이들은 세금에 적대적이지만, 세수가 적어 발생하는 재정적자는 혐오한다. 공격적인 부자감세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수펑크 ‘조기경보’가 발령된 가운데, 정부여당은 최근 ‘재정건전화법’ 제정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의 45% 이하로 유지하고,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의 2% 이하로 유지하는 재정준칙을 도입하는 내용인데, 지금도 지키지 못하는 기준을 더 줄어든 세수로 어떻게 지키겠다는 것인지 이어지는 설명이 없다. 이대로 가면 남미 꼴 난다며 재정적자를 걱정하는 보수언론들도 상속세와 종부세, 금투세는 폐지하거나 줄여야 한다고 합창한다. 뻔뻔한 이중성이다.

이중성을 해소하는 방법은 더 걷거나 덜 쓰는 것밖에 없다. 지난 2년간은 덜 쓰는 것(R&D·지방교부금 축소와 대규모 ‘불용’)으로 대충 막아왔지만, 더는 위험하다는 걸 정부여당도 알고 있다. 최근 조세재정연구원 등에서 ‘부가가치세 증세’ 필요성이 흘러나오는 건 이럴 때 쓰는 고전적인 수법이다. 정부 외곽단체를 통해 여론의 간을 보는 것이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재무장관이었던 장바티스트 콜베르가 했던 말을 박근혜 정부 청와대 조원동 경제수석이 인용해서 유명해진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과세 방법으로 간접세인 부가세를 동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보편적 증세’다. 부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수십조원의 조세지출(조세감면)로 펑크난 재정을 모두가 부담하는 부가세로 메우겠다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상속세와 종부세와 금투세를 내야 할 부자들에게 직접 퍼주는 거나 마찬가지다.

절망스럽게도, 현재의 대통령과 정부여당, 재계와 언론 등 여론 주도층이 모두 확신에 찬 감세 포퓰리스트들이다. 그들은 토머스 프랭크의 책 ‘난파선의 선원들’(한국어판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의 원제,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시 미국의 우파 신자유주의자들이 감세와 규제 해제로 어떻게 나라를 망가뜨리면서 사익을 챙겼는지 조명한다)처럼 자신들이 탄 배를 스스로 침몰시키려 하고 있다. 세금은 나쁜 것이라는 주술을 걸며, 조세저항이 정의로운 것처럼 미화한다. 이들의 압도적인 여론 공세에 노출된 우리 사회는 조세감면이 전형적인 우파 포퓰리즘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야당조차 ‘감세 포퓰리즘’에 포획되어 대안 없이 투항하려 한다.

재정파괴로 가는 길은 선의가 아니라 악의로 포장돼 있다. 명백한 악의조차 못 본 체하는 공유지의 무관심은 반드시 공유지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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