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 김인병(52)씨 빈소 모습.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김씨가 영정 속에서 활짝 웃고 있다. 조승우 인턴기자

“몸이 불편한 동생이 열심히 살아줘서 기특했는데…”

찰나의 순간이었다. 전날 밤 서울시청 앞 교차로에서 갑작스럽게 인도로 돌진한 차량에 생때같은 막냇동생 김인병(52)씨를 잃은 윤병(67)씨는 한겨레와 만난 2일 오전에도 간밤의 사고가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인병씨는 중학생 시절 뺑소니 사고를 당해 한쪽 눈을 잃고 팔이 불편해졌지만, 학비를 직접 벌어 당당히 서울시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상 2개 받은 보람도 잠시…

“편하게 살았으면” 늘 바랐다. 뭉클한 소망은 무너졌다. ‘워커홀릭’이라 불릴 정도로 일에 열중해 야근도 마다치 않던 인병씨는 사고가 벌어진 그날 밤에도 늦은 저녁을 먹고 나오다 참변을 당했다. 동생의 빈소가 차려진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서 황망히 앉아있던 형들은 평소 자랑 삼아 가지고 다니던 티브이 뉴스 속 인병씨의 사진을 꺼내 보이며 울었다.

김인병씨가 티브이 뉴스에 나오던 장면을 갈무리해 갖고 다니던 유가족. 서울시 38세금기동팀 재직 당시 체납자 단속에 나선 모습이 담겼다. 유가족 제공

사고가 벌어진 1일은 한밤의 참극이 벌어지기 전까지, 서울시청 총무과 소속 인병씨에게 더할 수 없이 기쁜 날이었다. 시청에서 주는 상 2개를 휩쓸었다. 인병씨가 이끌던 팀은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공간 별들의 집’으로 옮기는 데 기여했단 평가를 받아 ‘우수팀’으로 뽑혔다. 같은 날 오후에는 서울광장 야외도서관을 성공적으로 꾸린 공로로 또 상을 받았다.

인병씨의 고등학교 동창인 권아무개(52)씨는 “지난 주말 통화할 때 ‘나는 서울시를 위해서 일한다’고 했던 친구다. 주말도 없이 일하던, 정말 거짓 없이 열심히 하는 친구였다”고 말했다. 고인과 같은 과에서 근무했다는 김성택 서울시 사무관은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같이 밥 먹고 짬 나면 맥주도 한잔하며 울고 웃었던 지난 세월이 스쳐가 슬픔을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동료 승진 축하하러 만난 밤

이번 사고로 희생된 서울시청 법인세무과 소속 ㄴ씨도 곧 승진을 앞둔 유능한 새내기 공무원이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동료들은 “서울시 전체 예산 집계를 총괄할 정도로 스마트한 분” “고참들도 힘들다는데, 항상 웃고 힘들다는 소리 한번 안 하던 분”이라고 고인을 기억했다. 세상을 떠난 아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는 어머니의 절규가 빈소 안에서 울려 퍼지는 동안, 아버지는 황망한 듯 넋을 놓고 허공만 바라봤다. 한 유가족은 “오늘이 친할머니 생신이라 이번 주말에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희생자들의 대다수는 인근 직장인이었다. 은행 직원 4명, 시청 공무원 2명, 병원 용역업체 직원 3명이 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사고가 벌어진 월요일 밤 9시28분, 서울 도심은 늦은 퇴근을 하거나 동료와 만나 회식을 하는 직장인으로 북적였다.

은행 직원들도 이날 있었던 인사 이동으로 승진과 전보를 축하하며 회식을 하다가 변을 당한 걸로 전해졌다. 은행 직원 4명 중 3명의 주검이 임시 안치된 서울 영등포병원 장례식장에선 간밤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흐느낌과 탄식이 빗소리를 뚫고 울렸다. 은행에 다니던 조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 온 삼촌 부부는 “착하고 성실하고 다 잘하는 조카였다. 몇년 같이 살기도 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전날 밤 택시를 타고 황급히 장례식장 앞에서 내린 한 유가족은 그 자리에 주저 앉으며 “아빠 어떡해. 싫어. 아빠 아니라고 해줘”라고 울부짖었다.

은행 직원들의 빈소는 이날 오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함께 차려졌다.

한겨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3231 "금연, 이렇게 하면 효과적" WHO가 직접 내놓은 지침 보니 new 랭크뉴스 2024.07.05
43230 푸틴 "美 대선기간 양국간 건설적 대화 불가능…결과 기다릴것" new 랭크뉴스 2024.07.05
43229 서정희 "故서세원, 나랑 살았으면 분명히…많이 안타까웠다" new 랭크뉴스 2024.07.05
43228 ‘채 상병 특검법’ 통과…공은 대통령에 new 랭크뉴스 2024.07.05
43227 앤서니 파우치 박사 “바이든 정신 건강 의심 않는다” new 랭크뉴스 2024.07.05
43226 [사설] 체불임금 사상 최대…노사 상생 위해 최저임금 인상 최소화해야 new 랭크뉴스 2024.07.05
43225 104일 만에 만나 1초 인사‥'불화설' 한동훈에 윤상현 "사퇴하라" new 랭크뉴스 2024.07.05
43224 기말고사 끝나고 물놀이하던 중학생 숨져 new 랭크뉴스 2024.07.05
43223 [제보는 MBC] "부동산 거래 안 했는데 양도세 내라니"‥국세청의 '황당한 고지' new 랭크뉴스 2024.07.05
43222 돼지고기 한점까지 철저히 더치페이’…소개팅 나온 여성의 황당한 사연 new 랭크뉴스 2024.07.05
43221 허웅 전 여친, 청담동 아파트 등기 인증하며 "작작해라" new 랭크뉴스 2024.07.05
43220 "폭염 속 딸이 차에 갇혔어요"…울고 있는 아이 구출 대신 카메라 들이댄 '유튜버' 부모 new 랭크뉴스 2024.07.05
43219 시청역 참극, ‘노인’ 운전면허증 뺏으면 해결되나 new 랭크뉴스 2024.07.05
43218 서방 척지고 아시아에 공들여 '새 안보체계' 내세운 푸틴 new 랭크뉴스 2024.07.05
43217 '김하성 공갈' 혐의 임혜동 구속영장 또 기각..."방어권 보장 필요" new 랭크뉴스 2024.07.04
43216 조국도 뒤늦게 달려왔다…文 청와대 출신 100명 모여 '치맥' new 랭크뉴스 2024.07.04
43215 日 과학자들 “10년째 기초과학 투자 제자리…지원 늘려달라” new 랭크뉴스 2024.07.04
43214 [단독] 경찰,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 후보 수사‥사업가 "돈 준 거 맞다" new 랭크뉴스 2024.07.04
43213 서울 아파트값 15주째 상승…매수세가 매도세보다 강해져 new 랭크뉴스 2024.07.04
43212 시청역 참사 희생자 조롱 쪽지… 경찰, 작성자 대상 내사 착수 new 랭크뉴스 2024.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