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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몇 해째 극심한 가뭄…리오그란데강 수위 낮아져
미 ‘멕시코, 1944년 물조약’ 어겨…“보내줄 물이 없다” 반발
리오그란데강이 2022년 7월26일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 근처에서 물이 말라 강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과 멕시코 국경선을 따라 흐르는 리오그란데강은 오랫동안 불법 월경의 통로로 주목을 받아왔다. 미국에 몰래 입국하려고 강을 건너다 안타까운 익사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종종 신문 지면을 장식하기도 하고, 지난해엔 미국 텍사스 주정부가 밀입국자를 막기 위해 리오그란데강에 부표식 수중장벽을 설치해 멕시코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런 리오그란데강이 이번엔 양국 간 물 분쟁으로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다. 미국과 멕시코는 1944년 조약을 맺어 그동안 필요한 강물을 서로 나눠 써왔다. 그러나 최근 몇 해째 이어지는 기록적인 가뭄과 물 수요 증가 등이 겹쳐 강물이 줄어들면서 두 나라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강물이 줄어들면서 고통스러운 건 미국이나 멕시코 모두 마찬가지다. 특히 경작지에 댈 물이 부족해 농업 관련 산업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쪽에선 멕시코가 1944년 조약에 따라 약속한 물 분배를 하지 않고 있다고 강력히 성토하고, 이에 멕시코는 “극심한 가뭄으로 당장 보낼 물이 없다”며 맞서고 있다.

미국의 텍사스 출신 상·하원 의원들은 연방 예산 당국에 멕시코가 미국에 신뢰할 만한 물 분배에 동의할 때까지 미국의 멕시코 원조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내년 하원 예산법안엔 물 부족분을 채울 때까지 멕시코에 대한 지원을 보류한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이 작업을 주도한 공화당 하원의원 모니카 데라크루즈는 워싱턴포스트에 “멕시코가 우리에게 빚진 물을 제대로 보내도록 동기부여가 이뤄지길 빈다”고 말했다. 앞서 텍사스주 당국자들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에게 양국 간 외교현안 목록에 물 분쟁을 넣어서 멕시코에 외교적 압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삐걱거리는 1994년 물조약

리오그란데강은 미국 콜로라도주의 로키산맥에서 발원해 뉴멕시코주를 거쳐 텍사스주에 들어선 뒤 미국-멕시코 국경선을 따라 멕시코만까지 굽이굽이 3051㎞를 흐르는 북미에서 4번째로 긴 강이다. 강은 상류 지역에서 물을 끌어 쓰는 곳이 많아 텍사스주에 접어들 즈음엔 거의 바닥을 드러낸다. 그런 강의 하류에 물을 공급해주는 건 주로 멕시코 북서지역 산맥에서 흘러드는 6개 남짓한 지류들이다. 따라서 리오그란데강 하류의 수량은 무엇보다 이들 지류에서 유입되는 수량에 크게 의존한다.

2023년 7월 미국 텍사스주에서 불법 월경을 막기 위해 리오그란데강에 수중 장벽을 설치하고 있다. 이글패스/로이터 연합뉴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맺어진 1944년 조약은 멕시코가 5년마다 미국에 리오그란데 강물 175만에이커-피트를 공급하도록 하고 있다. 1에이커-피트는 1에이커(4046㎡)의 면적을 1피트(30.48㎝) 높이로 채울 수 있는 양으로, 175만에이커-피트는 215만㎥에 해당한다. 이는 당시 멕시코에서 흘러드는 지류 수량의 3분의 1 남짓한 규모다. 대신 미국은 해마다 콜로라도강의 물 150만에이커-피트(185만㎥)를 멕시코에 넘겨주기로 했다. 콜로라도강은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발원해 캘리포니아, 멕시코를 거쳐 캘리포니아만으로 흘러나간다.


1944년 조약은 한동안 큰 잡음 없이 운영됐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조약은 1944년 당시 기상 자료를 토대로 체결된 것이다. 당시에도 단기적인 가뭄 등으로 인한 일시적인 물 부족은 예상했다. 물 공급 기준 연도를 1년이 아닌 5년 단위로 설정한 건, 일시적으로 물이 부족할 때 다음해에 채워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약은 심지어 5년 단위 기간에 지키지 못한 수량을 다음 5년 단위 기간으로 이월하는 것도 허용했다. 그렇지만 누구도 지금처럼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기후변화로 몇 해에 걸쳐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는 상황을 예상하진 못했다.

기후변화로 기록적인 가뭄 이어져

상황은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이후 더욱 나빠졌다. 리오그란데강 가까운 멕시코 쪽 국경 지역은 미국 시장을 겨냥한 과일과 야채 재배지로 변모하며 물 수요를 부추겼다. 1993년부터 2007년 사이에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농산물 무역은 무려 4배나 늘어났다. 멕시코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미국 자본이 미국 시장과 가까운 이 지역에 집중 투자되면서 공장도 늘어났고 당연히 인구도 폭증했다. 농업용수와 생활용수 수요 증가가 뒤따르는 건 당연했다.

멕시코는 이미 1992년에서 2002년까지 두 차례 거푸 가뭄으로 물이 부족해 미국에 약속한 수량을 보내지 못한 전례가 있다. 이에 대해 미시간대학(UM)의 연구원 비아니 루에다는 미국 시엔엔(CNN)에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물 분쟁으로 정치적 긴장이 높아진 첫 사례”라고 말했다.

멕시코는 이번에 다시 약속한 물을 미국에 보내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번 5년 단위 기간은 2020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다. 양국 간 1944년 조약 관리기구인 ‘국제국경·물위원회’(IBWC)의 미국 쪽 위원장인 마리아 엘레나 히네르는 “벌써 5년 기간 중 3년 반이 지났지만, 아직 1년치의 수량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며 “멕시코가 조약의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 최초로 마킬라도라(보세가공무역지대)가 조성된 티후아나시 메사데오타이 공업지구의 한 외국계 금형공장 모습. 자료사진

멕시코-미국 양쪽 모두 고통

몇 해째 물 공급은 줄어드는데 수요는 늘어났으니, 강 수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리오그란데강 하류의 아미스타드(애미스태드) 저수지와 팔콘(팰컨) 저수지는 저수율이 6월 중순 기준으로 26%와 9.9%까지 떨어졌다.

당연히 생업을 이들 저수지에 크게 의존하던 미국 쪽에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텍사스주에서 면화와 옥수수, 콩 등을 기르는 농부 브라이언 존스는 “텍사스 리오그란데 계곡의 농부는 물이 없거나 물이 빠르게 떨어져 가는 중”이라며 “사탕수수 농업은 이미 설 자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실제 텍사스주에서 유일했던 사탕수수 처리 공장은 지난 2월 끝내 문을 닫고 말았다.

주변에선 오렌지와 레몬, 귤 재배 농가가 다음 희생자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등 경제적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 텍사스 에이앤엠(A&M)대학의 지난해 12월 연구보고서는 “물 부족이 지속되면 리오그란데 계곡 관개농업의 경제 손실이 5억달러(약 7천억원)에 이르고 일자리 8400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멕시코 쪽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멕시코는 2011년 이후 지금까지 가장 길고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전국의 90%가 가뭄의 영향권에 있으며, 특히 치와와주 등 북부지역은 상황이 더 안 좋다. 멕시코 국립 자율대학(NAUM)의 기후학자 빅토르 마가냐 루에다는 “기록적인 가뭄으로 북부 멕시코의 댐 수위는 전례 없이 낮고, 심지어 지하수 수위도 형편없이 낮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멕시코가 1944년 조약을 이행할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실제 2020년 멕시코 정부가 리오그란데강의 지류인 리오콘초스강의 댐 수문을 열어 물을 미국 쪽으로 흘려보내려 했을 땐 치와와 지역 농민들이 “물을 보내면 우린 다 죽는다”며 들고일어나 유혈사태까지 빚어졌다. 이런 민감한 상황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치와와주 연방하원의원인 살바도르 알칸타르는 “물이 없다면 무엇을 대신 내줄 수 있겠느냐”며 “누구도 우리에게 없는 것을 달라고 요구할 순 없다”고 말했다.

리오그란데강 물 분쟁은 이제 기후변화가 어떻게 나라 간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갈등 해소를 위해선 먼저 80년 전 두 나라가 맺은 조약을 달라진 현실에 맞게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히네르 위원장은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 게임’이 되지 않기 위해선 양쪽 다 기후변화로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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