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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개혁, ‘공공성’개혁부터
③ 의대생 선발·교육 방식 바꿔야
지난 5월30일 오전 서울 한 학원에 붙어있는 의대 입시 관련 홍보물. 연합뉴스


정시 21%, 강남구 소재 고교 졸업
고소득층 자녀 의대 진학률 늘고
돈 되는 분야로 쏠림 현상 나타나
“심층면접 등 선발 방식 다양화를”

지난 6월28일 아침 7시30분께부터 서울 강남구의 한 입시 전문학원에 수십명 학생이 오전 자습을 위해 모여들었다. 이들은 학원 내 국어·수학 과목 사전 시험에서 선별된 ‘의대반’ 학생들. 월 200여만원의 수업료에도 학원에는 의대반 빈자리를 묻는 문의가 1년 내내 이어진다고 한다. 특히 올해는 의대 정원 증원으로 20대 회사원이 사표를 내고 의대반 수업을 듣는 경우도 있다고 수강생들은 설명했다.

비수도권 한의대를 휴학하고 의대반에 다니는 정아무개(19)씨는 “의대를 나와 벌 수 있는 소득이 (다른 학과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는 생각에 한번쯤은 반수를 해보는 대학 1·2학년생들이 많다”며 “(의대 증원 반대) 수업 거부로 학교에 안 나가는 의대생들이 입시 커트라인이 더 높은 의대로 갈아타려고 여기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대 정원 연 2천명 증원으로 지역·필수의료 인력 공백이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피부과·안과·성형외과 등 인기 진료과 정원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의사 인력을 공급하면, 내과·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진료과로 인력이 유입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교육 현장에선 높은 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바라고 의대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을 ‘성적 줄세우기’로 뽑는 방식으로는 ‘돈 되는’ 과목에만 의사가 넘치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동은 계명대병원 교수(이비인후과)는 “의사가 몇 명 늘어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지역·공공의료에서 일할 의사를 배출하려면 어떤 사람을 뽑아, 어떻게 교육할 것이냐가 의대 증원 논의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대 합격 5명 중 1명은 ‘강남 출신’

1일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의대 신입생 선발 결과’를 보면, 2024학년도 전국 32개 의대의 정시 모집 합격생의 20.8%는 서울 강남구 소재 고교를 졸업했다. 이어 서울 서초구(8.0%), 양천구(6.1%), 경기도 성남시(5.6%) 등의 순으로 합격생이 많았다. 모두 수도권이면서 대치동(강남구)·목동(양천구)처럼 유명 학원가를 끼고 있고, 수험생과 학부모의 교육열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지역들이다. 더욱이 강남구 출신 비율은 2022학년도 16.3%, 2023학년도 19.1% 등으로 계속 오름세다.

의대생의 경제적 배경도 일부 계층에 치우쳐있다. 문정복 민주당 의원실이 한국장학재단에서 받은 ‘국가장학금 신청 현황’을 보면, 지난해 1학기 전국 39개 의대에서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의대생 7347명 가운데 고소득층(소득 9·10구간)으로 분류돼 지원 대상에서 4154명(56.5%)이 탈락했다. 전체 대학생 가운데 같은 소득 구간 비중(25.3%·2022년 기준)보다 두배 넘는 수치다. 지난해 1학기 9구간 가구의 월 소득인정액은 1080만원 이상, 10구간 가구는 월 1600만원 이상이다. 충분한 ‘뒷바라지’를 받은 수험생이 높은 성적을 얻고, 이들 상위권 학생 상당수가 의대에 진학하면서 특정 지역·계층 출신이 의대생의 다수를 구성하는 경향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 의대 문턱을 넘은 학생은 의사가 돼 더 높은 벌이로 보상 받으려 한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변호사 등 다른 전문직과 비교해도 의사는 압도적인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는 이른바 ‘금수저’ 직업”이라며 “이런 보상을 기대하고 의대로 몰린 이들이 의사 사회 안에서도 성형외과 등 더 높은 소득을 얻는 분야로 쏠리는 ‘이중 쏠림’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출신 배경의 획일화는 의사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를 사회 일반과 동떨어지게 만드는 부작용도 낳는다. 환자·시민사회와 의사 사이의 공감을 어렵게 하고, 이는 최근 의-정 갈등 때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집단 사직과 의대생의 집단 수업 거부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특정 계층에서만 의사가 배출되어서는 환자와의 정서적 교감이 어려워지고, 지역·공공의료 등의 사명감을 가진 이들도 갈수록 줄어들 것”이라고 짚었다.

‘줄 세우기’ 벗어난 선발방식 다양화를

전문가들은 이런 현실을 개선하려면 우선 ‘성적 중심 선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내신·수능 등 정량화된 시험 성적 대신 심층 면접 등을 통해 의사에게 필요한 자질을 따지자는 것이다. 지원자들을 소그룹으로 나눠 토론·조별 과제 등을 수행하게 해 다양한 자질을 평가하는 다중미니면접(MMI) 등이 해당한다.

실제로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이 처음 도입된 2005년에는 상당수 의전원이 출신 대학 등을 가리는 ‘블라인드’ 방식으로 다중미니면접을 진행한 바 있다. 의전원의 수능시험 격인 의학교육입문검사(미트·MEET) 점수 등으로 1차 합격자를 선별하되, 이후는 봉사·희생정신, 감성적 사고력, 이성적 판단능력과 봉사활동 이력 등을 면접에서 중점으로 평가한 것이다. 임준 인천시의료원 공공의료사업실장(예방의학)은 “수도권의 한 의전원에서는 다중미니면접 도입 첫 해에 전국 14개 대학 출신이 합격하는 등 이른바 ‘스카이 대학’에 쏠리지 않은 다양한 학생을 선발할 수 있었다”며 “이 학생들 전원이 본과 4학년에 의사 국가시험을 합격하는 등 의사로서의 자질도 우수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후 상당수 의전원이 ‘상위권 대학 출신 합격자가 줄어든다’는 이유 등으로 블라인드 면접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학교가 의전원을 다시 의대로 전환한 뒤 일부 대학이 다중미니면접을 하고 있지만, 입시 학원들이 이 면접에 대비한 강좌들을 열면서 면접 방식에 대한 보완도 필요해졌다. 이에 일각에서는 입시 때 한번의 면접이 아닌 장기간의 평가·관찰을 거쳐 예비 의대생을 선발하자는 제언이 나온다. 한숭희 서울대 교수(교육학)는 “일정 정도 이상의 성적을 올린 지원자를 의대에 ‘예비 입학’ 시키는 방식도 검토할 만 하다”며 “대학 1학년 동안 의사로서의 자질·덕목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 이들만 의대 본과에 진급시키고, 나머지는 다른 학과에서 학업을 이어하게 하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국외 대학들처럼 선발 과정에서 성적 외에 사회경제적 배경 등을 함께 고려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미국 유시(UC) 데이비스 의대는 2012년부터 신입생 선발시 ‘사회경제적 불이익 척도 점수’를 평가한다. 지원자가 살면서 경험한 사회경제적 불이익에 대해 가점을 주는 것으로, 가구 소득이 낮고 소외된 지역 출신일수록 유리하다. 김동은 교수는 “우리 사회가 원하는 의사가 배출되려면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의대에 올 수 있도록 입학 전형이 바뀌어야 한다. 당사자뿐 아니라 그런 배경을 가진 학생들과 함께 공부한 경험도 영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공공의료 특화 인력 별도 선발해야”

정부도 의사의 출신 지역·계층 쏠림 문제에 손을 놓은 건 아니다. 교육부는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서 2025학년도 지역인재선발 의무가 있는 비수도권 26개 의대의 전체 모집인원(3202명) 가운데 1913명(59.7%)을 지역인재전형으로 뽑도록 했다. 1025명을 선발했던 전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그럼에도 이렇게 선발된 의대생이 졸업 후 지역의료 분야에 남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미 강남 등의 학원가에선 지역인재전형 응시를 위해 자녀를 초·중학교 때 비수도권으로 전학 보내자는 입시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또 현재 제도로는 의대 졸업자가 지역에서 의사로 근무하게끔 강제할 근거가 없다.

지역·공공의료 분야에서 장기간 일할 전문 인력을 별도로 선발·교육하자는 목소리가 커진다. ‘공공의대’를 설립해 장학금 등을 지원하는 대신 졸업 뒤 의료취약지 등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일하게 하자는 제안이 대표적이다. 의사이자 교육평론가인 문호진씨는 “정원 일부를 지역인재전형 등으로 뽑더라도 (수도권·고소득 분야로 진로를 잡자는) 학교 분위기와 선배·졸업자들의 인식이 주입되기 쉽다”며 “기존의 의사 문화와 분리된, 일종의 ‘의료 사관학교’를 세워 지역 공공의료에 복무할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이 (의무복무 기간 뒤에도) 보건 당국의 정책 결정 등을 주도하며 지역 의료의 핵심 인력이 되게끔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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