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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현지시간)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을 이끄는 마린 르펜 의원이 프랑스 북부 에넹-보몽에서 총선 1차 투표를 한 뒤 투표소를 떠나며 언론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 조기 총선 1차 투표 개표 결과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이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 1958년 제5공화국 성립 이후 반이민주의를 내세운 극우정당이 총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7일 2차 투표에서도 1위를 지킨다면 RN은 창당 52년 만에 총리를 배출해 권력의 중심에 입성하게 된다.

최근 극우 확산이라는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유럽연합(EU) 내 다른 국가들은 프랑스 총선의 후폭풍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RN의 국정 참여는 프랑스 국내 정치뿐 아니라 유럽의 정치·외교·경제 전반까지 흔들 수 있어서다. RN은 자국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 통합을 표방해온 EU 중심의 기존 질서와 부딪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과 맞물려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환경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서방의 내부 균열이 가속화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투표율 67% 육박…1차 투표 당선자 절반은 극우
1일(현지시간)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총선 1차 투표에서 RN이 이끄는 우파연대가 득표율 33%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좌파 연합인 신민중전선(NFP)이 2위(28%)에 올랐다.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여당 르네상스를 비롯한 범여권연합(앙상블)은 3위(20%)에 그쳤다.

이번 총선 투표율(66.7%)은 2022년 총선 1차 투표율(47.5%)보다 무려 19.2%나 높아 뜨거운 선거 열기를 보여줬다.

1차 투표만으로 당선자가 확정된 지역구는 전체 577곳 중 76곳으로, RN 진영은 39명, NFP는 32명, 앙상블은 2명이 각각 당선됐다. 프랑스는 총선 1차 투표에서 지역구 등록 유권자의 25% 이상이 참여해 1위 후보자가 총투표 수의 50% 이상을 얻으면 당선이 확정된다. 50% 이상을 얻은 후보자가 없을 땐 12.5% 이상 지지를 얻은 후보자끼리 2차 투표를 치른다.

RN의 실질적 지도자인 마린 르펜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권자들이 마크롱 7년의 경멸적이고 부패한 권력을 끝내려는 열망을 투표로 명확히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직 승리가 아니며 폭력적인 극좌 정당의 손에 프랑스가 넘어가는 걸 막아 달라” “마크롱이 조르당 바르델라(RN 대표)를 총리로 임명할 수 있게 (RN의) 절대 과반수(577석 중 289석)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프랑스에선 대통령이 다수당 또는 다수 연정의 지지를 받는 인물을 총리로 임명하는 게 관례다.

마크롱 대통령은 성명에서 “높은 투표율은 이번 선거의 중요성과 정치적 상황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 프랑스인의 열망”이라며 “2차 투표에서 RN에 맞서 민주적·공화적 결집이 필요한 때가 왔다”고 말했다.

일간 르피가로는 1차 투표 최종 득표율을 기준으로 RN이 240~270석, NFP는 180~200석, 범여권은 60~90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2년 총선에서 이들은 각각 89석, 131석, 245석을 얻었다. 2년 사이 극우 세력이 최대 3배까지 세를 키운 것이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프랑스 북부 르투케의 한 투표소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부인 브리짓 마크롱이 총선 1차 투표를 위해 투표소를 나서고 있다. AFP=연합뉴스



3자 이상 대결 선거구 후보 사퇴가 변수
2차 투표의 최대 변수는 유권자들의 극우 정당에 대한 견제 심리와 후보 3명 이상이 대결하는 선거구의 후보 사퇴 여부다. 현재 2차 투표에서 3자 대결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는 300여 곳에 이르는데 이들 지역구에선 극우 정당을 견제하려는 NFP와 앙상블 후보 중 한 명이 사퇴하고 다른 편에 표를 몰아줄 수 있다.

실제 NFP와 앙상블은 3위로 결선에 올라간 소속 후보의 사퇴를 추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앙상블 소속인 가브리엘 아탈 총리는 “극우세력이 권력의 문턱에 와 있다. 우리 목표는 2차 투표에서 극우의 당선을 막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NFP에 속한 극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도 “2차 투표에서 RN에 맞설 유일한 대안은 NFP”라며 표 결집을 촉구했다. CNN은 “앙상블과 NFP가 개별 지역구에서 후보 사퇴 여부를 결정하는 문제를 놓고 일주일간의 정치협상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30일 가브리엘 아탈 총리가 파리 총리 관저 뜰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차 투표 결과 만약 RN이 제1당을 차지하면 프랑스에서는 27년 만에 역대 네 번째 동거 정부가 탄생하게 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프랑스 전후 역사에서 세 번의 동거 정부가 있었지만 이렇게 정반대의 견해를 가진 정당이 동거한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1972년 창당한 RN은 오랜 기간 인종차별주의 등으로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RN은 당의 급진적 이미지를 완화하는 이른바 ‘탈악마화’ 전략에 나서 반이민주의는 고수하되, 반유대주의와는 거리를 두고 공공서비스 확대 등을 제안해 외연을 확대했다.

르피가로는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른 요인이 ‘물가’와 ‘이민’이었다고 짚었다. RN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반이민 정책을 내세웠고, 감세 정책, 유럽연합에 대한 예산지원 삭감, 정년 연장 환원 등을 통해 기존 지지층은 물론 여성과 청년층의 표심을 모았다는 분석이다.



“의회 상황 더 나빠져…대통령 권력 제한 시도할 듯”
극우의 득세를 막기 위해 조기 총선 카드를 던졌던 마크롱의 승부수가 오히려 극우가 더 빨리 권력의 중심에 진입하게 하는 자충수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금 개혁 등 각종 ‘마크롱표 개혁’을 추진하면서 밀어붙이기식 태도로 원성을 사던 차에, 독단적인 조기 총선 결정으로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는 설명이다.

FT는 “많은 유권자들은 엘리트주의적인 마크롱을 거부하고, 전통적인 반이민 입장에 더해 생활비와 임금 문제를 강조하는 RN을 선호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마크롱은 2022년 총선 이후 안정적인 연정을 구성할 수 없어 의제를 달성하려는 시도에 좌절감을 느꼈는데 이제 상황은 훨씬 더 나빠 보인다”며 “프랑스 대통령은 외교와 군사 정책에 대해 광범위한 통제권을 행사해왔으나 RN이 절대 다수를 얻으면 대통령 권력의 제한을 시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RN이 1당을 넘어 과반 의석까지 달성하느냐도 관심사다. 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는 “과반을 달성하지 못하면 총리직을 맡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로이터통신은 “극우, 중도, 좌파 중 어느 그룹도 단독으로 통치하거나 연립 협상을 할 만큼 의석 수가 많지 않다면 정치가 마비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달 30일 국민연합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가 파리에서 총선 1차 투표 후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RN의 국정 참여, 서방 유럽 전반에 균열 가능성
이런 가운데 RN이 프랑스 기업을 우선하는 법률을 제정하려고 하는데, 이는 EU 단일 시장 규정 위반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프랑스 의회는 국가 예산을 통제하고 있어 RN이 프랑스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축소하려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RN의 승리가 올해 선거가 예정된 독일 동부나 오스트리아 등에서 EU에 회의적인 다른 극우 정당들의 세를 키우는 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폴리티코는 RN이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회의적이라며 이 정당의 승리가 서방 동맹을 분열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이날 유로화는 소폭 상승했다. 앞서 시장에선 RN 집권시 재정적자가 부각되고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에 유로화가 하락했으나, 1차 투표 결과 RN이 2차 투표에서 과반을 확보할지 미지수라는 ‘안도 랠리’가 펼쳐졌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전문가를 인용해 “르펜을 막기 위해 중도와 좌파연합이 (후보 사퇴 등으로) 형성할 동맹이 믿을만해 보이기 시작하면 프랑스 시장은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지난달 30일 프랑스 서부 낭트에서 프랑스 조기 총선 1차 투표 출구조사 결과를 좌파 지지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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