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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출산 뒤 저산소성 뇌손상 중증 치매
남편, 병원비·간병비·생활비 부담에 '파산'
직장 그만두고 3년째 아내를 24시간 돌봄
육아 부담에 전세금 인상 통보까지 '아찔'
아내를 요양원으로? "차마 그렇게는 못해"
정부, 출산 권하지만 의료 사고엔 무관심
"불가항력 사고에 국가 지원 늘려야" 호소
아기 낳으러 병원 갔던 아내가 어린아이가 돼버렸어요. 병원비, 간병비, 생활비 부담에 파산 신청까지 했습니다.
전북 군산시에 살고 있는 김모(44)씨는 2021년 출산 중 사고로 중증 치매를 앓게 된 아내를 돌보고 있다. 병원비와 간병비, 육아 비용 등으로 간병 파산에 내몰린 그는 "출산 중 사고에 대한 국가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3월 20일 전북 군산시에서 만난 김모(44)씨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출산 중 발생한 사고로 중증치매 진단을 받은 정모(40)씨의 남편이자, 세 살 쌍둥이 남매의 아빠다. 3년째 이어진 아내 간병과 아이들 육아로 그는 몹시 우울해 보였다. 자신과 가족에게 찾아온 불행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에 김씨는 더욱 힘들었다.

사고는 일요일이었던 2021년 10월 3일 발생했다. 출산을 위해 입원한 서울의 한 대학병원 분만실로 오전 6시 30분쯤 들어갔던 아내는 다음 날 새벽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은 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3주 만에 기적적으로 눈을 떴지만 뇌손상 후유증으로 중증 치매환자가 됐다.

정신적 고통도 컸지만 경제적 고통은 김씨의 일상을 더욱 짓눌렀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내와 신생아중환자실(NICU)에 입원한 아이들 병원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아내가 병원에 11개월 정도 입원했는데 한 달 평균 간병비와 입원비만 1,000만 원 정도 나왔다"며 "도저히 비용을 마련할 수 없어서 아내 재활치료는 3개월 만에 중단하고 퇴원했다"고 말했다.

작은 회사에 다녔던 김씨는 사고 이후 직장을 그만뒀다. 치매환자가 된 아내가 밤낮없이 집 밖으로 나가려는 증상을 보이면서 24시간 아내 곁을 지켜야 했다. 알뜰살뜰 모아 놓은 돈은 병원비 등으로 대부분 써버렸기 때문에 간병인을 따로 둘 형편이 안 됐다. 쌍둥이 분윳값과 기저귓값, 공과금과 식비 등을 감당하기도 벅찼다. 김씨가 아내의 재활에 온 힘을 쏟고 있지만 치매증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7세였던 아내의 정신연령은 5세, 4세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생활이 이어지면서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신용카드 돌려막기로 몇 달을 버텼지만 카드 결제대금이 연체되면서 그마저도 이용이 막혔다. 신용불량자가 됐고 개인 파산을 신청했다. 한 달 전엔 새벽 3시쯤 집을 나간 아내를 50분 만에 도로에서 겨우 찾은 아찔한 경험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해 이사 갈 집도 알아봐야 한다.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주변의 작은 위로조차 상처로 돌아왔다. 김씨는 간병을 그만하고 아내를 요양원으로 보내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화가 치밀었다. 아내가 회복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이유도 아니고 아기를 낳다가 아내가 잘못됐는데 요양원에 보내는 것은 차마 못 할 짓"이라며 "건강할 때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옆에 있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출산 당시 심장과 뇌에 문제가 있던 쌍둥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김씨는 "국가에선 출산을 장려하고 있지만 아이를 낳다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해선 사실상 나 몰라라 한다"며 "최소한 출산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선 병원비나 간병비, 재활비, 생활비 등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출산 중 사고 지원 강화하고 보상금 늘려야

김모(44)씨의 아내는 2021년 출산 중 사고로 중증 치매를 앓게 됐다. 집 밖을 나가 배회하는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서 남편은 직장도 그만둔 채 아내를 간호하고 있다. 사진은 출산 직후 3주간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난 아내와 힘겹게 대화하는 모습. 김씨 제공


김씨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해 의료사고 중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멀쩡히 분만실에 걸어 들어간 아내가 중증 치매환자가 돼버렸기에 의료과실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병원에선 어떤 과실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중재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의료진 잘못이 인정되지 않거나 중재가 이뤄지지 않으면, 의료소송을 위해 또다시 큰 빚을 져야 할 수도 있다.

김씨처럼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환자 가족을 돕기 위해선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재도 분만 과정에서 의료진 과실이 없는 사고가 발생하면 환자 측에 최대 3,000만 원까지 보상하고 있다. 하지만 보상금이 병원비나 간병비를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적용 대상도 분만 관련 신생아 뇌성마비나 산모 및 신생아 사망으로 제한돼 있다. 출산 중 뇌손상을 입은 김씨의 아내는 의료진 과실과 상관없이 보상금 신청조차 할 수 없다.

성원준 칠곡경북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금을 일본 수준인 최대 3억 원까지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가 필요한 만큼 실질적으로 피해 지원을 해줘야 불필요한 의료소송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의료소송 전문가인 김성주 변호사도 "한번에 지원 범위와 금액을 늘리기 어렵다면, 최소한 보상금에 재활치료 비용(개호비)을 포함시키는 등 적용 대상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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