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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로 본 어느 환자의 죽음
병원장·의사 그 누구에게도 책임 묻지 않은 국가
2021년 12월27일 입원했던 김형진(가명·당시 45살)씨가 5포인트 강박 상태로 묶여 있다 병상에서 사망한 뒤 보호사들에 의해 담요에 말려 병실을 나가기 직전의 모습이다.

*편집자: 손과 발, 가슴을 단단히 묶는다. 환자는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침대에 결박되어 누워 있다. 299개 병상을 갖춘 작은 정신병원인 춘천ㅇ병원에서 환자는 구원받지 못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시시티브이 영상에서 환자는 매일 신음하고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다 서서히 죽어갔다. 의사도, 간호사도, 보호사도 적절한 구호조처를 외면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그 죽음의 동조자인 것처럼 보인다.

정신병원은 정신장애를 치료하는 곳이다. 그러나 치료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꽁꽁 묶어놓고 방치하는, 고문에 가까운 일들이 지금도 어느 정신병원에서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한겨레는 3회에 걸쳐 정신병원의 격리·강박 실태를 고발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정신병원에서 장시간 격리·강박 중 김형진(가명·45)씨가 숨진 지 2년 반이 지났지만, 병원장·주치의·당직의·간호사 등 주요 사건 관계자 가운데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찰은 사망 직후 112 신고를 ‘병사’로 처리했고, 유족의 병원장 등 고소(업무상 과실치사 등)는 무혐의 결정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수사 의뢰로 경찰은 의료법 위반 수사에 나섰지만, 간호사 8명을 송치하는 데 그쳤다.

사건은 경찰의 안일한 대응과 부실 수사로 꼬이기 시작했다. 형진씨 사망 판정 2시간 뒤인 2022년 1월8일 아침 8시50분께 뒤늦게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남동생 김병진(가명)씨는 미심쩍은 마음에 112에 변사 신고를 하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당시 강원경찰청 112종합상황실이 작성한 ‘112 신고 사건처리내역서’를 보면, 경찰은 오전 9시34분 신고를 접수하고 9시40분께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이 병원에 도착했을 당시 형진씨 주검은 유족 동의 없이 임의로 23㎞ 떨어진 강원효장례문화원 냉동고로 옮겨진 뒤였다. 보존돼야 할 현장도 훼손됐다. 하지만 경찰은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했다. 경찰은 사망 당일 보호실의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확보했지만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고, 출동 3시간 반 만에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경찰은 CCTV 확보하고도 수사 안 했다

‘조현병으로 자의 입원. 변사자 가족이 변사자의 사망에 대한 이의가 없고 부검을 원치 않는다고 진술하여 병사 처리함.’ 당시 작성된 112 신고 사건처리내역서는 경찰의 부실한 사건 처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형진씨의 전 부인 박지은(가명)씨는 한겨레에 “유족들이 ‘사망에 이의가 없다’고 한 적 없고, 병명은 조현병이 아니며, 자의 입원이 아닌 강제 입원이었다”고 밝혔다. 실제 형진씨는 양극성 정동장애, 즉 조울증을 겪고 있었다.

형진씨 사망 두달 뒤인 2022년 3월 유족은 의료진 4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춘천경찰서는 7개월 뒤 무혐의 종결 처리했다.

유족 고소로 시작된 수사 당시 경찰은 삭제된 폐회로텔레비전 영상을 복구한 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료중재원)에 분석을 의뢰했다. 의료중재원은 “환자가 입원 직후 장시간 강박 처치를 받았으며, 사망 직전에는 약 66시간50분 동안 신체 강박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조치는 폐색전증으로 인한 사망 위험성을 증가시킬 수 있음. 이런 잠재적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절한 사지 운동을 시켜주거나 환자의 신체 자세를 바꿔주는 조치가 필요하나 의무기록 및 시시티브이 영상에서는 시행 내역이 확인되지 않음”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경찰은 주목하지 않았다. 경찰은 의료중재원 판단 중 “부검이 시행되지 않아 (사망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으며 심혈관계 부작용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대목을 근거로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춘천경찰서 김아무개 경감은 “시시티브이를 쭉 훑어보기는 했으나 전문 의료지식이 없어 의무기록지와 비교 분석은 못 했다”며 “의료중재원의 감정 결과를 따랐다”고 설명했다.



유족의 진정을 받아 인권위가 조사에 나서면서 ㅇ병원의 과실이 일부 드러났다. 인권위는 영상과 의무기록지를 대조해 격리·강박 시간을 계산하고 문제점을 찾아냈다. 인권위는 결정문에 “입원 당일의 격리 및 강박 시행일지만 보아도 총 38차례의 간호사정이 이뤄진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5시간 이상 분량의 시시티브이 영상에서 의료진이 피해자의 혈압·맥박·체온을 확인하는 모습은 5회에 불과하다”며 의무기록지가 허위 작성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2021년 12월29일 오후 5시께 피해자에 대한 강박을 해제하고 1시간 뒤인 6시께 다시 강박이 시행됐다고 기재돼 있으나 영상에 강박을 해제하는 장면이 없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의사는 법망 빠져나가고 간호사만 송치

인권위가 ㅇ병원을 ‘의료법 제22조 3항 위반(진료기록부 거짓 작성) 혐의’로 수사 의뢰하며 올해 3월 간호사 8명이 검찰에 송치되긴 했지만, 병원장·주치의·당직의는 아예 송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의료법 제2조 2항 5호엔 ‘간호사의 진료 보조 행위는 의사의 지도하에 수행한다’고 규정돼 있음에도 감독·관리 책임이 있는 병원장과 의사는 법망을 빠져나간 셈이다. 이후 검찰은 8명의 간호사를 구약식 처분했고 6월 법원은 이를 최종 확정했다.

2022년 5월 유족은 서울북부지법에 병원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유족을 대리하는 박호균 변호사는 “상황을 좀 지켜보다 경찰에 이의 신청을 할 계획이다. 최소한 과실치사 이상의 형사처벌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시시티브이 영상을 보면 너무 오랫동안 묶어놔서 사람이 사망한 것이 명백하다. 환자가 난동을 부리지도 않았는데 묶어놓은 것은 굉장히 악의적이고 고의적인 측면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전 부인 박씨는 “경찰의 수사에는 실망과 분노뿐이다. 인권위 결정문이라도 있으니까 용기를 내고 여기까지 버텼다”고 말했다.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 춘천경찰서 모습. 고경태 기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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