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채상병 특검법 거부 규탄 및 통과 촉구 범국민대회’가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지난 5월25일 오후 박정훈 대령 예비역 동기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혜윤 기자 [email protected]


이순혁 | 기획부국장

지난주 큰조카가 해병대에 입대했다. 어머니도 여동생도 조카의 해병대 지원 소식을 알게 된 뒤 몇달 동안 틈만 나면 “왜 하필 해병대를…”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귀신 대신 멀쩡한 사람 잡는 해병대가 됐다는데, 어느 부모가 자식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겠는가. 사실 의연한 척 조카의 어깨를 두들겨준 나 또한 해병대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덜컥했다.

출입기자가 돼 어느 분야나 조직, 기관을 가까이서 지켜보게 되면, 바깥에서 보던 이미지와 너무 달라 생경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내 경우엔 검찰과 더불어 군이 특히 그랬다. 지금으로부터 12~13년 전, 이명박 정부 시절 국방부를 출입하게 됐다. 그해 봄 인기 탤런트 현빈의 입대로 해병대 주가가 치솟았는데, 그 직후 몇달 동안 어이없고 안타까운 해병대 관련 뉴스가 줄을 이었다.

백령도와 대청도 등 서해 최북단을 방어하는 해병6여단에서 부하를 성추행한 대위가 입건되고, 가혹행위를 한 부사관들이 단체로 보직해임됐다. 같은 해병6여단 소속 상병이 케이(K)-2 소총 실탄으로 머리에 관통상을 당해 숨진 채 발견됐고, 인천 교동도에서는 해병2사단 소속 초병이 멀쩡한 민항기를 미확인 비행물체로 착각해 실탄과 예광탄 수십발을 발사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름엔 강화도 해안 소초에서 해병이 총기를 난사해 해병 여럿이 숨지는 일도 일어났다. 총기 난사 사건이 나자 유낙준(지난 총선에서 경기 남양주갑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해병대사령관은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 뜻을 밝혔다가 바로 번복해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중에 압권은 해병2사단장이 무고 등 혐의로 군검찰에 구속된 것이었다. 직속상관인 유 사령관이 당시 정권 실세의 측근에게 ‘사령관으로 승진하면 3억5천만원을 전달하겠다’는 이행각서를 써준 의혹이 있다며 이를 군 수사기관과 대구지검 포항지청에 제보하도록 한 혐의였다. 유 사령관의 해군사관학교 동기이자 경쟁자였던 해병대 전 부사령관이 배후로 지목됐고, 뇌물 등 혐의로 뒤이어 구속됐다. ‘유 사령관을 모신 대대장(중령) 6명은 모두 진급했지만 경쟁자였던 전 부사령관 쪽은 전원 물을 먹었다’, ‘아무개 대령이 수뇌부 인사 부인에게 수천만원을 전달했다가 승진에 떨어진 뒤 되돌려받았다’는 등의 소문도 파다했다.

가장 군대다운 군대, 엄격한 상명하복 문화로 유명한 해병대에서 무고와 음해, 파벌과 인사비리 의혹이라니…. 믿기지 않는다는 말에 한 취재원은 “해병대는 다른 군에 비해 규모가 작아 보직을 놓고 경쟁도 심하고, 이 때문에 금품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는 말을 해줬다.

10여년 전 해병대 별들의 구속과 오락가락 사령관을 보며 ‘세상에 이런 장군이…’라며 혀를 찼다면, 요즘엔 ‘그보다 더한 별들도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한 해병대 최고위직들의 행태 덕분이다. 이첩기록 회수 당일 해병대 중앙수사대장과 한 통화에서 “공정하고 원칙대로 (수사)했으니 기다려보자”고 해놓고선,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줄곧 박정훈 대령이 항명했다고 주장하며 ‘대통령 격노설’과 관련해 거짓말쟁이로 몰아간 김계환 사령관이 대표적이다. 경찰에 부하들을 탓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내고 직속 부하 쪽으로부터 “법적 책임이나 먼저 받으라”며 면박당한 임성근 사단장은 또 어떤가. 군인다운 기품, 기개와는 거리가 먼 이들에게는 “해병 똥별 출세 위해 귀한 아들 군말 없이 죽어주랴”(지난달 29일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열린 해병대 예비역·야7당 주최 범국민집회) 말이 아까울 지경이다.

1960~70년대 해병부사관으로 10년가량 근무하며 월남(베트남)에 두 차례 다녀오신 장인은 소주 한잔 걸치면 으레 레퍼토리처럼 해병대 시절 얘기를 풀어놓곤 하셨다. 그런데 요즘엔 군 얘기를 거의 안 하신다. 몇달 전 뉴스를 보며 “해병대 얼굴에 먹칠하는 인간들”이라고 역정을 내신 게 전부인데, 최근 여동생과 유난히 반가운 목소리로 통화하셨다. “우리 사돈 청년이 정말 잘한 결정을 했어요. 해병대를 자원하다니, 진정한 사나이로 다시 태어나 돌아올 겁니다.” 장인은 언제쯤 자랑스러운 해병대의 추억을 다시 얘기하시게 될까, 큰조카는 해병대 훈련 잘 받고 있을까, 똥별에서 시작한 여러 상념이 이어지는 나날이다.

한겨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2690 [포착] 필로우버스터? ‘필리버스터’ 시작하자 잠든 與의원들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89 '윤석열 탄핵' 청원, 13일 만에 100만‥"탄핵 청문회도 가능"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88 새마을금고 쇄신 본격화…“10억 이상 대출 통제 강화”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87 응급실에 택시 돌진 사고… 택시기사 “급발진이었다”[현장 화보]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86 장맛비 주춤…남부 무더위 속 내일 밤 다시 비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85 ‘검사 탄핵’ 반발 확산···이재명 수사 지휘 간부들 “나를 탄핵하라”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84 경찰 “블랙박스에 소리도 담겨…부부 싸움 없었다” [지금뉴스]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83 채 상병 특검법 상정…민주, 필리버스터 종료→표결 수순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82 시청역 사망자 안치된 곳에 또 돌진 사고…70세 택시기사 "급발진"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81 경찰 "역주행 차량 스키드마크 없어…호텔 나오자마자 가속"(종합2보)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80 한동훈 “尹과 목표 완전히 일치… 신뢰 없을 수 있겠나”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79 미끄럼 사고 막는 ‘고임목’, 경사로엔 필수지만…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78 “22대 국회 생각보다 더 엉망”… 고성·조롱에 삿대질까지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77 60대 기사가 몰던 택시, 중앙의료원 응급실로 돌진···3명 부상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76 또 고령 운전자… 국립중앙의료원 들이받은 택시에 3명 부상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75 영풍·고려아연, 이번엔 황산처리 갈등으로 '충돌'…소송전으로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74 서울광장 조성 이후 일방통행길 된 사고도로‥상인들 "가끔 역주행 차량 보여"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73 ‘불법 공매도’ 크레디트스위스 과징금 271억…“역대 최대 규모”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72 레미콘 운송노조, ‘무기한 휴업’ 철회하기로···4일부터 운송 재개 new 랭크뉴스 2024.07.03
42671 ‘최고경영자상’ 박현주가 들려주는 미래에셋證 창업기… “과감한 투자결정 주저하지 않았다” new 랭크뉴스 2024.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