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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김진표 전 국회의장 등이 지난해 4월 9일 서울 중구 영락교회에서 열린 부활절 연합예배에 참석한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오늘은 ‘여러분의 마음은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정신건강 정책 혁신위원회’에서 이렇게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묻고 싶다. 윤 대통령의 마음은 안녕하신가, 하고. 윤 대통령이 김진표 전 국회의장에게 했다는 ‘이태원 참사 조작 가능성’ 발언을 접하고 든 생각이다.

2022년 12월 5일 국가조찬기도회 직후 윤 대통령과 김 전 의장이 나눴다는 대화 내용을 재구성해본다. 김 전 의장 회고록 및 박홍근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김 전 의장에게서 듣고 메모한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는 것이 옳습니다. 스스로 물러나야 여야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본인 앞날을 위해서도 바람직합니다.”

“의장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강한 의심이 가는 게 있어 아무래도 결정을 못 하겠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태원은 먹거리나 술집도 별로 없고 볼거리도 많지 않은데 그렇게 많은 인파가 몰렸다는 게 이해가 안 갑니다. MBC와 KBS, jtbc 등 좌파 언론들이 2~3일 전부터 사람이 몰리도록 유도한 방송을 내보낸 이유도 의혹입니다. 의혹을 먼저 규명하지 않고 이 장관을 사퇴시키면 나중에 범죄사실이 확인될 경우 좌파 주장에 말리는 꼴이니, 정부의 정치적·도의적 책임도 수사 끝난 후에 지게 해야 합니다.”

대통령실은 회고록이 공개되자 “멋대로 왜곡했다. 개탄스럽다”는 입장을 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와 별개로 “공식적 대화가 아닌 것을 가지고, 회고록을 빙자해 흘리고 있다. 정치인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것”(뉴스1)이라고 비판했다. 어느 대목이 어떻게 왜곡됐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참사가 발생했다. 시민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분노와 비난의 화살은 온통 정부로 향했다. 취임한 지 6개월도 안 된 윤 대통령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찼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국가애도기간을 설정하고, 추모법회·추모예배·추모미사에 갔다.

1주일이 지났으나 분노는 더 뜨거워졌다. 참사 전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가 쏟아졌음에도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나서다. 윤 대통령은 ‘사랑하는 오른팔’ 이상민 장관을 잘라야 할 처지에 몰렸다.

이 무렵 극우 유튜브를 중심으로 전파되던 음모론은 수렁에 빠진 대통령에게 ‘지푸라기’가 돼줬을 법하다. ‘역시 우리 잘못이 아냐! 상민이를 자를 이유도 없고!’ 극우 유튜버들은 ‘토끼 머리띠를 한 남성이 밀었다’ ‘각시탈 착용자들이 기름을 뿌렸다’ ‘민주노총이 연루됐다’ 같은 음모론을 떠들어댔으나 모두 사실무근으로 결론났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 <대한민국은 무엇을 축적해왔는가>가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위기에 맞닥뜨리면 도피처를 찾는 게 인지상정이다. 황당한 음모론에 기대고 싶어지기도 한다. 지도자는 그래선 안 된다. 위기일수록, 사실만 보아야 한다. 나와 내 가족·참모·동기·선후배·지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다는 ‘프리즘’을 통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야말로 지도자의 필수 덕목이다. 이런 용기가 없으면, 고위공직은커녕 사기업 간부 구실도 해내기 어렵다. 하물며, 음모론에 경도된 대통령의 위험성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윤 대통령은 일종의 가상세계 속에 사는 것 같다. 총선 이후 가장 놀란 장면은 국민의힘 의원 워크숍이었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이) 맥주도 놓지 않아야 된다고 했는데, 제가 좀 욕먹겠다”며 의원들의 술잔을 채워주고 ‘어퍼컷’도 날렸다. 술잔 돌리기도, 어퍼컷 세리머니도 가상세계에서 찾아낸 지푸라기요 도피처일 터다.

도널드 트럼프와의 첫 TV토론 후 위기에 몰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말했다. “내가 젊은이가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조금은 안심했다. 최소한의 현실인식은 있구나 싶어서다.

윤 대통령은 어떤가? 자신과 정권을 둘러싼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있나? 현실공간에선 20%대 지지율(한국갤럽 기준)이 고착화하고 있다. 18~49세 지지율은 11~12%에 불과하다. 청장년 10명 중 9명은 윤 대통령에 반대한다는 이야기다. 탄핵소추를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80만명을 넘어섰다.

윤 대통령은 극우 유튜브와 알코올과 어퍼컷의 세계를 떠나야 한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시민이 안전해진다. 윤 대통령은 당장 김 전 의장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솔직하게 밝히고, 이태원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기 바란다.

“인간의 마음은 민주주의의 첫 번째 집이다”(미국 교육자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 윤 대통령의 ‘마음’을 묻는 이유다.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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