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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탑훈장·세계요리대회 1등·사회복지사까지
“내 열정의 원동력은 아들…아들 인생까지 열심히 살 것”
김봉곤 롯데호텔 부산 총괄 셰프가 27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로비 쪽에서 포즈를 취해보이고 있다. 윤웅 기자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최초의 셰프. 주인공은 바로 롯데호텔앤리조트 롯데호텔 부산 총괄 김봉곤(54) 셰프다. 은탑산업훈장은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금탑 다음인 2등급 훈장이다.

국민일보는 지난 27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김 총괄과 인터뷰를 가졌다. ‘은탑산업훈장’ 수여자라는 수식만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인물이었다. 김 총괄은 ‘운 좋게’ 받은 것이라 했지만 뚜렷한 요리 철학, 요리에 대한 열정, 도전을 계속하도록 만드는 그만의 원동력 등에 대해 듣고 나니 지나친 겸손이었다.

김 총괄은 1997년 롯데호텔 부산에 입사해 2004년 업계 최연소로 조리 기능장 자격을 취득했다. 2008년 싱가포르 국제요리 대회 동상 등 국내외 다수의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특히 2008년 세계 4대 요리대회 중 하나인 IKA 독일세계요리올림픽 양식 전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20년에는 부산광역시로부터 ‘요리 명장’ 인증을 받았으며 지난해는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케이터링 등 여러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이하는 김 총괄과의 일문일답.

-1988년 만 18세였던 시절부터 베이커리에서 근무를 했다. 원래 셰프의 꿈이 있었는지?
“셰프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아주 우연에서 시작했다. 경남 함안 시골이 고향이었던 저는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했다. 여행 가이드가 되고 싶어 부산외대 진학을 꿈꿨지만 떨어진 뒤로는 집에서만 하루를 보냈다. 유독 가사일을 돕는 게 재밌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취업도 못 하고 있는 게 답답하셨나 보다. 어머니께서 평소 알고 지내던 수박 도소매 사장님이 베이커리를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 바로 나를 부산으로 보내셨다. 그게 시작이었다.”

-제빵의 길이 아닌 셰프로의 길에 들어선 배경이 궁금하다.
“군대를 다녀오면서 제 인생이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에야 빠띠쉐가 인정받고 베이커리와 카페 붐이 일어나고 있지만, 예전에는 그저 빵집이었다. 인기 직종도 아니었다. 전역 후에 또 베이커리에서만 일한다면 내 인생이 순탄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역 후 우연히 해운대 백사장 길을 걷는데 당시 하얏트호텔이었던 건물이 보였다. 지금에야 유리 건물이 흔하지만, 그땐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 10층 정도 되는 곳에서 흰색의 요리복과 모자를 쓰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데 그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나는 호텔 요리사가 되어야겠다’ 그때부터 생각했다. 바로 특급 호텔에는 취직할 수 없으니 작은 호텔에 취직해서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갔다.

돌이켜보니 베이커리에서 근무했던 3년의 시간이 셰프로서 일하며 큰 도움이 됐다. 베이커리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디저트 요리를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베이커리와 요리를 같이 배우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또 색채감 있는 빵들을 접하면서 베이커리에서의 디스플레이를 요리에 적용하기도 하면서 다른 셰프들보다 창의력 면에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2020년 11월 롯데호텔 부산의 총주방장을 맡게 됐다. 이게 셰프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 시기는 코로나19로 인해 호텔은 물론 많은 식당이 고통을 받던 시기였다. 호텔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선배들은 버티지 못하고 호텔을 관뒀다. 특별히 총주방장이 되려고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총 주방장의 자리는 하늘의 내려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코로나로 호텔이 멈추다시피 했던 시기는 오히려 제가 많은 걸 도전할 수 있게 했다.

손님이 없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평소 리더가 되면 어떤 것들을 해야겠다고 메모를 해둔 노트가 있다. 지금도 이 노트를 쓰고 있다. 그중 하나가 멘토-멘티 요리경진대회였다. 셰프는 도제식으로 교육이 이뤄지는 부분이 크다. 사람과 사람의 끈으로 이어지는 기술직이다. 2인 1조로 각 분리된 업장에서 대회를 진행했다. 입상한 작품은 셰프들의 이름을 따서 매장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입상하지 못한 작품 중 아이디어가 독창적인 것은 제가 조금씩 손봐서 메뉴로 내놓기도 한다. 일종의 팝업스토어처럼 한정판으로 판매한다. 인기가 많았던 건 다양한 면 요리, 햄버거 그리고 먹물을 입힌 베이징덕 요리였다.”

-코로나 시기에 요리에만 몰두하신 것이 아니라 다른 도전도 하셨다고 들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생교육원을 통해 과정을 수료하고 실습시간까지 직장(호텔) 다니면서 채우기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제가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아들 때문이었다. 아들은 발달장애(자폐)를 앓고 있다. 자격증을 따고는 발달장애 관련 협회에서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예전엔 무료급식 봉사를 했었는데 자격을 갖추고 나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의견을 먼저 제시하거나 제가 리드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더라. 나중에 그(사회복지) 영역도 제 삶에서 키워가려고 한다.”

김봉곤 롯데호텔 부산 총괄 셰프가 27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라운지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윤웅 기자


-은탑산업훈장을 받게 된 이야기가 궁금하다.
“저는 살면서 은탑산업훈장이라는 것을 처음 들어봤다. 훈장이라는 것은 6·25 참전용사 같은 분들, 국가유공자분들에게 주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처음에 고용노동부에서 연락이 왔을 때 스팸 문자라고 생각했다. 이후에 검증을 위해 담당자들로부터 전화와 문자가 오니까 그때야 긴가민가하기 시작했다. 상을 받으러 가는 날까지도 그랬다.

상을 받고 나서 생각해보니 2030 부산엑스포 관련 활동을 많이 했던 게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또 지난해 2월 부산에서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리지 않았나. 그때 롯데호텔 부산이 케이터링 사업을 했다. 하루 5톤의 식자재를 동원해 선수들과 대회 관계자들 1500여명을 위해 약 3000인분을 준비했다. 매일 현장에 나가서 위생사고는 없는지, 음식은 잘 나가고 있는지, 맛에 문제는 없는지 등을 일일이 점검했다.

대회가 끝나고 시청, 식약처 등 각 기관에서 정부 포상을 줬다. 이런 여러 요소들이 훈장에 녹아있지 않나 생각한다. 직원들이 묵묵히 노력해줬고, 또 제가 롯데호텔 부산 소속이 아니었다면 이 훈장은 내 것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훈장을 받은 뒤로는 무게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저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열정이 있다, 포기하지 않는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제가 주로 지인들에게서 듣는 말들이다. 개인사로 말하자면,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 중 큰 부분은 내 아들이다. 아들이 아니었다면 평범한 요리 생활을 했을 거다. 어렵게 얻은 아들이었는데 50개월쯤 자폐 판정을 받았다. 회복이 어려운 장애라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내가 아들 인생까지 같이 살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들은 20대지만 정신연령은 4세 수준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정말 유명해지면 아들이 길을 잃더라도 ‘저 사람 롯데호텔 셰프 아들 아닌가’하고 길을 찾아 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유명인이 되면 아내와 내가 죽은 다음에도 어떻게든 아들 혼자 살 길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요리경연대회에 많이 도전했던 것도 ‘아들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데 내가 이런 것도 못 하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대회를 준비할 때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입상에 대한 간절함으로 불안할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들을 생각하면서 버텼다.”

-세계 4대 요리대회 중 하나인 IKA 독일세계요리올림픽에서 한국인으로는 20년 만에 1위를 차지했다. 준비 과정, 그리고 수상작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호텔 소속이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요리에 대한 욕심이 계속 있었다. 그래서 요리경연대회를 많이 나간 측면도 있다. 2008년 독일요리올림픽에 나가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당시 항공비만 거의 500만원이었다. 아내에게 어렵게 말을 꺼내니 대출로 받은 1000만원을 주면서 ‘잘 다녀오라’하더라. 퇴근이 밤 10시였는데 그 이후로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주방에서 잔 적도 꽤 있었다. 그렇게 3개월을 꼬박 지내고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금에야 K-푸드가 많이 알려졌지만 당시만 해도 유럽권 사람들에게 한국의 맛은 생소한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적인 맛은 살리면서 컨셉은 서양식으로 했다. 대게 살과 참치 아가미를 병합해 만드는데 거기에 한우 육회 맛을 더 했다. 서양인들은 간장 맛을 잘 모르니, 간장으로 맛을 냈다. 이런 부분들이 독특하다고 평가받아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요리는 특허를 받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요리에 대한 철학을 묻고 싶다. 셰프님의 철학은 무엇인지, 영감은 어디서 얻는지 궁금하다.
“단순함, 봉사, 열정이다. 우선 복잡한 요리는 만들기도 힘들고 먹기도 어렵다. 기본적인 재료에 충실하면서 본연의 맛을 살리되, 단순함만 가져가지 않고 거기에 뭔가를 더해 특별함을 가미하는 게 맛있는 요리라고 생각한다. 또 색채감까지 잘 살려야 한다.

요리라는 것은 내 입뿐만 아니라 남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다. 부부끼리 서로 밥을 해주는 것은 봉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요리도 마찬가지다. 봉사 정신이 있어야 좋은 요리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열정은 내가 최고로 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저는 취미도 직업과 관련된 것들을 주로 가지려 한다. 최고의 자리는 한 번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가랑비에 옷 젖듯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 번의 폭우로 나만의 경력이 쌓이진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나의 케파(capacity·능력)를 넓히기 위해 직업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취미를 갖는다.

일례로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미술 전시 관람하는 것을 즐긴다. 요리도 그림처럼 하자는 생각이 있다. 또 하나는 백화점 명품관의 디스플레이를 유심히 보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디스플레이에 엄청난 공을 들일 것이다. 보면 나무에 가방이 걸려있을 때도 있고, 매장의 한쪽에 제품 하나만 우뚝 세워놓을 때도 있고 다양하다. 그런 데서 영감을 얻어 저만의 요리 디스플레이를 만들어 낸다. 퇴근 후에 롯데백화점 명품관을 한번 돌고는 한다(웃음).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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