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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진영에 대한 비난과 증오, 선동으로 변화를 대체해온 오랜 습속을 이젠 버릴 때가 되었다. 비록 속았을망정 윤석열의 ‘충성’ 발언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건 한국이 징그러울 정도로 ‘사람에게 충성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30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제22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만찬을 마친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강준만 | 전북대 명예교수

2013년 10월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등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당시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에서 배제되는 등 수사 외압이 심각하다고 폭로했다. 이에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법사위 위원들이 반발했는데, 의원 정갑윤은 “증인은 사람(전 검찰총장 채동욱)에게 충성하는 것이냐?”라고 질타하듯이 물었고, 이에 윤석열은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라고 답변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 발언 뒤 윤석열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스타가 되었다.

당시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트위터에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검사의 오늘 발언, 두고두고 내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도 그해 11월9일 트위터에 “한번도 검찰에 대한 대화를 해본 적 없는 윤석열 형(저와 동기이죠)… 굴하지 않고 검찰을 지켜주세요. 사표 내면 안 됩니다”라고 격려했다. 조국은 박범계의 글을 공유하며 “더럽고 치사해도 버텨주세요”라고 했다.

이외에도 많은 민주당 인사들이 윤석열에 대한 칭찬과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11월 하순, 한국일보 법조팀 기자들이 출간한 ‘민간인 사찰과 그의 주인’의 추천사에서 국회의원 문재인은 윤석열을 이렇게 찬양했다. “역시 사람이 희망입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진실을 비추는 불빛들이 있습니다. 검찰의 윤석열 같은 분들입니다.”

사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의 원천을 따지자면, 정갑윤이 최초로 발언한 것이고, 윤석열은 이에 그대로 대답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발언은 훗날 문재인 정권이 윤석열을 검찰의 요직인 서울중앙지검장, 이어 검찰총장에 발탁하면서 재소환되었고, 조국 사태를 계기로 윤석열과 문 정권 사이에 큰 균열이 일어나면서 다시 큰 화제가 되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윤석열의 캐치프레이즈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정갑윤의 말마따나 윤석열이 정갑윤에게 이 발언의 저작권료를 줘야 마땅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윤석열은 대통령이 된 후 여당 정치인들과 고위 공직자들에게 자신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권위주의적 인물로 돌변했다. 아니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 게다. 충성은 받되 하진 않겠다는 이중 기준, 또는 “지구는 나를 중심으로 돈다”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을 사람들이 미처 몰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이 충성을 바쳐야 할 상전은 국민이었건만, 윤석열은 여론을 무시함으로써 충성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가 충성을 바친 유일한 대상은 공적 마인드가 결여된 아내였다. 적당한 선에서 충성한 것도 아니었다. 민심의 분노를 폭발시켜 국정운영을 망가뜨릴 정도로 충성했다. 자기 부인을 문제 삼았다는 이유로 총선을 지휘하는 비상대책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할 정도였고, 총선 패배 후 자기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비대위원장 탓을 할 정도였다. 왜? 지구는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현재 야당이 거침없이 대통령 탄핵을 입에 올릴 수 있는 배경이다.

윤석열에 대한 분노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보수 인사들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높지만, 이는 보수의 힘에 대한 과대평가다. 윤석열이라는 인물을 과하게 띄우면서 ‘초고속 출세’까지 밀어붙였고, 갈등이 생기자 무리한 탄압을 가해 국민의 뇌리에 긍정적으로 각인시킨 사람들이 누군가? 보수는 차려진 밥상에서 “이게 웬 떡이냐”라는 심정으로 숟가락질을 했을 뿐, 밥상을 차려준 건 문 정권을 비롯한 진보 진영이었다.

어느 진영의 책임이 더 큰가를 따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진영 간 이권 투쟁으로 전락한 정치의 갱생이다. 상대 진영에 대한 비난과 증오, 선동으로 변화를 대체해온 오랜 습속을 이젠 버릴 때가 되었다. 비록 속았을망정 윤석열의 ‘충성’ 발언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건 한국이 징그러울 정도로 ‘사람에게 충성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쓴소리를 잘해서 성공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여야를 막론하고 맹목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지도자와 강성 팬덤에 영합해 아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아닌가? 사람들은 내심 그런 세상을 경멸하지만 개별적으론 저항하지 못한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사람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부족주의 관행에 찌든 직장과 각종 조직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꿔온 보통 사람들의 희망과 열망을 배신하고 모욕한 윤석열의 죄가 엄중하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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