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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관제센터 문일선 경감]
국내 첫 관제센터서 CCTV 수사 20년
신속 추적 위해 영상·PC기법 독학해 
"후배들은 나 같은 시행착오 안 겪길"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강남도시관제센터에서 문일선 경감이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국내 최고 CCTV 수사 전문가로 통한다. 박시몬 기자


"절 제자로 받아주세요!"

2004년 여름, 경기 성남시 수정구의 한 낡은 빌라에서였다. 1층에 있는 작은 디자인 업체 사무실에 한 남자가 찾아와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그는 포토샵에 열중인 직원들에게 "이건 뭐예요?", "저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라고 물으며 귀찮게 했다.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하자 폭탄 선언을 했다.

"제발 좀 가르쳐주세요. 대신 무보수로 일하겠습니다!"


알고 보니 이 남자는 '경찰관'이었다. 국내 최고의 폐쇄회로(CC)TV 수사 전문가 문일선(55) 경감이 CCTV 분야로 뛰어든 '햇병아리' 시절 얘기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강남도시관제센터에서 '대한민국 CCTV 수사의 산증인' 문일선 경감을 만났다.

무작정 포토샵부터 배웠다

문일선 경감이 자신이 집필 중인 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박시몬 기자


그가 포토샵을 배우고자 했던 이유는 뭘까. 문 경감은 이렇게 말한다.
"범인을 잘 잡고 싶었거든요."
당시 그는 강남관제센터 CCTV 수사관으로 일했는데, 책으로 배우는 영상분석기법만으론 범인 검거에 한계가 있다고 느꼈단다.

분석기법을 직접 찾던 중 '영상의 기본은 사진'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결국 영상을 보려면 사진을 알아야 하고, 사진을 분석하려면 포토샵을 익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무작정 디자인 업체를 찾아 실무를 가르쳐달라고 '읍소'했다. 집기를 나르고 사무용품을 정리하는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쉬는 날마다 디자인 업체를 방문해 무보수로 일하며 포토샵을 배웠다. 그때 익힌 기술은 CCTV에 흐릿하게 포착된 번호판, 용의자 인상착의를 특정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CCTV 화면을 주시하며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문일선 경감의 모습. 박시몬 기자


문 경감이 CCTV 수사에 뛰어든 계기가 있었다. 2002년 그는
절도범을 잡다 다리를 다쳤고, 1년이나 휴직
을 해야 했다. 고관절 후유증이 심해 다리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복직 시점이 가까워지자 막막함이 커졌다. 그때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강남에 CCTV 관제센터 만들어지는데 여기서 일해볼래?"

CCTV 관제센터는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모든 CCTV를 제어하는 시설이다. 지금이야 경찰 수사에서 CCTV가 빠질 수가 없어, 서울 25개 자치구마다 관제센터가 하나씩 있다. 서울에서 운영되는 CCTV 카메라 수만 9만여 대, 관제요원은 480명이다.

22년간 CCTV 보며 쌓은 노하우



그러나 20년 전 강남관제센터가 처음 문을 열 때 관제요원은 15명(경찰관 3명 포함)뿐이었다. 지금보다 규모도 작았지만 CCTV 수사에 대한 개념·체계조차 없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저기가 도대체 어디야?"
수백 개의 CCTV 중 특정 CCTV에 범인이 포착돼도, 옆에 있는 수십 장의 종이 목록에서 해당 CCTV 위치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찾던 시절이었다. 문 경감은 "불편함을 떠나 범인 검거가 늦어지니 돌아버릴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문일선 경감이 자신이 집필 중인 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문 경감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관제센터 전체를 뜯어고치기로 결심했다. 이곳저곳 발품을 팔아가며 체계를 정비해갔다. 여러 기술도 개발했다. 대표적인 건
①지리정보시스템(GIS) ②프리셋 ③투망감시 시스템
이다. GIS는 전체 CCTV 위치를 하나하나 기록한 지도 프로그램이다. CCTV 영상이 뜨면, 예전처럼 목록에서 하나하나 찾을 필요 없이 해당 CCTV 위치가 자동으로 뜬다. 프리셋은 CCTV 카메라 방향을 단축키 하나로 조정하는 시스템이고, 투망감시는 특정 CCTV를 선택하면 해당 카메라를 중심으로 범인이 도주할 만한 동선의 여러 CCTV를 띄우는 장치다. 지금은 일반화된 기술들이지만 문 경감의 땀과 노력이 아니었다면 도입이 한참 늦어졌을 것이다.

CCTV에 만연한
'왜곡 현상'도 개선
했다. 예를 들어 CCTV상 범인은 파란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는데 잡고 보니 회색 옷 차림인 경우가 있었다. 용의자 키가 170㎝가 안 돼 보였는데 검거하니 180㎝의 거구였다. 문 경감은 "화면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고 털어놨다. 원인을 알아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직접 전문가와 관련 업체들을 찾아다녔고 유형별 CCTV 왜곡 현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퇴직해도 노하우 전파되길"

강남관제센터 내부를 배경으로 자신이 집필 중인 책을 들고 서 있는 문일선 경감. 박시몬 기자


체계가 잡히자 관제센터 덕에 범인을 신속·정확하게 붙잡는 사례가 늘기 시작했다. 강남관제센터는 20여 년간 '2012년 강남 부녀자 납치사건' '2020년 역삼동 망치 살인미수 사건' '2024년 코인 강도사건' 등 대형 범죄를 포함해 수천 건 이상의 강력범을 잡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다.

다만 아직도 한계는 있다. 관제센터별 CCTV 수사 능력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이미 개발된 기술과 노하우들이 공유되지 않은 탓이다. 강남에서 1분 만에 처리할 사건이 다른 지역에선 며칠이 걸리는 식이다.

그래서 문 경감은 퇴직(5년 후)을 앞두고 펜을 들었다. 책 제목은 'CCTV 관제, 영상분석, 영상추적수사'. 700쪽이 넘는 CCTV 수사 백과사전이다. 꼬박 3년이 걸렸고, 올해 8월 출간 예정이다. 20여 년 CCTV 수사를 하며 쌓은 노하우와 그간 현장에서 배운 실무 내용을 녹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나온 CCTV 수사 서적과의 차별점을 들라면, 이 책엔 이론은 다 빼고 문 경감이 22년간 직접 경험한 실무만 담았다는 것. 일과 집필을 병행하다 과로로 쓰러진 적도 있지만 그는 책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손에서 펜을 놓지 않을 생각이다.
"제가 퇴직하더라도 노하우는 전수돼야죠. 후배들은 저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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