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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AP

부모가 아이들 손에서 스마트폰을 뺏는 것과 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요? 전혀 관계없는 두 상황을 비교하는 이유는 두 행위를 실행했을 때 결과가 비슷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예민해질테고, 양쪽 다 강하게 거부하겠지요. 말도 제대로 하기 전부터 스마트폰에 노출되는 요즘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은 '디지털 탯줄' 같은 존재입니다. 이 '디지털 탯줄'을 이제 끊어줘야 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유럽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 확산하는 '노 스마트폰' 운동

스페인과 영국, 아일랜드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학부모들 사이 자발적인 '노 스마트폰'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고 AP 통신은 보도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최근 엘리사벳 가르시아 퍼마니어라는 여성이 '휴대전화 없는 청소년기'라는 이름의 SNS 채팅창을 만들었습니다. 이 창은 빠르게 확장해 현재 만 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부모들은 다른 학부모들에게 자녀가 16세가 될 때까지 스마트폰을 주지 않기로 동의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10대 두 명에게 살해당한 16세 소녀 브리아나 게이의 어머니가 16세 미만 어린이의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접근을 차단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노 스마트폰' 운동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에스더 게이 씨는 딸을 살해한 10대 두 명이 온라인에서 폭력적이고 유해한 콘텐츠를 즐겨본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10세 미만의 세 자녀를 둔 데이지 그린웰이라는 영국 여성도 '스마트폰 없는 자녀를 위한 부모 연합'이라는 SNS 채팅창을 만들었습니다. 그린웰 씨가 강조하는 것 역시 '자녀가 16살이 될 때까지 스마트폰을 주지 말자'는 것입니다. 채팅창을 개설한 지 나흘 만에 2천 명이 가입했고, 지역별로 수십 개의 채팅창이 더 늘었습니다. 이제 영국 대부분 지역에서 '노 스마트폰' 운동을 주제로 한 채팅창이 생겨났습니다.

아일랜드에서는 지난해 한 마을의 초등학교 교장들이 학생들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지 말라는 편지에 서명하고 게시한 후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그 후 학부모들은 자발적으로 서약서에 서명해 어린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세 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12세가 되면 스마트폰을 갖게 됩니다. 스페인에서는 10세가 되면 어린이의 4분의 1이, 11세가 되면 거의 절반이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12세가 되면 이 비율은 75%까지 올라갑니다. 또 영국 어린이의 55%가 8~11세 사이에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12세에는 이 수치가 97%로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마트폰 소유 연령대를 부모가 자체적으로 16세까지 올리는 건 쉽지 않은 길입니다. '노 스마트폰' 운동에 참여하는 부모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아이가 내 아이 한 명만이 아니라, 주변 대부분 아이라면 그 길이 보다 쉬워질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들이 함께 '노 스마트폰' 운동을 벌이는 이유입니다.

■ "13세까지 스마트폰 소지 금지"

프랑스에서는 최근 어린이와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이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이를 토대로, 프랑스 정부는 3세 미만 영·유아의 영상 시청 금지와 13세까지 스마트폰 소지 금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를 소지할 수 있게 하되 인터넷 기능이 없는, 순수하게 전화나 문자메시지 전송 정도 가능한 휴대전화 사용만 허가하자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스크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이 아이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짚고 있습니다. 신경학과 교수, 심리학자 등 이번 보고서에 참여한 집필진은 스마트폰 등에 노출된 어린이나 청소년의 건강과 관련해, 입증됐거나 의심되는 증상을 몇 가지 항목으로 정리했습니다.

스마트폰이 어린이나 청소년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 더 짧고, 질이 낮은 수면
■ 눈의 피로와 근시
■ 신체 활동 감소
■ 언어 발달 능력 감소
■ 불안, 우울증 (소셜네트워크 사용 관련)

프랑스 보고서 '아이들과 스크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에서

■ "디지털 통금 시간 필요"

집필진은 만장일치로 자기 전 스마트폰 화면을 자주 보면 수면의 양과 질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합니다. 불면증 등 수면 장애 위험이 두 배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더 큰 문제는 악순환입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다음 날 스마트폰을 보는 것과 같은 수동적인 활동을 더 선호하게 되고, 또다시 수면의 질이 낮아지는 흐름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취침 1~2시간 전 스마트폰 화면을 끄는 '디지털 통금' 시간이 필요하다고 연구에 참여한 소아 신경 전문의는 강조합니다.

프랑스 어린이와 청소년의 취침 전 스마트폰 사용 비율을 조사한 결과이다.

TV나 스마트폰 화면에 자주 노출되면 눈이 피로해지고 시력이 나빠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소리지요. 그런데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주의가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젊을수록 눈은 청색광, 흔히 말해 화면에서 뿜어내는 블루라이트에 더 민감합니다. 25세 이상은 수정체의 청색 범위에 있는 단파장의 50%만 통과시키지만, 8세 이전에는 80% 이상 통과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릴수록, 시력을 감퇴시킬 수 있는 블루라이트에 훨씬 더 취약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블루라이트는 또한 생체시계를 조절하고 수면을 촉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도 방해한다고 합니다.

집필진이 더 심각한 현상으로 꼽는 것은 생후 첫 몇 년간 화면 앞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인지 능력, 특히 언어 습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소아 과학'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 결과를 보면 스마트폰 화면에 노출되는 시간이 제한적이고, 첫 노출 연령이 늦을수록 언어 능력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학술지에는 호주의 한 연구진이 220개 가족을 대상으로 화면 앞에서 보내는 시간과 부모와 자녀 간 대화의 세 가지 측정치(성인의 말, 아이의 발성 및 말하기)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한 내용도 실렸습니다. 연구 결과 3세 때 화면 앞에서 하루에 한 시간을 보낸 어린이는 약 397개의 성인 단어, 또 294개의 발성 및 68개의 대화를 놓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프랑스 영유아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조사한 결과이다.

집필진은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화면 앞에 있는 아이는 완전히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의력은 저하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화면이 반사 주의력을 과도하게 자극해 자발적인 주의력 발달은 방해한다는 설명입니다. '발달 신경 심리학' 학술지에 인용된 문헌을 보면 실제 12세 미만 어린이가 화면에 장기간 노출되면 주의력이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보고서에서 일부 집필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SNS의 과도한 사용과 정신 건강 문제 사이의 연관성도 발견했습니다. 미국 보건 당국의 2023년 5월 보고서는 "13~17세 청소년의 3분의 1 이상이 거의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SNS가 ' 정신 건강 위기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우려합니다 . 또 지난해 11월에 발표된 국제앰네스티 보고서를 보면, 틱톡이 관심을 끌기 위해 사용하는 알고리즘 시스템은 정신 건강에 해로울 수 있는 동영상을 연출하며 일부는 자살을 이상화하는 데까지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학교에서는 금지…학교 밖 사각지대

어린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이 왕따, 자살 충동, 불안, 학습에 필요한 집중력 저하와 관련이 있다는 공감대가 수년간 형성되면서 많은 국가에서는 이미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6~15세 어린이들의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은 초등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했고, 만 12세부터 시작되는 고등학교에서는 교사가 교육 활동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만 스마트폰을 켤 수 있게 했습니다. 또 영국에서는 어린이가 접속할 수 있는 사이트에 더 엄격한 규칙을 부과하는 '온라인 안전법'을 채택했습니다.

문제는 학교 밖에서의 스마트폰 사용입니다. 그럼 이제 공은 다시 부모에게로 넘어갑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전 세계의 수많은 부모가 아이들과 스마트폰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노 스마트폰' 운동에 동참한 부모들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 아이만 스마트폰을 쓰지 않으면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다 같이 안 쓰게 되면 그게 정상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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