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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 스테이지] ‘대한민국발레축제’ 화제의 발레리노 전민철
지금 내가 뭘 본거지. 지난 6일, 2024 대한민국발레축제 기획갈라 ‘발레 레이어’(김용걸 안무·총연출)를 보면서 눈을 의심했다. 피아노 라이브 연주와 함께 서정적인 파드되 ‘산책’에 등장한 발레리노 전민철(한예종 무용원) 탓이다. ‘발레계 변우석’이랄까. 서양인도 울고 갈 우월한 피지컬부터 왕자 포스인데, 한치 흔들림없이 깔끔한 회전과 점프는 기본, 나비의 날갯짓처럼 우아하게 흐르는 춤선까지. 차원이 다른 남성 발레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갔다. 장인주 무용평론가도 “손끝부터 발끝으로 이어지는 긴 선, 우아한 자태, 부드러운 점프까지, 파리오페라발레의 심장이었던 니콜라 르 리슈의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고 감탄했다.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입단 제의 받아
184㎝, 64㎏의 전민철은 유난히 긴 팔다리 덕에 독보적으로 우아한 춤선을 가졌다. 박종근 기자
잠시 후 이어진 ‘볼레로’의 솔로 탭댄서도 시선을 강탈했다. 선글라스에 수트 착장이라 느낌은 달랐지만, 독보적인 실루엣과 빈틈없는 퍼포먼스는 역시 민철이었다. 스무살 대학생 댄서의 팔색조 매력에 객석은 새로운 발레계 히어로 탄생을 인증했다. 함께 관람한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도 “국보급이다” “대한민국의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는데, 아니나다를까. 클래식 발레의 최고봉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이 점찍었단다.

차원이 다른 남성 발레의 우아함을 보여주는 발레리노 전민철. 박종근 기자
더 놀라운 건 그가 2017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최종 후보로 방송을 탔던 소년이란 사실이다. ‘볼레로’의 탭댄스 장인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이유다. 당시에도 ‘완성형 빌리’로 불렸으나 키가 웃자라 탈락의 쓴잔을 마셨던 소년이 어느새 ‘실사판 빌리’로 비상을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큰 무대와 많은 관객은 처음이었어요. 떨렸지만 연습한 걸 잘 펼치자는 마음이 컸죠. 공연을 즐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긴장을 덜어낸 것 같아요.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이 여유로워 보여야 관객도 보기 좋잖아요.”

대한민국 발레축제 기획갈라 '발레 레이어' 중 김용걸 안무 '볼레로'를 추는 전민철. [사진 Photographer Baki]
민철은 발레축제의 또 다른 무대 ‘라이프 오브 발레리노’(유회웅 안무)에도 서는 등, 여러 단체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지난해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우승 후 1년 새 급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안무가들의 뮤즈로 뜬 것이다. ‘발레 레이어’를 총연출한 한예종 김용걸 교수는 “‘볼레로’의 경우 30~40%는 민철의 안무로 봐야 한다. 함께 작품을 만들다 보면 내가 꽤 괜찮은 선생이 된 것 같고,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그 스승처럼 같이 성장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발레축제 기획갈라 '발레 레이어' 중 김용걸 안무 '볼레로'를 추는 전민철. [사진 Photographer Baki]
“작년부터 교수님들 외부 공연을 많이 했어요. 학교에서 저만 이렇게 스케줄이 많아서 벅차긴 한데, 그 과정들이 저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볼레로’처럼 겁나게 힘든 작품도 절정으로 힘들 때 뿜어내는 에너지가 희열감으로 오는 게 되게 재밌거든요.”

스무살. 무대에서의 아우라와 달리 뽀얀 우윳빛깔 민철에게선 아직도 아기냄새가 났다. 7년 전 ‘빌리’가 못됐을 땐 어떤 심정이었을까. “많이 울었죠. 열정과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이라 키가 문제라도 뽑힐 거라고 기대했었거든요. 공연을 볼 땐 가장 많이 연습했던 ‘앵그리댄스’ 장면에서 눈물이 났고요. 근데 만약 빌리가 됐다면 지금 발레를 하고 있을까 싶어요. 그 당시 꿈꿨던 뮤지컬배우 쪽으로 갔을지도 모르죠.”

184㎝, 64㎏의 전민철은 유난히 긴 팔다리 덕에 독보적으로 우아한 춤선을 가졌다. 박종근 기자
민철의 발레인생은 빌리스쿨에 빚지고 있다. 빌리스쿨 전에는 한국무용을 했고, 탈락 후에는 춤을 잠시 포기했었다. “트레이닝이 다 도움됐지만, 가장 감사한건 따로 있어요. 떨어진 충격으로 무용을 관두고 평범하게 중학교를 다니다가 지지샘(‘빌리 엘리어트’ 안무감독 노지현)이 보고 싶어 찾아갔는데, 너는 발레를 해야 빛난다고 잔소리를 하시면서 선화예중에 편입제도가 있다고 알려주셨거든요. 그 잔소리 덕에 다시 시작한 거라, 정말정말 감사해요.”

당시 방송에서 발레를 반대하던 아버지도 묵묵히 응원해 편입에 성공했지만, 처음부터 날아다닌 건 아니다. “앞서있는 친구들과 비교를 당하니 스트레스가 됐어요. 부족한 걸 알면서도 맘처럼 안되서 노력도 많이 안했는데, 중3 때 나간 국제콩쿠르에서 큰 꿈을 갖게 됐어요. 콩쿠르가 열린 링컨센터에 다시 서고 싶고, 해외발레단에 가서 그곳을 대표하는 무용수가 되고 싶었죠. 그런 목표가 생기니 남들과 비교하며 받던 스트레스는 아무 의미 없더라고요. 내 목표만 보고 달리면서 실력이 부쩍 좋아졌죠. 예고 입학식날 실기 1등으로 제 이름이 불리니 친구들이 놀라며 돌아보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하반기 ‘라바야데르’로 만날 듯


184㎝, 64㎏의 전민철은 유난히 긴 팔다리 덕에 독보적으로 우아한 춤선을 가졌다. 박종근 기자
민철은 7월초 마린스키 입단 오디션을 위해 러시아로 간다. 마린스키는 아직도 동양인 단원이 2명밖에 없을 정도로 순혈주의가 강하고, 입단이 확실시되는 무용수만 오디션을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린스키 간판스타 김기민이 민철을 적극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려서부터 마린스키가 꿈이었거든요. 김선희 교수님 통해 제 꿈을 알게 된 기민 선배님이 유리 파테예프 단장에게 영상을 보여주며 다리를 놔주셨고, 그 이후 비자 서류부터 오디션 작품 선정까지 모든 부분을 챙겨주고 계셔요. 기민 선배님의 춤도 춤이지만, 저도 커서 그렇게 후배를 이끄는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

민철의 마린스키 입성이 발레계에 경사만은 아니다. 내년 봄 떠나면 국내서 그의 무대를 보기 힘들어진다. 29일 발레축제 화성 투어, 7월 성남아트센터 발레스타즈, 8월 마포아트센터 M발레시리즈 등이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클래식 전막 무대를 선보인 적 없다는 점도 아쉽다. 박인자 발레축제 조직위원장은 “해외 나가기 전에 국내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가야된다. 마린스키 김기민, 파리오페라 박세은도 국내발레계가 ‘돈키호테’ ‘백조의 호수’ ‘라바야데르’에 먼저 세웠기에 해외서 좋은 역할로 시작할 수 있었다”고 짚었다.

다행히 하반기 전막 데뷔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는 발레계 양대산맥인 국립발레단(10월)과 유니버설발레단(9월)이 가장 화려한 전막발레 ‘라바야데르’ 대전을 벌이는 해다. 양쪽 다 민철을 탐내지만, 객원 캐스팅 규정이 몹시 까다로운 국립에 비해 유니버설이 적극 움직이고 있다. 학생 신분이라 학교측의 최종 허가가 남았지만, 민철도 “기회만 된다면 꼭 전막을 하고 가고 싶다”며 의욕적이다. 올가을, 전사 솔로르로 도약할 전민철의 ‘그랑쥬떼(grand jete)’가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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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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