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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황진미의 TV 새로고침
밥이나 한잔해
친구가 친구 불러 판이 커지는
팬데믹 이후 자연스러운 교류
용산·성수·청담·한남 등 ‘핫플’ 돌며
돈 되는 상가 정보 제공 효과 ‘씁쓸’
티브이엔 제공

‘밥이나 한잔해’는 김희선, 이수근, 이은지, 더보이즈 영훈이 동네를 방문해 근처에 사는 지인들을 불러낸다는 설정의 8부작 예능 토크쇼다. 즉흥성이 살아 있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함이 돋보인다. 여기에 호스트와 게스트가 섞이는 묘미가 절묘하다. 한마디로 술자리의 농담 같은 자연스러움과 흥겨움이 감기는 토크쇼다.

굳이 무얼 표방하지 않아도

첫 회에서 서울 망원동에 간 출연진들은 각자 마포구에 사는 자신의 지인을 불러냈다. 김희선은 최근 드라마를 같이 찍은 김남희를 불렀다. 이은지는 오마이걸 미미, 송은이, 립제이를 불렀다. 이수근이 은지원, 하하, 이무진을 불렀다. 영훈은 아무도 부르지 못하는 와중에, 게스트로 온 김남희가 조정식을 불렀다. “녹화 끝나고 피곤하실 텐데, 잠깐 오세요.”(김희선) “밥 먹는데 추억 남기려고 카메라 좀 불렀어, 16대.”(이수근) “여기 고정이 누구예요?”(송은이) 등의 실없는 말이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대변한다. 2차로 장소를 옮기며 이어진 이 자리는 음식을 시키느라 자꾸 미뤄졌던 이무진의 노래를 들으며 마무리되었다. 녹화와는 무관한, 친구가 친구를 불러 판이 커진 술자리의 느낌이었다.

흔히 예능 토크쇼가 연예인들이 자기들끼리의 인맥을 과시하고, 사담을 늘어놓고, 자신의 일정을 홍보한다고 빈축을 산다. 하지만 ‘밥이나 한잔해’는 대놓고 그걸 한다. 아예 그렇게 나오니, 밉질 않다. 오히려 그들의 자연스러운 일상과 친목을 보면서, 술자리 환담의 욕망이 대리충족 되는 느낌이다.

돌아보면 연예인들이 모여 밥과 술을 먹으며 방담을 나누는 것을 보여주는 예능이 많았다. ‘알쓸신잡’ 시리즈는 술자리의 지적인 대화를 표방했던 프로그램이었다. ‘밥블레스유’는 여자들의 식욕과 정서적 교감을 중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로 이런 토크쇼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나 혼자 산다’ 유의 예능이었다. 그곳에서 연예인들은 ‘혼밥’을 먹었다. ‘혼자 놀기’에 익숙해진 포스트 팬데믹의 일상에 걸맞은 예능이다.

‘밥이나 한잔해’ 5회 대학로 편에서, 유해진이 연극 무대의 감흥을 말할 때, 아이돌인 영훈도, 공개 코미디 무대에 올랐던 이은지도 모두 “오프라인만의 감동”에 깊이 공감했다. “영화 ‘파묘’ 무대인사를 하며 꽉 찬 객석을 보았을 때, 언제 다시 이런 날이 올까, 싶었다”는 유해진의 말은 새삼 우리가 ‘잃었다가 되찾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밥이나 한잔해’는 ‘잃었다가 되찾은 소중한 것’을 누리고 즐기게끔 하는 프로그램이다. 지적인 대화가 아니어도 좋다. 굳이 여자들의 욕망과 정서적 교감을 표방하지 않아도 좋다. 가까이 사는 친구를 불러내고, 그 친구가 또 다른 친구를 불러내고, 그래서 누가 불렀는지 모르는 사람이 섞이고, “죄송한데, ‘왁킹’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립제이가 그 자리에서 한번 춰주고, “여기 기타 있다. 이무진 노래 한곡 듣자” 하는 식의 풍류와 낭만이 가득한 술자리 감성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자족감이 이 프로그램의 본령이다.

물론 대다수 사람이 이런 술자리를 즐기며 살진 못한다. 하지만 인생의 짧은 시절 동안 그렇게 웃고 마시고 놀던 추억은 있다. ‘개미와 베짱이’의 일화처럼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더 오랫동안 그런 시간을 가지리라 생각하기에, 개미들은 베짱이인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밥이나 한잔해’는 현재 그런 사교와 유흥을 즐기는 젊은이들에게는 참조할 점을, 사교와 유흥이 전생의 삶인 양 아득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는 원형적인 향수를 선사한다.

티브이엔 제공

김희선과 친구들

‘밥이나 한잔해’가 자연스러운 술자리 토크쇼가 될 수 있는 것은 출연진의 구색이 잘 갖춰진 덕분이다. 김희선, 이수근, 이은지, 영훈이라니, 신선한 조합이다. 성, 세대, 분야가 모두 다르게 잘 안배되었다. 이수근의 관록에서 오는 노련한 진행 능력이 프로그램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이은지의 ‘깨발랄’과 순발력이 프로그램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사실 두 사람은 요리의 ‘라면 수프’ 같은 존재로, 둘만 있어도 프로그램이 산으로 갈 일은 없다. 영훈은 ‘만화를 찢고 나온’ 비주얼의 예능 신인이다. 영훈은 젠더가 역전된 ‘꽃’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른 출연진에 비해 토크 역량이 부족해 처음엔 분량이 적었다. 4회 한남동 편에서 밥 친구로 홍석천이 등장했을 땐 장난스러운 플러팅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욕심이나 조바심을 내지 않고 유연한 태도를 보이면서, 점점 자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출연진의 안배도 좋지만, 밥 친구들의 구색도 이상적이다. 출연자들의 인맥을 따라서 즉흥적으로 섭외가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지역에 맞춰 꼭 나올 만한 인물이 빠지지 않는다. 가령 마포에선 하하가, 용산에선 홍석천이, 대학로에선 고수희가 나온다. 한편 예상을 깨는 밥 친구도 있다. 가령 몇년 만에 송윤아가 나오는가 하면, 유튜버 곽범이 나오고, 무명에 가까운 배우 이동용이 나온다. 주류와 비주류를 아우르는 종횡무진의 섭외이다.

주류와 비주류를 아우르는 성향의 중심에 김희선이 있다. 김희선은 누구나 알다시피 데뷔 32년차 배우다. 1993년부터 수십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고, 인기가요 엠시(MC)를 하고,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국내외 배우, 가수, 예능인 등 인맥이 엄청나다. 통상 미모의 여배우는 방어적인 성격을 갖기 쉽다. 하지만 김희선은 일체의 내숭이나 가식이 없는 솔직한 성격에, 자기애가 충만한 천진난만함을 지녔다. 강한 승리욕과 쾌활함으로 어떤 게임이든 몰입하고, 술자리를 즐기는데다 심지어 한턱내는 것을 좋아한다니, 주위에 얼마나 지인들이 들끓겠는가.

김희선은 1990년대에도 최고의 미인이었지만, 중년인 지금도 미스터리한 미모에 젊은 패션 감각을 유지하고 있으며, 여전히 발랄함과 유쾌함으로 사방 천지에 매력을 뿜는다. 도대체 김희선은 몇 살인가? 1977년생이다. 중3 때 모델로 데뷔했고, 19살에 이미 주연배우였다. 워낙 데뷔가 빨랐던 탓에, 또래 연예인보다 그의 ‘늙지 않음’이 더 극적으로 느껴지는 면도 있지만, 볼 때마다 경탄하게 된다. ‘영 포티’니 ‘영 피프티’니의 담론도 ‘엑스(X)세대 부장님’을 염두에 두고선 호응하기 힘들지만, 김희선을 대입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역시 세대론은 젠더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김희선은 완벽한 미모와 구김 없는 성격도 놀랍지만, 끊임없이 비주류적 취향을 개발하고 밀고 나가는 열정이 더욱 놀랍다. 3회에서 김희선이 부승관의 전화에 떨리는 목소리로 “저 너무 팬이에요”라고 말하며 어쩔 줄을 모른다. 부승관이 직접 오니, 감히 노래를 청하지도 못한다. 4회에서 김희선은 개그맨 곽범에게 팬심을 드러냈다. 그의 유튜브 영상을 다 본다며, “너무 멋지다”고 올려주었다. 김희선이 ‘여신’으로서 인간을 사랑해준다는 느낌도 아니고, 토크쇼 호스트로서 게스트를 격려하는 느낌도 아니다. 그냥 곽범의 코미디가 너무나 취향에 맞아서 팬심을 가누지 못하는 ‘찐팬’의 모습이다. 5회에서는 영화 ‘달짝지근해: 7510’에 같이 출연했던 배우 이동용이 오자, 너무나 반기며 좋아한다. 김희선이 이동용의 생활 연기와 웃음소리를 칭찬한다. 김희선은 자신은 주류에 속하지만, 비주류적인 인물이나 장르에 대한 편견이 없다. 끊임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좋아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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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엔 제공

부동산 가치 형성과 자산형 건물주들

자연스러움과 친근함이 미덕인 프로그램이지만, 한편으로는 자본의 욕망에 충실히 복무하는 부동산 정보 콘텐츠로 읽히기도 한다. 프로그램은 지역성을 중시한다. 망원동, 성수동, 청담동, 한남동, 대학로 등 핫플레이스의 맛집에서 토크쇼를 진행하고, 토크가 끝나면 마지막에 인근 주민들에게 한턱내며 주민들과 소통한다. 지역의 특징을 소개하고, 핫플 투어도 한다.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팝업스토어에 들어가 쇼핑을 한다. ‘구해줘! 홈즈’가 주택에 관한 정보를 준다면, ‘밥이나 한잔해’는 상가에 대한 정보를 주는 셈이다. 지역 셀럽을 소개하는 것도 맛집이나 핫플 소개만큼이나 지역 가치를 높인다. 실제로 유명인이 살거나 자주 나타나는 동네라는 점은 동네 가치를 올린다. 가령 청담동 노천 식당에서 정용진 신세계 회장과 마주치거나, 한남동 고깃집에서 뮤지컬 배우 김소현 부부와 우연히 만나는 장면은 상권의 가치를 높인다.

핫플레이스가 등장하고, 지역 셀럽을 언급하는 방송은 필연적으로 부동산 가치 형성과 연관된다. 한남동이나 강남의 고가 주택은 연예인의 구매로 가치가 오른다. 연예인은 대출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고가 주택을 사고팔아 시세 차익을 크게 남길 수 있다. 연예인의 진가는 상가 투자에서 더욱 발휘된다. 가령 성수동에 사회적기업과 소상공인들이 모이기 시작할 때, 연예인들이 찌그러진 건물들을 사들였다. 연예인들의 감각으로 건물을 카페로 개조하고, 높은 임대료에 임대를 주었다. 연예인의 유명세와 방송 홍보를 활용해 핫플레이스로 소문이 나면, 카페와 해당 상권은 빠르게 성장한다. 곧 건물값과 임대료가 오른다. 연예인은 건물을 팔아 시세 차익을 얻는다. 상권의 개성 넘치던 가게 주인들은 쫓겨나고, 그 자리는 비싼 임대료를 낼 만한 기업형 매장으로 채워진다. 곧 상권의 특색이 없어진다. 신사동 가로수길이 그랬듯이, 성수동도 독특함이 사라져간다. 이를 젠트리피케이션이라 하는데, 연예인들이 그 선봉에 서고 있다.

이 시대의 연예인은 무엇일까. 대신 술자리의 흥겨움을 즐겨주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지 제시해주는 존재이자, 자신의 유명세를 부동산의 가치로 교환할 수 있는 자산형 건물주다. 돈 쓰는 모습은 흥겨운데, 돈이 돌아가는 모습은 씁쓸하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씨네21’ 영화평론가로 출발하여 티브이 드라마, 예능 등을 두루 평론한다. 인권·역사·여성·장애·인구·성·계급·권력 등 사회과학 전반에 관심이 많다. 원래 전공은 의학·보건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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