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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디의 힘
지난해 10월 공개된 자살 예방 관련 해외 광고의 한 장면. 주변의 관심이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유튜브 캡처

한번은 볼 줄 알았다. 기자는 서울시 공공자전거인 따릉이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마포대교를 건넌다. 여의도와 마포를 잇는 이 교량엔 ‘자살 다리’라는 오명이 붙어있다. 그렇기에 자살 시도자를 목격하는 상상을 종종 하곤 했다. 저녁 7시 무렵, 멋진 노을과 시원한 바람이 불던 지난달 말쯤으로 기억한다. 부쩍 길어진 해를 만끽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마포대교 밑으로 강의 물살을 가르며 구조 보트가 빠르게 다가왔다. 도로엔 이미 구급차와 경찰차 여러 대가 도착해 있었다. 구조대원과 경찰이 모인 곳을 지나갈 때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주저앉아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사이 또 다른 경찰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자살을 시도한 아이가 요즘 어떤 고민을 했는지 알 순 없다. 그러나 그 아이가 살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을 거로 생각하니 잠시 스쳐 간 일상의 감격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지나가던 누군가의 신고로 아이의 행동은 시도로 그쳤으니 말이다. 다른 누가 신고하겠지 하고 아무도 이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상상도 하기 싫은 상황이지만 말이다.

이토록 주변의 관심은 참 소중하고 중요하다. 최근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을 타고 우연히 접한 해외 영상도 주변에 주의를 기울이는 마음이 이 시대에 얼마나 필요한지 잘 보여준다. 친구로 보이는 두 남성이 여러 날 축구장을 찾아 같은 자리에 앉아 경기를 관람하는 장면이 영상 내내 이어진다. 화면 왼쪽에 앉은 남성은 우울한 낯빛이고 그 옆에 앉은 남성은 상대적으로 밝다.

환한 표정의 남성이 “잘 지내냐”고 살갑게 말을 건네도 친구는 심드렁하다. 그러나 영상 맨 마지막엔 반전이 숨겨져 있었다. 우울해 보이던 친구에게 “축구 밖 우리의 삶도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며 희망의 말을 건네며 웃던 남성이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 둘이 늘 함께하던 자리엔 한 친구만 우두커니 남은 채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징후를 때때론 알아차리기 힘들다.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자막과 함께 영상은 끝이 난다.

영국 프로 축구팀인 노리치시티가 지난해 10월 유튜브에 처음 올린 이 영상엔 15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우울증을 앓는다는 한 네티즌은 “잃을 것이 없으니 누군가에게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시라. 이 작은 행동이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2022년 미국에서 잠시 생활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가장 생소하게 느낀 것은 ‘스몰토크’였다. 많은 이들이 커피를 주문하거나 식료품을 계산하며 점원과 수다를 떨었다. 1년 정도 머물다 귀국할 때까지 그 문화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모르는 이에게 괜히 말을 걸었다가 추파를 던지거나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람으로 비치기 일쑤라서 나도 모르게 거부 반응이 있었던지도 모르겠다.

기독교인이라도 스몰토크를 하면 좋겠다. 착한 오지랖을 떨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관심의 유일한 목적이 전도가 아니길 바란다. 상대에 대한 관심의 종점이 결국 ‘우리 교회로 오시라’는 목표 달성에 있다면 보험 외판원과 무엇이 다르냐는 한 젊은 목회자의 일침처럼 말이다. 또 스몰토크가 그저 착한 기독교인으로 보이기 위함이 아니었으면 한다. 스몰토크에 상대에 대한 진짜 걱정과 공감이 담겼으면 좋겠다.

회사 1층에서 매일 만나는 아버지뻘 경비원에게 언제나 밝게 인사했던 한 청년의 반성이 담긴 고백에 해답이 담겨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는 그 아저씨의 삶이 진짜로 궁금하지 않았었네요.” 우리의 작은 행동이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스몰토크의 힘을 믿는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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