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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홍준표 이어 한동훈까지
총선 패배 뒤 이른 복귀 ‘이례적’
이, 보선 여세 몰아 당권 거머줘
한, 총선 두달 만에 ‘당권 도전장’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2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3월 28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광장에서 후보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같은 날 서대문구 신촌 집중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 아래는 홍준표 대구시장. 이병주 최현규 권현구 기자

“저는 또다시 국민 여러분의 신임을 얻는 데 실패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로써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평범한 시민이 되겠습니다.”

14대 대선에서 패배한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선거 이튿날인 1992년 12월 19일 정계 은퇴를 전격 선언했다. 이듬해 1월에는 영국 유학을 떠났다. 김 전 대통령이 은퇴를 번복하고 정계 복귀를 선언한 것은 그로부터 2년7개월이 지난 1995년 7월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2년 18대 대선 패배 이후 선대위 해단식에서 “대권 재도전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전까지 긴 잠행을 했다.

이처럼 대선을 비롯한 전국 단위 대형 선거에서 패배한 장수는 한동안 정치 일선에서 거리를 두거나 공부를 하며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의 정치 휴지기를 가졌던 것이 그동안 정치권의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이런 통례가 점점 깨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에 도전장을 던진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다. 한 전 위원장은 지난 2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심 끝에 오랫동안 정치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바꿨다. 이기는 여당을 만들겠다”며 당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4·10 총선 이튿날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사퇴한 지 두 달여 만이다.

정치권에서 총선 패장(敗將)의 이런 조기 복귀는 상당히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과거 총선을 지휘했던 사령탑들은 패배한 경우 사실상 정계를 은퇴하거나 정치인으로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패배한 대통합민주신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의 한명숙 당시 대표는 총선 패배 후 자신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까지 겹치면서 사실상 정계를 떠나게 됐다. 2016년 20대 총선을 총괄했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역시 패배 이후 대선 불출마와 탈당, 복당 등을 거치면서 보수 진영 유력 대권 주자 지위에서 밀려나야 했다. 국무총리 등을 거치며 유력 대권 주자로 올라섰던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도 2020년 21대 총선 패배와 원내 입성 실패로 치명상을 입었다.

하지만 한 전 위원장의 경우 전당대회 출마 공식 선언 전부터 ‘어대한’(어차피 당대표는 한동훈)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대세론이 형성되는 등 과거 총선 패장들과는 확연히 다른 기류가 감지됐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 전 위원장이 비록 패장이기는 하지만 겨우 108일 동안 당을 이끌었을 뿐 아직 충분한 기회를 갖지는 못한 것 아니냐는 인식이 보수 지지층 사이에 상당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전 위원장에 앞서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 역시 전국 단위 선거에서 패하고도 조기 복귀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두 사람은 대선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곧 정치권으로 귀환해 당권을 거머쥐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전 대표는 2022년 3월 20대 대선에서 패한 지 두 달 만에 서울시장 후보 차출로 공석이 된 송영길 전 대표의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이 전 대표는 “대선 결과의 책임은 제게 있다”면서도 “당이 처한 어려움과 위태로운 지방선거 상황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는 명분을 들었다. 그는 보궐선거 당선 여세를 몰아 같은 해 8월 전당대회에서 당권까지 거머쥐었다.

홍 시장도 2017년 5월 19대 대선에서 패하고 두 달도 채 안 된 시점에 치러진 7월 전당대회에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로 정치 전면에 복귀했다. 홍 시장은 ‘보수우파 재건’과 ‘당의 전면적 쇄신’을 기치로 내걸었다. 한 전 위원장이 지난 23일 출마선언 때 ‘보수 정치의 혁신적 재건’과 ‘당 체질 개선’을 강조했던 것을 두고 7년 전 홍 시장이 내세웠던 복귀 논리와 비슷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연이은 선거 패장의 조기 복귀는 한국 정치가 진영 대결 양상으로 고착화된 영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8일 “선거 패장이 조기 복귀하는 것이 바람직하냐, 아니냐를 따지기에 앞서 이들이 조기 복귀를 생각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각 진영에서 이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의 경우 야당의 다른 대권 주자들에 비해 ‘개딸’로 불리는 팬덤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당내 장악력을 키울 수 있었고, 홍 시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의 여파로 보수 진영 유력 주자들이 줄줄이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맹주 역할을 맡았기에 패장이었음에도 복귀 여건과 명분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지금 ‘한동훈 대세론’의 경우도 진영 정치, 팬덤 정치와 관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아직 본인만의 뚜렷한 콘텐츠를 보여준 적이 없는데도 한 전 위원장에 대해 당원들의 기대치가 높은 건 결국 이 전 대표를 비롯한 야당과 잘 싸워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거 패배 후 충분한 자성·자숙 없이 조기 복귀를 택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예전에는 선거에서 국민의 마음을 못 얻었으면 자신이 잘했건 못했건 책임을 통감하고 자성하는 시간도 가졌는데 요즘 정치인들은 ‘내가 잘못했지만, 상대방이 더 잘못했다’는 식의 이유를 대며 제대로 성찰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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