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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남창훈의 생명의 창으로 바라본 사회
알고 모름, 정확히 아는 게 ‘공부’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맥락 형성
AI, 연산능력·판단력 앞서지만
한계 규명·의견 형성 능력 없어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엠더블유시(MWC) 행사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아메카가 관람객과 소통하고 있는 모습. EPA 연합뉴스

우리의 뇌 속에는 ‘맥락 속의 자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는 부위가 있다. 복내측 전전두피질(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이 바로 그것이다. 이 부위를 중심으로 한 두뇌 시스템은 인간이 경험하는 사건에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자율신경, 신경내분비, 면역기능을 포함한 행동과 말초 생리를 나름의 의도를 가지고 제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이 시스템은 인간이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과정과 그에 기반하여 자신과 세계를 그려내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구실을 한다. 인간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와 세계라는 맥락 속에서 자아를 형성한다. 속성이 그러하다 보니 이 시스템은 건강한 사회, 즉 건강한 공적 관계와 네트워크가 존재하는 사회에서라야 온전히 발달할 수 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이 부위는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접근-회피 간 균형을 모색하는 구실을 한다. 이 부위가 편도체 또는 측핵과 맺는 신경망의 양상에 따라 자아의 균형이 잡힌다. 이 부위가 편도체와 더욱 빈번하게 상호작용하여 그 사이 연결 강도가 커지게 되면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게 된다. 이를 인지심리학에선 ‘회피 기제’라고 한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사회적으로 받게 될 비난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반대로 이 부위가 측핵과 빈번하게 상호작용해 연결 강도가 커지게 되면 타인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을 내세워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커진다. 이를 ‘접근 기제’라고 하는데 이 경향성이 극도로 커지면 타인의 비난 등에 둔감하게 된다. 두 기제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는 것은 이상적인 사회관계를 맺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균형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존재하는 편향성을 스스로 인식하고, 이를 재조정하는 일련의 성찰 과정을 통해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 즉 자신이 존재하는 맥락을 이해해야 균형 잡힌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진정한 공부에 역행하는 ‘경쟁 과몰입’

그런데 타인에 대한 회피·접근 기제를 조율하면서 자아의 경계를 설정하는 과정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자신의 정체를 인식하는 일과 타인의 마음을 읽는 일이 서로 연결되는 과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이 과정들은 인간이 평생 수행해야 할 공부의 본질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공부한다는 것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타자들을 세계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즉 우리는 공부를 통해 맥락 속의 자아를 형성한다.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서 타자 및 세계와 효과적인 소통에 도달하게 되고, 효과적인 소통은 더 풍부한 맥락 속에서 제대로 된 공부의 조건을 조성하게 된다.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의 두뇌에서 특별히 발달한 것은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적 적응을 거친 결과라 할 수 있다.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맥락 가운데 돌아볼 수 있는 능력’, 즉 메타인지가 중요한 까닭은 자신이 정말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하는 능력이 학습 능력에서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은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마음 읽기 능력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타인에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을 때 그가 그것을 수용하고 다시 건네는 과정 가운데 자신의 견해를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이러한 성찰을 통해 더 나은 자기 인식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학습법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효과적인 학습법으로 ‘가르치기’를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공부는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중 많은 부분이 자신과 관계를 맺는 타인을 통해 이뤄진다. 그런 의미에서 경쟁에 대한 과몰입은 진정한 공부의 반대에 놓여 있다. 경쟁에 몰입하는 사회에서 관계는 차단되고, 개체는 고립된다. 개체들을 잇는 촘촘한 네트워크들, 즉 맥락이 사라진 사회는 모래사막과 다를 바 없다. 바람에 부유하는 모래는 안정된 지형, 즉 맥락으로 구성된 세상을 이룰 수 없다. 이러한 세계 속 개체는 ‘맥락 속 자아’를 형성하는 데 심대한 곤란에 직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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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 갇히지 않으려면

‘맥락 속의 자아’에 대한 성찰과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최근 대두되고 있는 인공지능(AI) 이슈를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인공지능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한편으론 유용함과 잠재적 이점을 이야기하고, 다른 한편으론 모종의 불편함이나 위협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 문제의 핵심은 갑자기 등장하여 인간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인공지능에 있다기보다 이것이 개발되고 널리 퍼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변화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제기되는 위협감의 기저에는 인공지능이 앞으로 발휘할 능력이 지금 우리가 현실을 살면서 요구받는 능력과 크게 겹친다는 판단이 깃들어 있다.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 가운데 필요한 정보를 선택한 뒤 이를 종합하여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내는 능력에는 빠른 판단력과 고도의 연산 능력이 요구된다. 이런 능력이라면 막대한 정보량과 연산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역량을 견주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과도한 경쟁에 기반한 성과지상주의 사회는 더욱 빠른 발전을 위해 이러한 능력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하지만 인간이 추구하는 바를 생명의 본질에 기반하여 정의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인간은 세계 속 다른 타자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쉼 없이 생성되는 존재이다. 따라서 누구와 어떤 관계를 어떻게 맺으면서 어떤 맥락을 형성할지 궁리하는 일이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이처럼 맥락을 형성하면서 자기초월적 판단을 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타자와 사물들이 지닌 미덕을 깨달아 그들과 최적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이것은 생명이 지니는 본질적이면서 고유한 속성이다. 역설적이게도 관계를 형성하면서 견지할 수 있는 지적 겸손이야말로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대의 강점이며, 이 능력을 통해 인간은 인공지능을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가장 큰 약점은 스스로를 성찰하여 자신의 한계를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의견과 맥락을 형성하는 능력의 결여에 놓여 있다.

문제는 맥락을 잃어가는 인간에게 놓여 있다. 맥락을 잃어버린 인간은 인공지능이 보여주고 제시하는 세상에 안주한다. 인공지능이 산출하는 집적된 정보라는 벽돌은 우리를 가두는 성이 될 수도 있고, 생명을 연결하는 공동체의 받침돌이 될 수도 있다. 이 세계의 희망은 튼튼하고 촘촘한 맥락으로 연대하는 생명의 힘 속에 있다.

남창훈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서울대와 프랑스 퀴리연구소, 영국 케임브리지 분자생물학연구소에서 생화학·면역학 등을 공부했다.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수용체 개발, 노화와 면역 사이의 연관 등을 연구하면서 대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부단히 모색 중이다. ‘탐구한다는 것’, ‘이타주의자’, ‘소년소녀, 과학하라!’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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