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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 데뷔 권유’를 웃음으로 포장…지성·도덕성의 ‘밑바닥’ 드러낸 것뿐
| 위근우 칼럼니스트

유튜브 채널 ‘노빠꾸 탁재훈’의 한 장면(왼쪽). 지난 19일 유튜브채널 ‘노빠꾸 탁재훈’에 출연한 일본인 AV 배우가 발언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지난 4월, 천하람 당시 국회의원 당선인은 일본 성인 동영상(Adult Video, 이하 AV) 배우들이 출연하기로 한 성인 페스티벌이 지자체들의 반대로 취소되자 페이스북을 통해 “공권력에 의한 자유 침해”를 우려하며 “이러다가 ‘노빠꾸 탁재훈’에 일본 AV 배우가 출연하는 것까지 막자고 할 기세”라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우려와 달리 유튜브 채널 ‘노빠꾸 탁재훈’에 AV 배우는 다시 출연할 수 있었다. 다만 그는 우려하지도 고려하지도 않았겠지만, 성인 페스티벌 개최를 반대한 이들이 우려했던 일이 ‘노빠꾸 탁재훈’에서 벌어졌다. 지난 6월19일 일본 AV 배우 오구라 유나가 출연한 해당 채널 영상에서 MC 탁재훈은 유나를 향해 인턴 MC인 걸그룹 시그니처 멤버 지원을 가리키며 “지난 출연 때 (당시 MC였던) 예원에게 일본에서 성공하기 힘들다고 했다. (중략) 오늘 본 지원은 어떠냐”고 물었다. 이에 유나는 지원의 몸매를 상찬하며 “꼭 (AV계에) 데뷔해달라”고 권유했다. 게스트의 의도치 않은 답변에 의한 돌발 상황이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탁재훈과 신규진 등 남성 MC들은 폭소했고, 지원이 “한국에서 배우로 데뷔하긴 했다”고 수습하고 대화를 끝내려 하자 탁재훈은 “그거랑 다르다”고 한 번 더 불편한 상황을 이어갔다. 영상 공개 이후 걸그룹 멤버에 대한 AV 데뷔 권유가 성희롱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났고, 결국 ‘노빠꾸 탁재훈’ 측은 영상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천하람의 발언은 그래서 역으로 뒷걸음질 예언이 되었다. 그는 성인 페스티벌 취소에 대해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관심법으로 예측해서 처벌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식 사전 검열”이라 비판했지만 그가 반례로 든 ‘노빠꾸 탁재훈’에서 바로 그 ‘예측’이 들어맞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실 천하람의 글은 관점도, 논리도, 하다못해 선동적인 수사로서도 조금도 흥미롭지 않다. 그럼에도 단 한 가지 유용한 점은, 온갖 커뮤니티와 유튜브 및 포털 댓글에 파편적으로 산재해 있는 ‘일부’ 한국 남성들의 억울한 정념과 자기 정당화의 논리를 투명하게 반영해 요약본으로 제시해주었다는 것이다. 이 글의 두 축은 첫째, 표현의 자유와 성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편적 권리로 전제해, 둘째, 유독 한국에선 남성의 성적 자유 추구에 대해서만 터부시하는 것이 보편 권리의 침해이자 위선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인 페스티벌 개최에 반대한 이들은 표현의 자유나 성적 만족을 추구할 권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AV 콘텐츠와 포르노 산업이 여성의 신체를 성적으로 객체화·상품화해 여성의 실존적 자유와 권리를 훼손한다고 볼 꽤 합당한 이유들이 있을 때, 남성들이 해당 콘텐츠를 향유하고 옹호할 자유가 여성의 권리와 충돌하지 않는지 고민하고, 충돌한다면 전자를 좀 더 보편타당한 권리로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일본 AV 콘텐츠 절대 다수에서 재현되는 섹스는 엄밀히 말해 남녀의 성관계가 아니다. 남성의 성욕을 풀기 위한 도구로서의 여성 신체에 대한 일방적인 성적 지배의 형태로 성적 관계와 성애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에 가깝다. 왜곡된 성 관념에 의한 여성 대상 디지털 성 착취가 새롭게 대두되고 오프라인 성범죄도 여전한 한국에서 AV는 그저 가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천하람의 말대로 성인 페스티벌에서 직접 AV를 제작하거나 유통하진 않지만, 그러한 여성 재현에 대해 남성들이 모여 옹호하고 공개적으로 위세를 과시할 때, 우리 사회가 그러한 착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순진하게 가정된 공공선에 대한 믿음은 공격받는다.

기우가 아니다. ‘노빠꾸 탁재훈’과 옹호 댓글들은 정확히 성인 페스티벌이 개최되었을 때 벌어졌을 법한 공공선에 대한 믿음의 훼손을 보여준다. AV 배우인 오구라 유나가 신작을 냈다고 하자 탁재훈은 “다운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 했고, 신규진은 “다운 안 받고도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겠다”고 눙쳤다. 실제로 보느냐 안 보느냐는 건 오히려 지엽적인 문제다. 과거라면 떳떳하지 못해 비밀로 하는 프라이버시거나, 남성들의 사적 모임에서 비공개적으로나 공유하던 포르노 소비의 경험을, 이젠 여성 MC가 동석하는 자리에서 불특정 다수 시청자를 향해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또한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 사안의 핵심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기대했고 어느 정도는 공유된다고 믿었던 도덕적 부끄러움에 대한 민감성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부정당한다. 이것은 성 엄숙주의를 벗어나 부끄러움 없는 남녀 간 개방적 대화의 물꼬를 여는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성적으로 상품화된 여성의 이미지에 내재된 성차별에 아무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을 공표하고, 농담거리 삼으며, 심지어 그 농담에 동참할 수도 화낼 수도 없는 젊은 여성의 난감함을 배경 삼아 낄낄댈 때, 성적 담론의 자유란 오직 남성들끼리 왜곡된 성적 판타지와 경험을 공유하고 가지고 노는 자유를 뜻할 뿐이다.

게스트인 일본 AV 배우 돌발발언

걸그룹 멤버 보호했어야 할 MC들

폭소 후 불편한 상황 계속 이어가

선 넘은 ‘야동 농담’ 공공선 믿음 깨


성인 페스티벌 개최에 대한 우려

‘관심법’이라 폄하한 천하람 의원

반례로 꼽은 예능 프로의 ‘헛발질’

여성 난감함 보며 낄낄대는 모습

평등한 성적 담론이라 볼 수 없어


유튜브 채널 ‘노빠꾸 탁재훈’이 게재한 사과문.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 지점에서 천하람은 뒷걸음질로 한 번 더 본인도 모르게 중요한 원인에 접근한다. 그는 “신동엽씨와 성시경씨가 일본 AV 배우를 인터뷰한 넷플릭스 <성+인물> 일본편도 한국에서는 보면 안 되는 것입니까?”라고도 일갈했다. 보면 안 되는 것까진 아니지만, <성+인물>에 AV 배우를 섭외해 해당 산업을 유쾌한 대화 소재 삼아 양지로 끌어올린 것과 이번 ‘노빠꾸 탁재훈’ 사태 사이엔 상당한 인과가 있다. 넷플릭스라는 유력한 플랫폼을 통해 “AV가 많은 사람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 성범죄율을 낮추는 것 같다”는 배우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소개하며 해당 소재에 대한 조심스러움의 하한선을 한없이 낮췄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 JTBC <마녀사냥>을 연출했던 정효민 PD 등 나름 명망 있는 예능 PD들은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에 대해 “좋은 담론이란 서로가 다르다고 틀렸다거나 미워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가치관이나 수용 정도에 따라 합의를 하게 되는 어른들의 장”이라 두루뭉술하게 변명했다. AV가 재현하는 성차별과 착취에 대한 논의의 쟁점들은 개인적 취향과 수용도의 문제로 축소되어 버렸다. 이건 결코 좋은 담론일 수 없다. 더 정확히는 담론일 수조차 없다. 우리가 이것을 웃음과 예능의 소재로 삼아도 되느냐는 질문을 배제해버린 담론은 그저 웃거나 웃지 않는 개인의 선택으로 종결될 뿐 더는 어떤 대화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전히 ‘노빠꾸 탁재훈’에는 문제가 없다고, 이번 영상을 삭제하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공유하는 세계관이다. 자신들이 웃고 재밌었으니 그만인 세계.

앞서 ‘노빠꾸 탁재훈’의 성희롱 논란을 천하람이 뒷걸음질로 맞춘 게 우연이 아니라 했다. 이들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해서만이 아니다. 이건 차라리 자기실현적 예언에 가깝다. 그는 성인 페스티벌에 대한 우려를 “관심법”이라 폄하했지만, 절대 다수 성인물에서의 성차별적 재현과 그것을 유지하는 남성 중심적 세계의 불평등을 민감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면, 성적 표현의 자유란 필연적으로 여성에 대한 존중 없는 대상화로 귀결된다. “개별 문화 콘텐츠의 성패는 문화시장에서 국민들의 선호와 선택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것”이라는 천하람의 믿음은, 역시 개인의 호불호로 문화에 대한 논의를 축소한 <성+인물> PD들이 그러했듯 문화 담론의 역동성을 오히려 배제한다. 그가 정말 “문화 콘텐츠의 힘은 다양성과 자율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면, 획일화된 남성 중심적 세계를 비판적으로 고려해 좀 더 왜곡 없고 평등한 성 담론의 장을 제안했어야 했다. 민간 공연장에서 열린 여성 전용 성인 공연을 들먹이며 “더불어민주당식 위선과 내로남불 이제는 없어야 하지 않겠”냐고 비꼰 건 그래서 따분할 만큼 빤하다. 여성 소비자를 위한 성적 판타지가 전복적 일탈이라면, 남성들의 ‘야동’ 농담은 권력의 일상이다. 불균형한 지평 속에서 이건 되고 저건 왜 안 되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과 능력이 없으니, 이건 되는데 왜 저건 안 되느냐는 질문이 정곡을 찔렀다고 혼자 신났을 뿐이다. 어쩌면 천하람의 글과 ‘노빠꾸 탁재훈’이 공유하는 문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단지 지성과 도덕의 부족을 성역에 대한 도전인 양 으스댄다는 것.

위근우 칼럼니스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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