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서울경제]

일본의 문화는 많은 상징을 담고 있다. 종교, 생활, 놀이, 스포츠 등 모든 곳에서 상징이 넘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종교관은 특이하다. 일본 문부성 조사에 의하면, ‘신토’(神道)와 ‘불교’를 선택한 수를 합하면 그 수가 전체 인구의 150%를 넘는다고 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것이 보통인데, 일본은 특이하다.

2010년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의 신사(神社)의 수는 10만을 훨씬 넘는다고 한다. 이 시기의 일본 전역의 편의점 수가 5만여 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동네마다 신사의 수가 서너 개일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인구의 거의 전부를 포용하는 종교인 신토는 세계의 여러 종교와는 다른 점이 많다. 창시자가 없고, 가르침과 원칙에 해당되는 교조나 교리도 없다.

성경이나 코란과 같은 경전이 없다는 뜻이다. 천황의 계보를 정리한 고사기(古事記, 712년), 일본 정사인 일본서기(日本書紀, 720년), 헤이안 시대의 신토 자료인 고어습유(古語拾遺, 807년) 등의 역사 자료를 신도들에게 경전 대신 추천한다. 교주/ 교리/ 경전 등, 종교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바로 일본 특유의 상징일 것이다.

일본의 상징을 살펴보자. 위 사진의 ‘도리이’(鳥居)는 신의 영역과 속세를 구별하는 상징적인 문이다. 사진에서 처럼 ‘도리이’를 바다에 세운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바다의 ‘도리이’는 이곳의 수심이 낮다는 것을 알리는 표시이기도 할 것이다.

신도가 모시는 신(神, かみ)도 다양하다. 황실을 모시는 황실 신사를 비롯해 개인의 조상, 산과 바다 등을 모시는 신사도 있다. 사원에는 나무 가지에 매단 소원을 적은 종이 잎사귀, 나무에 소원을 세긴 에마(絵馬), 경배시 울리는 ‘방울’(鈴鐘) 등 모두가 상징이다. 신사는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무에 매단 소원 종이

나무판에 소원을 세긴 에마(?馬)

줄을 당겨 울리는 방울(鈴鐘)


신사를 경배하는 순서도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그 순서의 엄격함은 상징의 엄격한 절차일 것이다. 신사에 도착하면, 도리이와 미카도(神門)를 지날 때 목례한다. 데미즈야(手水舎)에 이르러, 손을 씼은 다음, 오른손으로 물을 떠서 왼손을 오무려 물을 받아 입을 헹군다. 이때 국자에 입을 대지 않아야 한다.

참배 전에 소원을 적은 다마구시(玉串, 종이 오리)를 지정된 곳에 묶는다. 참배 길을 지나서 새전 함에 돈을 넣고, 줄을 당겨 영종(鈴鐘)을 울린 다음 배례한다. 두번 절하고 두번 박수 친 다음 한번 절하는 것이 배례의 기본이다. 참배 시에는 눈을 감지 않아야 한다. 절하는 순서는 조선의 제사와 비슷하다.

데미스야(手水舍)

다마구시(玉串, 종이오리)

입을 헹구는 모습


이제 스포츠의 상징을 살펴보자. 프로 선수들이 참가하는 일본 최대 스모 경기인 오오스모(大相撲)도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 준비 동작인 시코(四股)는 양다리를 쩍 벌리고 한 발씩 들었다가 지면을 강하게 내리 밟는 행동이다. 시코(四股)는 시코아시(醜足)의 약칭이라고 한다. 민속적 신앙으로 땅 속의 사악한 영령을 짓밟아 누르고, 대지의 기운을 밟아 가라앉혀, 잠자는 초봄의 대지를 깨워서 한 해의 풍작을 약속받는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요비다시(呼出)는 부채를 펼치고 다음 대결에 나올 선수의 호명을 칭하는 말이다. 특이한 목소리로 노래하듯 리키시(力士)의 이름을 길게 읊는 모습은, 리키시가 물로 입을 헹구고, 소금을 뿌리는 행동과 더불어 스모 경기 상징의 절정일 것이다.

시코(四股)

소금 뿌리기

치카라미즈 의식

요비다시(呼出)

경기전 의식

활돌리기 의식


치카라미즈(力水)는, 승리한 선수가 다음 리키시에게 국자로 물을 떠주면 출전할 리키시가 입을 헹구고 물을 뱉어내는 의식이다. 그 다음 건네준 치카라가미(力紙)로 입을 닦는다. 전통 종이인 치카라가미를 반으로 접어 입을 닦는 의식은 리키시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뜻이다.

신사와 스모의 여러 상징들은 처음부터 전체로 주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시간을 두고 하나씩 추가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추가는 일본의 문자 세계에서도 일어난다. 일본의 한자에는 새로 만든 문자가 많은 편이다. 일본 특유의 한자를 찾아 보자. 인터넷 검색을 통해, 더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다음은 재미있는 글자로서, 사고의 소박함을 보여준다.

峠 (도우게, とうげ) 고개

辻 (스지, つじ) 네 거리

凪ぐ(나구, なぐ) 바람이 그치다

刈る(가루, かる) 머리털 등을 깎다 (髪を刈る)

姫 (히메, ひめ) 귀인의 딸

새 한자를 만드는 이유가 있다. 새로운 발음만으로 새 단어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어에는 발음 수가 많지 않다. 위의 예에서, ‘凪ぐ’의 발음은 ‘なぐ’(나구)인데, 이미 ‘薙ぐ’(후려치다), ‘和ぐ’(평온해지다)에서 사용되고 있는 발음이다. 이들 단어도 한자를 병기해야 구별된다. ‘辻’(つじ, 쯔기)의 발음도 ‘머리 중앙의 가마’(旋毛)의 뜻으로 이미 쓰이고 있는 발음이다.

새로 만든 글자는 키보드로 입력하기 위해서는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디지털화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일본의 문화는 수치화할 수 없는 상징으로 가득 있다. 다른 표현을 쓰자면, 유겐(幽玄)의 상태를 선호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풍성한 상징은 민심을 깊고 그윽한 한 곳으로 모을 수 있겠지만, 일본 국민들을 숫자화하는 ‘마이남바’(my number)를 찬성으로 이끄는 데에는 방해가 되어, 통신과 디지털 거래를 어렵게 만든다. 상징 애호는 일본인들이 카드 결제보다는, 지폐 사용을 선호하는 원인일 것이다.

일본의 상징에 대한 지금까지의 긴 설명은, 간략한 설명으로는 일본의 상황을 실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문화의 상징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이어 일본 음악에 대해 설명하기로 한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서울경제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0503 음주 사망사고 후 "국위선양 했다"며 선처 요청... 20대 DJ 징역 10년 랭크뉴스 2024.07.09
40502 경북 또 150mm 비…밤사이 집중호우 상황 랭크뉴스 2024.07.09
40501 수원서 역주행 70대 운전자 차량 5대 충돌, 3명 다쳐… “급발진” 주장 랭크뉴스 2024.07.09
40500 '만취 벤츠녀' DJ 예송, 징역 10년…"연예 분야 천재적 재능" 호소 랭크뉴스 2024.07.09
40499 [단독]22대 국회 개원식 15일 검토···사상 초유 ‘생략’ 가능성도 랭크뉴스 2024.07.09
40498 권익위, ‘김건희 명품백’ 종결의결서 공개…“처벌 전제 수사 불필요” 랭크뉴스 2024.07.09
40497 "'잔술'도 파는데 딱 한 잔만?"…한 잔만 마셔도 수명 '이만큼' 줄어듭니다 랭크뉴스 2024.07.09
40496 당대표 출사표 던진 김두관…“뻔히 보이는 민주당 붕괴 온몸으로 막겠다” 랭크뉴스 2024.07.09
40495 김정은 일가 '호화 유람선' 포착…수영장에 워터슬라이드도 있다 랭크뉴스 2024.07.09
40494 저출산·괴롭힘에 일본 자위대 위기…작년 채용률 50% '사상 최저' [지금 일본에선] 랭크뉴스 2024.07.09
40493 김두관, 민주 대표 출마…"제왕적대표·1인정당, 민주주의 파괴"(종합) 랭크뉴스 2024.07.09
40492 [단독] ‘430억원’ 군 무인기, 중국산이었다…방사청, 업체 처분 검토 랭크뉴스 2024.07.09
40491 K리그 현역선수, 여성에 성병 옮겨 검찰 송치… “미필적 고의 인정” 랭크뉴스 2024.07.09
40490 장예찬 "한동훈, 법무부 장관 때부터 민간 온라인 대응팀 운영" 랭크뉴스 2024.07.09
40489 '친韓' 장동혁 "한동훈, 김건희 문자 없어… 친윤·원희룡 캠프 주도" 랭크뉴스 2024.07.09
40488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 건의안’ 의결…대통령 재가만 남았다 랭크뉴스 2024.07.09
40487 "임성근 위해 존재하는 정권" 군인권센터, 채상병 특검 거부권 건의에 비판 랭크뉴스 2024.07.09
40486 [속보]박성재 장관 “채 상병 특검법, 위헌성 오히려 가중···재의요구 건의” 랭크뉴스 2024.07.09
40485 ‘시청역 참사’ 가해 차량 블랙박스 들어보니…네비 음성 담겨있었다 랭크뉴스 2024.07.09
40484 “일라이 릴리 비만 치료제, 노보 노디스크보다 낫다” 랭크뉴스 2024.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