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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포 박아무개(36)씨와 아내 이아무개(36)씨가 2019년 결혼식을 올리며 찍은 사진. 아내 이씨는 화성 아리셀 리튬전지 폭발 참사 ‘외국인 사망자 및 실종자 명단’에 올라와 있다. 김가윤 기자

“부상자 중에 의식을 잃어서 아직 가족에게 연락이 안 간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요?”

중국 동포 박아무개(36)씨의 목소리는 떨렸다. 화성 아리셀 리튬전지 폭발 참사가 일어난 지난 24일부터 아내 이아무개(36)씨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머릿속이 텅 비었다가 생각이 떠오르면 눈물이 쏟아진다. 그럴 때마다 기도했다. 아내는 아직 살아 있고, 큰 부상으로 의식을 잃은 거라고. 그래서 연락이 없는 거라고. 아니, 그렇게 해달라고. 27일 경기도 시흥의 자택에서 만난 박씨는 고요한 거실에 앉아 전화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겨레와 만난 27일 오전까지 아내의 이름은 폭발 참사 ‘실종자 명단’에 적혀 있었다.

“돈 열심히 벌어서 우리 행복하게 살아보자.”

둘은 중국에서 같은 회사에 다니다 친해졌다. 2014년 방문취업(H2) 비자를 받아 한국에 왔다. 박씨가 중국에서 하던 백화점 가전 판매 일은 월급이 3천위안, 한국 돈으로 57만원이었다. 저축은커녕, 아픈 어머니 치료비에도 못 미쳤다. 13년간 한국에서 식당 일을 하며 중국에 있는 외동아들 박씨를 키우다 중국으로 돌아온 어머니가 한국행을 권했다. “한국에 가겠다”는 박씨에게 이씨는 같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한국은 ‘꿈’이었다.

중국 동포 박아무개(36)씨와 아내 이아무개(36)씨가 2019년 결혼식을 올리며 찍은 사진. 아내 이씨는 화성 아리셀 리튬전지 폭발 참사 ‘외국인 사망자 및 실종자 명단’에 올라와 있지만 27일 오후까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김가윤 기자

“처음부터 참 쉽지가 않더라고요. 한국인이 아니라서 그런지 정규직으로 받아주지를 않았어요.”

꿈꾸던 일자리는 없었다. 아내는 한국에서 마스크팩, 정수기·공기청정기, 자동차 공장을 계약직으로 전전했다. 대부분의 회사가 일이 많을 땐 사람을 뽑았다가, 일이 줄면 내보냈다. 둘은 함께 자격증을 따 재외동포(F4) 비자를 얻었지만 자격증에 걸맞은 ‘원하는 일’을 선택할 여유는 없었다. 일자리 공고가 뜨면 “닥치는 대로” 지원해야 먹고살 수 있었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바라며 공장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던 박씨도 ‘일당이라도 많이 받겠다’며 건설 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국은 모든 것이 비쌌다. 박씨의 첫 월급은 200만원이었다. 월세와 관리비, 통신비, 식비를 제하면 130만원이 남았다. 이 돈으로 중국에 남은 가족 생활비와 어머니 치료비를 댔다. 저축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도 네가 있어서 힘이 난다, 그래서 버티고 있다, 아내에게 늘 말했어요.”

지난해 9월 중국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틀 뒤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아내가 옆에 있었다. 한국에 온 지 5년째 되던 2019년 둘은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동갑내기 부부는 한국에서 만들어 갈 미래를 씩씩하게 계획했다.

중국 동포 박아무개(36)씨가 아내 이아무개(36)씨의 생일인 지난 6월16일 사준 화장품 세트. 한번도 쓰지 못한 채 상자에 담겨 있다. 김가윤 기자

“꿈이 깨진 거예요.”

박씨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해 9월 이후 쓰러진 아버지를 돌보느라 중국에 장기간 머물러야 했던 박씨 대신 아내가 지난 3월 초 한국으로 먼저 나와 일을 구했다. 아리셀 공장의 배터리 조립·포장 일이었다. 참사 이틀 전인 22일 아내는 ‘공장에 불이 나 깜짝 놀라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했다. 직원들이 알아서 불을 껐고, 이후 안전교육이나 대피경로 안내는 없었다고 했다.

사고 8일 전인 16일은 아내의 생일이었다. 아내는 선물로 건넨 화장품 세트를 뜯지 않았다. 갖고 싶다던 화장품이었다. 올해 목표는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가는 거였다. 부부의 첫 여행 계획이었다. 고생한 아내를 위해 박씨가 계획했다.

오후 5시, 전화기가 울렸다. 실종자 명단에서 사망자 명단으로 아내의 이름이 옮겨졌다. 사흘 만에 아내를 만나기 위해 박씨가 집을 나섰다. “이 지구에 혼자 남은 것 같아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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