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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이래 국내 최대 탄광 장성광업소 문 닫아
내년엔 도계광업소 폐광…이후 삼척 경동탄광 1곳만
태백의 마지막 광부이자 7월1일 폐광 예정인 장성광업소에서 일하는 탄광노동자들의 모습. 현직 탄광노동자인 전제훈 사진작가 제공

제 별명은 ‘검은 다이아몬드’입니다. ‘불타는 돌’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근간이 됐으며,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역이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제 이름은 ‘석탄’입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포항 석유 매장 가능성’을 깜짝 발표하면서 ‘산유국 대한민국’ 가능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죠. 하 지만 에너지 수입의존율이 97%나 되는 대한민국도 ‘석탄’이라는 풍부한 에너지 자원이 있습니다. 저는 산업화 시대 ‘한강의 기적’을 만든 일등공신이라는 평가뿐 아니라 특히 1973년과 1977년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2003년 미국·이라크전 등 유가 폭등 시기 한국 경제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라는 칭찬까지 받았습니다.

태백의 마지막 광부이자 7월1일 폐광 예정인 장성광업소에서 일하는 탄광노동자들의 모습. 현직 탄광노동자인 전제훈 사진작가 제공

하지만 1980년대 후반 들어 점차 국민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사용하기 편리한 석유·가스 보급이 확대되면서 인기가 한풀 꺾였습니다. 그러다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조처로 본격적인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국내 연탄 수요는 1988년 2293만t에서 2020년 51만t으로 급격하게 쪼그라들었습니다.

수요가 줄자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됐습니다. 1988년 347곳에 이르던 탄광이 대부분 문을 닫고 6월 말 현재 3곳만 남았습니다. 탄광노동자 수도 같은 기간 6만2259명에서 1620명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최근에는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더러운 연료’라는 낙인까지 찍혔습니다. 개인적으론 한 시대를 풍미했으니 이런 식의 ‘은퇴’에 불만은 없습니다.

지난 17일 한국광해광업공단이 ‘2024년도 폐광심의위원회’를 열어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를 폐광지원 대상 광산으로 선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장성광업소는 7월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광업권 소멸 등록 등 마지막 폐광 절차를 밟습니다. 장성광업소가 어떤 곳입니까? 일제 강점기인 1936년 개발을 시작해 그동안 시설, 기술, 생산, 능률 면에서 늘 국내 최고라는 명성을 유지해왔습니다. 이는 그동안 장성광업소가 캐낸 석탄(9400만t)이 대한석탄공사 총생산량(1억9300만t)의 49%에 이른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생산된 석탄의 절반을 책임질 정도로 큰 광업소가 88년 만에 문을 닫게 된 겁니다.

사실 장성광업소 폐광은 이미 지난해부터 예견됐습니다. 노사정 간담회와 노사 합의를 통해 지난해 화순광업소, 올해 장성광업소에 이어 2025년도 도계광업소 폐광까지 결정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대한석탄공사 소속의 탄광 3곳이 모두 문을 닫으면 국내 탄광은 민영인 삼척 경동탄광(경동상덕광업소) 1곳만 남게 됩니다.

태백의 마지막 광부이자 7월1일 폐광 예정인 장성광업소에서 일하는 탄광노동자들의 모습. 현직 탄광노동자인 전제훈 사진작가 제공

‘국내 최대 탄광의 88년 만의 폐광’이라는 충격 탓일까요? 지역에 미치는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장성광업소는 태백에서 가장 큰 기업이고,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장성광업소에 근무 중인 태백의 마지막 탄광노동자 415명이 동시에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대량 실업과 이에 따른 급격한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이유입니다.

강제 퇴직을 앞둔 탄광노동자 상당수는 “태백에 살면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지난 4월 지역 98개 사회단체 대표들이 꾸린 태백시현안대책위원회가 여론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퇴직 후 새로운 직장을 희망하느냐’는 질문에 53%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고민 중’이라는 응답도 18%에 이르렀습니다. 노동자 69%는 ‘퇴직 후 태백에 거주할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하지만 태백뿐 아니라 전국 어디에도 더는 탄광노동자를 추가로 고용할 곳은 없습니다.

장성광업소 제2수갱 기공식 모습. 대한석탄공사 제공

장성광업소 폐광에 따른 대규모 실업 문제가 우려되자 강원도와 태백시 등 지방자치단체는 지난 5월31일 정부에 고용위기지역 지정 신청서를 내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되면 구직급여와 생활안정자금(생계비), 전직·창업 지원, 고용촉진지원금, 맞춤형 일자리 사업 등에 연간 최대 300억여원의 국비를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발걸음은 더디기만 합니다. 장성광업소에 근무 중인 문윤기(57)씨는 “퇴직하면 어깨 등 근골격계 질환부터 치료하면서 재취업에 도전하려는데 배운 것이 광산 일이 전부라 어떤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장성광업소 철암선탄장에 석탄이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 대한석탄공사 제공

노동자들은 먹고살 길이 걱정이지만, 태백시는 존폐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내몰렸습니다. 그만큼 장성광업소가 태백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입니다. 강원도가 2023년 발표한 ‘탄광 지역 폐광대응 연구용역’ 결과를 보면, 장성광업소가 폐광하면 태백 지역내총생산(GRDP)은 13.6% 줄어드는 등 경제적 피해 예상 규모만 3조3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태백시의 절박함은 인구 변화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태백 인구는 1987년 12만명을 넘어섰지만, 현재(4월 현재)는 3만8272명에 불과합니다. 이는 전국 시 단위 가운데 가장 적을 뿐 아니라 인근 평창이나 횡성 등 군 단위보다도 적습니다. 이 탓에 장성광업소 폐광까지 현실이 되면 인구 3만명이라는 마지노선도 무너져 태백시라는 지자체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공포까지 퍼지고 있습니다.

1960년대 장성광업소 선탄장에서 노동자들이 작업하는 모습. 대한석탄공사 제공

발등에 불이 떨어진 태백시는 광업소를 대체할 기반 산업 마련에 목을 매고 있지만 쉽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다른 지역에서는 기피 시설로 여기는 교도소까지 유치에 나섰겠습니까. 귀금속 제련에 따른 환경오염 우려로 무산됐던 귀금속산업단지를 유치하자거나 폐갱도에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보관장을 유치하자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태백의 마지막 광부이자 7월1일 폐광 예정인 장성광업소에서 일하는 탄광노동자들이 ‘나라가 지어준 이름 광부! 나라가 버린 이름 광부! 그런 우리는 마지막 광부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지여 그대들의 이름으로 영원하길!’이라는 펼침막을 손에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현직 탄광노동자인 전제훈 사진작가 제공

얼마 전 광업소 앞에서 퇴직을 앞둔 탄광노동자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노동자들은 ‘나라가 지어준 이름 광부! 나라가 버린 이름 광부! 그런 우리는 마지막 광부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지여 그대들의 이름으로 영원하길!’이라는 펼침막을 손에 들었습니다.

안도현은 시 ‘너에게 묻는다’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고 재가 되어서는 발에 차이는 신세가 된 ‘연탄재’와 대한민국이 필요할 때는 산업전사로 추앙하다가 이제는 실업자로 내몰린 ‘탄광노동자’가 겹쳐 보이는 건 저뿐인가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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