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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7일 ‘친족상도례’ 규정 형법 328조에 대한 위헌 여부 선고를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정효진 기자


헌법재판소가 27일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을 재판관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한 것은 가족·친족의 실질적 관계, 범죄로 인한 피해 정도,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처벌 의사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해 피해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형법 328조 1항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의 절도·사기·공갈·횡령·배임·장물·권리행사방해 등 범죄에 대한 형을 면제한다는 내용이다. 헌재는 우선 이 조항의 적용을 중지하되 국회가 내년 12월31일까지 이 조항을 개정하도록 했다.

이번 결정은 지적장애 3급 장애인인 김모씨 등이 청구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나왔다. 김씨는 아버지 사망 이후 작은아버지 부부와 동거하면서 퇴직금·상속재산 등 2억원이 넘는 돈을 빼앗겼다. 김씨는 장애인 지원기관의 도움을 받아 작은아버지 부부를 준사기·횡령 혐의로 고소했지만, 그들이 동거친족이라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다른 청구인인 최모씨는 동생 부부가 치매를 앓던 어머니 명의의 예금을 횡령했다고 고소했지만,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라는 이유로 불송치 결정이 내려졌다. 모두 친족상도례를 규정한 형법 조항으로 인해 수사 단계에서부터 처벌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헌재는 친족상도례 조항의 필요성 자체는 인정했다. 가정 내 문제에 대한 국가형벌권 행사 최소화 원칙, 한국의 친밀한 전통적 가족·친족 관계 등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헌재는 “친족상도례 규정 취지는 가정 내부의 문제는 국가형벌권이 간섭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정책적 고려와 함께 가정의 평온이 형사처벌로 인해 깨지는 것을 막으려는 데 있다”고 했다.

하지만 헌재는 해당 조항이 가족·친족 간 실질적 관계를 따지지 않고 일률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이 문제라고 봤다. 헌재는 “직계혈족이나 배우자에 대해 실질적 유대나 동거 여부와 관계없이 적용되고, 8촌 이내의 혈족이나 4촌 이내 인척에 대해 동거를 요건으로 적용되기도 한다”며 “이처럼 넓은 범위의 친족간 관계의 특성은 일반화하기 어려움에도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하면 형사피해자인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켜 본래 제도 취지와는 어긋난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친족상도례가 범죄 경중을 따지지 않고 적용되는 점도 지적했다. 예를 들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이나 업무상 횡령의 경우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인 경우 최대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는 중범죄임에도 친족이란 이유로 처벌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헌재는 친족상도례가 장애인 등 독립적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도 했다. 헌재는 “가족과 친족 사회 내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는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다”고 했다. 헌재는 친족상도례 규정이 있는 다른 국가들도 한국처럼 일률적으로 광범위한 친족의 재산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 여부와 무관하게 기소할 수 없도록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도 지적했다.

다만 헌재는 단순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가족·친족 관계, 피해 정도, 피해자의 처벌의사 등을 고려 요소로 하는 다양한 대안을 가지고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법을 개정하란 취지에서다. 헌재는 “해당 조항의 위헌성은 일률적으로 형면제를 함에 따라 구체적 사안에서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형해화할 수 있다는 데 있다”면서 “위헌성을 제거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선택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날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이외의 친족 간 재산범죄에 대해 고소가 있을 때만 기소할 수 있도록 한 형법 328조 2항에 대해서는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역사적·문화적 특징이나 형벌의 보충성을 고려해 일정한 친족 사이에서 발생한 재산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국가형벌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한 것으로서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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