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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 뒤 공동 회견을 하고 있다. 평양/EPA 연합뉴스


이본영 | 워싱턴 특파원

신냉전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기 시작했을 땐 긴가민가하다는 의견이 상당히 있었다. 적절치 않다거나 과장이라는 반박도 나왔다. 하지만 지금 신냉전은 이 시대를 묘사하는 유력한 표현으로 굳어지는 느낌이다.

이제 ‘신 악의 축’이라는 말의 차례다. 북한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이 여기에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러시아·이란·북한이 미국 쪽에서 얘기하는 ‘신 악의 축’이다. 공화당 인사들은 이를 상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도 23일 시비에스(CBS) 인터뷰에서 네 나라를 “악의 축”이라고 불렀다. 워싱턴포스트의 한 칼럼은 “악의 연대”라는 표현을 썼다.

원조 ‘악의 축’은 9·11 테러 넉달 뒤인 2002년 1월 조지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로 지목한 이란·이라크·북한이다. 부시는 2차대전 때의 추축국(독일·이탈리아·일본)에서 따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조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 쪽은 이런 말을 거의 입에 올리지는 않는다. 공화당 행정부의 실패한 대외 정책의 상징처럼 된 말을 빌려 쓰는 것은 바보짓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신 악의 축’ 개념의 기본 틀을 만든 게 바이든 행정부다. 국가정보국(DNI)이 발간하는 ‘연례 위협 평가’ 보고서는 바이든 행정부 첫해인 2021년부터 머리 부분에 별도로 중국·러시아·이란·북한을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제시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분야와 지역별로 위협을 설명하며 이 나라들을 언급했다. 이제 미국에서는 새로운 서술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시류에 뒤처진다는 소리를 듣게 생겼다. 3월에는 존 애퀼리노 인도태평양사령관까지 ‘악의 축’ 표현을 사용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그가 처음으로 이 표현을 공개적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권위주의 정권들의 연대를 ‘악의 축’이나 ‘신 악의 축’이라고 부른들 뭐가 문제인가? 그런데 사안이 단순하지만은 않다. 부시가 ‘악의 축’을 무찌르자고 한 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의 화염이 솟구쳤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도 선제타격 운운하다가 북핵 문제를 다시 꼬이게 했다. 유화 국면이던 이란도 한순간에 적으로 돌려놨다. 서구에서 선과 악이란 다분히 종교적인 맥락과 정서를 품고 있다. 그런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악이란 대화와 교정이 아니라 격멸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개념의 다른 문제는 대상들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그 차이를 활용하기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신 악의 축’ 4개국 중 3개국이 핵무장 국가다. 나머지 하나인 이란도 핵무장의 길을 걸을 수 있다. 20여년 전과는 차원이 다른 새 ‘악의 축’을 어떻게 한꺼번에 다룰 수 있는지 의문이다.

‘악의 축’은 스스로 생겨날 수 있지만 그렇게 부르는 쪽에 의해 만들어지고 성장할 수도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저들이 합세해 안보를 저해한다지만 반대편에서는 미국이 억누르니까 자기들은 뭉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쟁과 갈등의 원인을 냉정히 따져 하나씩 해결하지는 않고 ‘감히 너희들이…’ 식으로만 접근하다가는 과오를 반복할 수 있다.

그나저나 악이 어쩌고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8개월 넘게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상황은 도대체 악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런 게 악이 아니라면 악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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