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한 뒤 자리에 앉아있다. 연합뉴스

가족을 상대로 벌인 재산범죄는 처벌하지 않는 형법의 ‘친족상도례’ 조항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친족간 관계는 일반화하기 어려운데도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하는 것은 부당하며, 특히 가족 내 취약한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봤다.

헌재는 27일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동거 중인 친족을 상대로 사기·횡령·배임 등 재산범죄를 저질러도 형을 면제받는 근거가 되는 형법 제 328조 제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피해자가 법관에게 적절한 형벌권을 행사해줄 것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기 때문에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위헌이긴 하지만 사회 혼란을 막기 위해 즉시 무효로 하진 않고 헌재가 제시한 기간까지 그 법을 유지하는 결정이다.

형법 328조 1항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호주, 가족 또는 그 배우자” 사이는 권리행사방해죄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 조항은 친족 간의 재산범죄 등에 준용되어왔다. 국가 형벌권이 가족끼리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까지 함부로 규율하면 안 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조항이다. 범행 동기나 죄질,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이번에 헌재의 판단 대상이 된 사건들은 취약한 지위에 놓인 이들이 가족 구성원을 고소한 경우였다. 장애인인 청구인이 자신의 삼촌을 준사기·횡령 혐의로 고소하거나 파킨슨병에 걸린 어머니를 대리해 그의 자녀가 자신의 형제·자매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소했지만 친족상도례 규정으로 인해 불기소 처분된 사건들이다.

4개 사건을 병합해 심리한 헌재는 가족관계라고 해서 모든 재산범죄에 대해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하는 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경제적 이해를 같이하거나 정서적으로 친밀한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발생하는 용인 가능한 수준의 재산범죄에 대한 처벌 특례의 필요성은 수긍할 수 있다”면서도 “친족간 관계의 특성은 일반화하기 어려움에도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할 경우, 형사피해자인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이 된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한 업무상 횡령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인 특정경제범죄일 경우에도 이 조항에 따라 형을 면제해주는 사례를 들며 “일부 재산범죄의 경우 피해의 회복이나 관계의 복원이 용이한 범죄라고 일률적으로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헌재는 친족상도례 규정이 일부 가족 구성원의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헌재는 “피해자가 독립해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무처리능력이 결여된 경우에 이 조항을 적용하거나 준용하는 건 가족과 친족 사회 안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는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헌재는 2025년 12월31일까지 국회에 개선 입법을 요구했다. 헌재는 “이 조항의 위헌성을 제거하는 데는 여러 선택이 있을 수 있다”며 “입법자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그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면서 헌법불합치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한겨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33390 "전 라면만 끓였는데요"…안마시술소 직원 '징역형' 선고받은 이유는? 랭크뉴스 2024.08.13
33389 美백악관 "러의 키이우 공격에 北미사일 포함 보도 확인 못해" 랭크뉴스 2024.08.13
33388 입건된 36주 낙태 여성·의사… 관건은 ‘살인이냐, 사산이냐’ 랭크뉴스 2024.08.13
33387 바이든 사퇴·차기 부통령 지명 쥐락펴락…美 민주당 최고 권력자 낸시 펠로시 랭크뉴스 2024.08.13
33386 “8월14일 대지진”?… 日서 지진운에 예언까지, 허위정보 확산 랭크뉴스 2024.08.13
33385 2024 파리올림픽 감동의 순간들 랭크뉴스 2024.08.13
33384 “우리은행이 회장은행이냐” 손태승 부당대출에 ‘부글’ 랭크뉴스 2024.08.13
33383 [사설] 논란의 강경 인사들, 외교안보 라인에 전진 배치 랭크뉴스 2024.08.13
33382 ‘36주 임신중지 브이로그’가 남긴 질문…정부는 ‘처벌 촉구’ 말고 뭘 했나 랭크뉴스 2024.08.13
33381 美, 핵잠수함 경로 이례적 공개…폭스뉴스 "이란. 24시간 내 보복 공격" 랭크뉴스 2024.08.13
33380 러, 본토 전투속 대규모 무기전시회…북한 대표단도 참석(종합) 랭크뉴스 2024.08.13
33379 목욕가운만 입고 지하주차장 '어슬렁'…수상한 10대들의 정체 알고보니 랭크뉴스 2024.08.13
33378 후진하다가 10m 아래로 '쿵'…70대 몰던 차, 난간 뚫고 추락 랭크뉴스 2024.08.13
33377 “코로나 재유행에 진단키트 품귀”… 연달아 급등한 코로나 관련株 랭크뉴스 2024.08.13
33376 50만원? 100만원?…파리올림픽 금메달 한 개 얼마? 랭크뉴스 2024.08.13
33375 “파리지앵도 직관 어려운 올림픽 푯값…친환경도 균형 필요해” 랭크뉴스 2024.08.13
33374 "요즘 누가 '호캉스' 가고 '오마카세' 먹나요"…지갑 닫고 '요노'된 MZ들 랭크뉴스 2024.08.13
33373 '채 상병 수사' 공수처, 尹대통령 개인 휴대폰 통신내역 확보 랭크뉴스 2024.08.13
33372 서울 부동산 위법 거래, 1년간 1017건 ‘들통’ 랭크뉴스 2024.08.13
33371 생후 2개월 딸 버렸다 14년 만에 붙잡힌 엄마 "외도로 낳은 아이" 랭크뉴스 2024.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