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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으로 배터리를 한 군데에 많이 저장하면 안 되고, 적합한 소화기를 갖춰야 하고, 출입구를 제대로 마련해야 하고,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고, 그런 것들도 있겠죠. 하지만 결국은 '불법파견'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봅니다. 교육만 제대로 받았어도 바로 다 대피했을 거예요."
- 손익찬 변호사 (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지난 24일 발생한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공장 아리셀의 화재 사고 피해자 대부분은 '외국인 근로자'입니다. 희생자 23명 중 18명이 외국 국적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런데, 이들 전원이 원청사인 아리셀이 아닌 인력업체 메이셀을 통해 사실상 '불법파견' 형태로 근로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위험한 공정이 '외주화'를 넘어 '이주화'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 산업재해 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 두 회사가 같은 주소지에…"사실상 불법파견"

아리셀 박순관 대표는 어제(25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불법파견'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현행 파견법상 아리셀과 같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은 파견 근로가 금지돼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맡았던 업무는 '군부대 납품용 리튬 일차전지' 완제품 검수와 포장 공정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앞서 2017년 헌법재판소는 '제품을 검사 및 포장하는 업무'도 직접생산공정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소방청 중앙긴급구조통제단이 어제(25일) 공개한 경기 화성 리튬전지 제조업체인 아리셀 공장의 화재 진행 상황이 담긴 내부 CCTV 화면.

이번 사고 사업장 현황을 보면 문제는 더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원청 아리셀과 하청 메이셀은 각각 1차전지 제조 및 판매업, 1차전지 제조업으로 업종이 등록돼있는데, 주소지가 정확하게 같았습니다.

하청 메이셀이 사실상 '인력소개업체' 형태로 운영되며, 아리셀에 외국인 근로자들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입니다. 메이셀은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메이셀은 지난 4월까진 '한신다이아'라는 업체명으로 운영됐던 거로 확인됐는데, 이 회사 역시 아리셀의 모기업인 에스코넥 안산사업장과 같은 주소지에 위치했던 거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손익찬 변호사는 "불법파견이 아닐 가능성은 '제로'라고 생각한다"며 "흔히 안산이나 반월 시화공단, 대기업 4~6차 협력업체 등에선 만연한 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민길수 고용노동부 지역사고수습본부장(중부고용노동청장)은 오늘(26일) 브리핑에서 "(두 회사 간) 도급 계약서는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서면이 아닌 구두 계약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다만 "도급계약이 실제 (아리셀 측) 주장대로 이뤄졌는지는 작업 공정이나 인사노무관리 지휘를 누가 했느냐 등을 종합적으로 봐서 결정해야 할 거 같다"고 전했습니다.

■ "좋은 소화기를 갖다놓은들 무슨 소용"…"'값싼 노동' 위해 묵인"

불법 파견은 곧바로 '미흡한 안전관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임시직으로 일하며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언어 문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법무법인 원곡 최정규 변호사는 "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며 "지금까지 '값싼 노동'을 위해 고용노동부가 임시·파견직을 묵인해왔던 게 터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임시·파견직은 안전교육에서 누락됐을 가능성이 있고, 새로 투입된다고 해서 다시 교육하라는 규정도 없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 노동자 스스로도 이곳에서 내일도 근무하고, 1년 내내 근무한다면 여러 가지 안전 대비를 하고 자구책을 마련하며 교육을 '내(나의) 일'로 받아들이겠지만, 일용직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오늘(26일) 오전 민주노총, 이주노동자노조 등으로 구성된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손익찬 변호사는 "규제를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이런 식으로 불법파견 형태로 노동자를 받아서 쓰고 교육을 제대로 안 하면 하등 쓸모가 없다"며 "아무리 좋은 소화기를 갖다 놓는다고 해도 사람이 쓸 줄 모르면 무슨 소용인가"라고 꼬집었습니다.

유성규 노동건강연대 노무사는 "비정규직 인력은 이직이 잦고 그 사업장에 대한 정보가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교하면 부족하다"며 "장기간 근속한 직원과 달리, 이런 사고가 났을 때 기본적으로 빠르게 대처하기가 어렵다"고 짚었습니다.

또 "노동자들이 계속 바뀌다 보니 안전보건교육이라든가 매뉴얼 숙지 등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며 "게다가 불법파견의 경우, 일반적으로 사업주가 이들의 고용 사실을 숨기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법령상 조치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 "외국인 취업자 전체 3%지만 산재 사망은 10%"…그들에게 기억될 한국은?

실제로 국내 산재 사고 사망자 10명 중 1명은 외국인 근로자입니다.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산재 사고로 사망한 외국인 근로자는 85명으로, 전체 사망자 812명의 10.4%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기준 15세 이상 전체 취업자 2,841만 6,000명 가운데 외국인 취업자가 92만 3,000명으로 전체의 3.2%를 차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비중입니다.


하지만 저출생·고령화의 영향으로 중소 제조업체 등의 인력난이 심각하다 보니, 정부는 매년 고용허가제(E-9) 외국인 근로자 공급을 큰 폭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전년 12만 명 대비 4만 5,000명이 늘어난 16만 5,000명이 들어올 예정입니다. 2021년에 비하면 3배 넘게 늘었을 만큼, 급격한 속도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안전한 일터'가 될 수 있는지, 이번 참사와 같은 사고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지는 다시 한번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유성규 노무사는 "이런 불법파견이 만연해있다는 것을 우리 정부가 모르지 않는다"며 "정부가 불법 파견이라든가 탈법적인 고용 형태 등을 앞장서서 적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산업안전보건법령에 대한 예방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며 "현재는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 관련 예방감독 인력이 많이 부족한데, 전문적이고 경험도 많고 충분한 예산과 인력을 갖춘 예방감독 조직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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