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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건조기를 샀다. 세탁을 끝낸 빨래를 베란다에서 말리는 것보다 힘도 덜 들고 잘 말려지고 시간도 덜 들어서 좋을 줄 알았다. 실제로 좋았다. 그런데 빨래 건조기가 정말 마음에 든 건 결정적인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내 일상을 심플하게 해준다. 건조기가 없었을 때는 빨래가 마를 때까지 쓸 여분의 이불, 여분의 코트, 여분의 정장, 여분의 가방, 여분의 양말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건조기가 생긴 다음에는 필요 없어졌다. 세탁을 마친 빨래는 몇 분 안에 뽀송하게 건조된다. 여분의 옷가지를 따로 놓아둘 공간이 불필요해졌고 여분의 옷가지를 따로 더 사둘 비용 지출도 없어졌고 세탁물을 언제 빨아서 어느 약속에, 어느 회의에 입고 가야 한다는 계획에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됐다.

요즘의 제품과 솔루션은 ‘기능’만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지 못한다. ‘결정타’가 있어야 한다. 대단한 기술일 수도 있지만 꼭 기술이 아니더라도 다른 재미, 새로운 제안, 관점을 비튼 접근법일 수도 있다.
로레알 메이크업 로봇매년 1월 초가 되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행사가 하나 있다. CES다. 전 세계적으로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가 전시된다. CES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것은 특히 기조연설(Keynote speech)이다. 어떤 기업의 누가 나와 발표를 하느냐가 많은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해의 글로벌 비즈니스 트렌드가 어느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를 이 기조연설에서 알 수 있다. 더 쉽게 말하면 돈이 어디로 모이고 있는지가 여기서 보인다.

2024년 기초연설자는 IT 회사도, 자동차 회사도, 가전 회사 소속도 아니었다. 프랑스 뷰티 기업 로레알의 CEO였다. 로레알은 IT 기업 못지않은 투자와 연구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의 ‘이미지 등 디지털 데이터 처리’ 분야는 로레알이 출원하는 전체 특허의 11%를 차지한다.

로레알의 휴대용 로봇 메이크업 기기는 내장된 스마트 모션과 맞춤형 부착장치를 통해 마스카라나 립스틱을 직접 여닫고 사용자의 얼굴에 발라준다. 미세하게 굴곡진, 그것도 아주 다양한 사용자의 이목구비를 어떻게 인식할까?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이 사용자의 움직임과 메이크업 패턴을 학습화해서 최적화한 화장을 해준다.

연예인이 아닌 이상 일반인이 매일매일 새로운 색조 화장을 바꿔서 하기란 정말 어렵다. 시간도 많이 들고 전문 지식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휴대용 로봇 메이크업 기기는 나 대신 메이크업을 공부하고 (인공지능이니까, 한 번 공부하고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공부하고) 나에게 딱 맞는 화장을 해준다. ‘재미’라는 요소도 뺄 수 없다. 내가 직접 하는 대신 로봇이 해준다는 것 자체가 메이크업 루틴에 신선함을 주니까.
애플 비전프로 아이사이트애플이 발표한 ‘비전프로’는 다른 VR, AR과 다른 독특한 기능이 하나 있다. ‘아이사이트’다. 비전프로를 착용한 사람에게 다른 이가 가까이 다가간다고 해보자. 다른 이를 인식한 비전프로는 화면이 투명해지면서 비전프로 착용자에게 누가 다가왔음을 알리고 주변을 인식하게 해준다. 비전프로를 벗지 않아도 비전프로 착용자는 상대와 바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상대도 비전프로 착용자의 눈을 바라볼 수 있다. 번거롭게 헤드셋을 벗거나, 다시 쓰거나, 상대방이 헤드셋 사용자를 부르거나 터치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 아이사이트는 현실과 가상 세계의 단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왔다. 가상 세계에 몰입해 있다가도 필요에 따라 현실로 나와야 할 때 아이사이트가 가이드가 되어 준다. 물리적 공간에 다른 이가 없으면 아이사이트는 자동으로 종료되고 사용자는 도로 가상세계로 들어간다. 헤드셋 사용자가 콘텐츠를 즐기는 중일 때는 눈을 가리는 완전 몰입 모드로 전환된다. 영상을 촬영 중일 때는 아이사이트가 빛을 내어 주변인에게 이를 알려준다. 주변 체크는 아이사이트가 해주니 사용자는 그저 마음 편하게 ‘안전하게’ 비전프로를 이용하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게, 아이사이트는 자연스럽게 ‘지금 이 사람이 비전프로’를 쓰고 있음을 주변에 스스로 홍보하는 효과가 있다. 이는 분명 애플에 이득이다. 하지만 새로 산 비전프로를 자랑하고 싶은 사용자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이를 애플이 모를 리 없다.
파일럿 로봇챗GPT 인공지능을 활용한 파일럿 기능은 이미 세상에 나와 있다. 조종석과 외부를 관찰하고 시동, 이착륙을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로봇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기존 인공지능 자율 비행 프로그램과는 달리 카이스트가 개발한 로봇은 인간형 파일럿 로봇이다. 어떤 면에서 좋을까?

기존 항공기를 개조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형 로봇은 기존 항공기의 인간 조종사 역할을 대체하니 기존 항공기 공간에서 곧바로 비행, 조정이 가능하다. 비즈니스 확장성도 높다. 인간 파일럿 로봇의 핵심 기능을 활용하면 항공기뿐 아니라 자동차, 우주선, 선박, 의료, 방산 분야도 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결정타, 결국은 ‘자율주행’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 제품, 어디서 많이 본 기술이지 않은가? 이 세 가지 기술은 모두 한 가지를 바라본다. ‘자율주행 기능’과 원리가 동일하다.



우리가 흔히 자동차 자율주행이 핵심 트렌드라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율주행 자체가 아니라 자율주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이 알고리즘이다. 이 기본 알고리즘이 위에서 살펴본 자동차 자율주행, 로봇, 헤드셋 기기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이 알고리즘 기술을 적용 못할 비즈니스가 없다. 모든 비즈니스는 이 알고리즘을 통해 진화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이전에 미처 몰랐던 새로운 먹거리, 새로운 재미, 새로운 의미를 끌어낼 수 있다.

‘주변 관찰’, ‘정보 수집’, ‘유의미한 정보 센싱’은 빅데이터 축적 기술이다. 카메라 센서, 음성 센서, 위치 기반 센서 등 다양한 센서를 통해 이 제품, 서비스를 둘러싼 주변 환경 빅데이터를 파악한다. ‘판단’, ‘액션’ 은 인공지능이다. 수집된 빅데이터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무엇을 해야 함을 말해주는지 알아채고 결정을 한다.

이 사이클은 현대의 혁신 IT제품군 전체에 적용된다. 내가 하고 있는 비즈니스, 내가 개발 중인 제품도 모두 이 사이클 속에서 나만의 특장점을 찾아야 승산이 있다.

우리 솔루션은 주변 관찰을 할 때 다른 솔루션들은 수집 못하는 고도화된 영역인 OO정보도 수집한다? 더 비싸더라도 더 오래 걸리더라도 다른 서비스와 차별 포인트를 가지고 싶은 사람에게 안성맞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IT, 자동차, 항공, 우주, 의료, 관광 등 다른 사업 분야로 확장성을 고려하는 사업가들도 환영한다.

이렇게 소구 포인트를 찾으면서 자율주행 알고리즘 사이클을 거치는 연습을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더 양질의 빅데이터, 더 양질의 판단 능력 인공지능 기술이 확보된다. 그 기술이 탄탄하면 이제 내 제품만의 고유한 매력을 어필할 변주가 가능해진다.

정순인 ‘당신이 잊지 못할 강의’ 저자·IT 칼럼니스트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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