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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은 17일 무기한 휴진을 시작했다가 이를 중단하고 24일 진료를 재개했다. 24일 병원 공터에 환자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뉴스1
의대 증원과 관련한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넉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교수는 27일,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내달 4일 휴진하기로 돼 있다. 내달 4일에는 환자단체의 규탄 집회가 열린다. 혼란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서울대병원·서울대 의대(이하 서울대병원)가 무기한 휴진을 철회한 점은 다행스럽다. 서울대병원은 그 동안 선봉에 섰다. 가장 먼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고 사직서 제출도 앞장섰다. 지난 4월엔 '주 1회 휴진'에 앞장섰다. 이달 17일에는 무기한 집단휴진에 돌입했고 다른 병원들도 뒤따랐다. 대한의사협회도 서울대 일정에 맞춰 18일 전국 휴진을 했다.

민간병원도 서울대 따라가 서울대병원, 서울대 의대의 위상은 대단하다. 서울아산·삼성서울·세브란스 등 대형병원들이 서울대를 주시한다. 정부는 서울대의 파급력을 잘 안다. 3월에는 한덕수 총리가 서울대 의대를 찾았고, 이달 중순 서울대병원 비대위 집행부를 따로 만났다.
서울대병원 왜 선봉에 섰나
국가중앙병원·4차병원 책임감
"투쟁 경험 적고 자기중심적
정책대안 제시에 더 집중해야"
서울대병원이 왜 앞장설까. 무기한 휴진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강경 카드를 빼 들었을까. 서울대병원은 2000년 의약분업 파업 때도 선봉에 섰다. 당시 김현집 신경외과 교수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장을 맡아 휴진과 협상을 이끌었다. 이번엔 훨씬 강경하다. 2월에 세브란스병원 전공의가 앞장선 것처럼 보인 적이 있을 뿐 서울대가 죽 주도한다. 서울대병원 내과 A교수는 "책임감"이라고 요약한다. 그는 "우리가 난국을 해결해야 한다. 우리가 움직여야 달라진다"라고 말한다.

국립대 맏형 공적 유전자 서울대병원은 국립대병원의 맏형이다. 공적 마인드, 공적 유전자가 강하다. 김영태 원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가중앙병원으로서 국민이 믿고 의지하는 병원이 되겠다"라고 말했다. 전임 김연수 원장은 '서울대병원=4차 상급종합병원'을 강조했다. 강희경 비대위원장은 23일 중앙일보 통화에서 "서울대병원이 최상급 종합병원으로서 역할에 충실했는지 돌이켜보고, 미진한 게 있다면 한발 다가서도록 진료 방식 등의 개선을 건의해보겠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좋은 예를 보이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강희경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지난 20일 비대위 회의를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부 시선도 비슷하다. 연세대 출신의 한 의사는 "서울대는 '우리가 대한민국 의료를 책임진다'고 가르친다. 사립대와 다르다"고 말한다. 서울대병원의 60대 B교수는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상대적으로 젊다. 젊은 교수들이 의대 증원 파동에 문제의식을 강하게 느꼈고, 빨리 움직였다"고 분석한다. 서울대병원 C교수는 "서울대병원 교수의 윤리적·과학적 수준이 높은 편인데,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의 과학적 근거를 제대로 못 내놓으니까 정의를 위해 나선 것"이라고 말한다. 내과 D교수는 "(휴진에) 별생각이 없었는데, 다른 데서 '서울대는 어떻게 하느냐'고 하도 물어봐서 (휴진) 안 하면 창피당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며 "고민 끝에 마지막으로 비대위를 도와주자고 결심하고 휴진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양치기 소년이 되면 앞으로 아무것도 못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책임감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정원 확정 후 휴진 카드 그러나 마음만 앞설 뿐 국민을 설득하고 정부를 돌려세우는 데는 서툴렀다. 자기중심적이었고 국민이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뒷전이었다. 서울대병원 E 명예교수는 "평소 투쟁이란 걸 해 본 적 없어서 그런지 어설프기 짝이 없다. 뭘 주장하고 요구하는지, 어떻게 끝내려는지 도대체 모르겠더라. 답답하다"고 말한다. 정부 관계자도 "서울대 비대위와 대화하면 정확하게 뭘 주장하는지 헷갈리더라"고 말한다. '유일한 무기'에 가까운 집단휴진 카드의 시의성도 떨어졌다. 이번 파동의 분수령은 지난달 16일 서울고법 결정이었다. 법원이 의대 증원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인정하면서 의료계의 동력이 뚝 떨어졌다. 지난달 30일 정부가 정원을 확정했다. 이미 되돌릴기 힘든 상황. 그런데도 휴진을 강행했다. 서울대 교수회도 말렸는데도 그리했다. 여론은 더 나빠졌다. 대법원은 지난 19일 "의대 증원의 공익이 더 크다"고 결정했다. 공익을 중시하는 서울대병원 입장에서 뼈아픈 대목이다.
서울대병원 비대위는 "전공의가 잘못한 게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환자를 떠난 전공의가 국민에게 곱게 보일 리 없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 한 보건의료 전문가는 "서울대병원 비대위가 전공의를 먼저 꾸짖는 모습을 보여야 했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그는 "병원장을 뽑을 때 이전투구가 벌어지는 걸 보면 서울대병원이 얼마나 정치화된 집단인지 알 수 있다"고 꼬집는다. 다른 전문가는 "서울대병원이 의료계 리더이기는 하지만 국민 눈에는 공명심이 강한 무책임한 집단으로 비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서울대병원 내과 A교수는 "서울대병원 교수 중 소통 경험이 있는 사람은 보직을 맡고 있다. 지금 앞장선 사람은 의병 수준"이라며 "전공의나 의대생이 안 돌아오면 한국 의료가 10년 후퇴할 것이라는 충정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비대위 설문조사에서 향후 활동 방향으로 서울대병원 교수의 74%가 '지속 가능한 방식의 저항'을 택했고, 구체적으로는 정책 수립 과정 감시·비판과 대안 제시를 선택했다. 강 위원장도 휴진 철회 성명에서 정책 대안 제시를 강조했다. 서울대병원엔 이런 게 훨씬 잘 어울린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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