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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교제폭력 사망’ 112 신고 처리 내역 입수
울며 피해 호소·가해자 신고 막는 정황 나타나
‘처벌 불원=수사종결’ 관행 이참에 재검토해야
클립아트코리아

(서혜진 변호사의 ‘스토킹 처벌법 뜯어보기 특강’. 검색창에 ‘휘클리 심화반’을 쳐보세요.)

“한번만 도와주세요” 울며 오프(꺼짐). (2023년 7월2일)

“남자친구가 저를 팼다. 지금 같이 있다. 흉기를 들었다.” (2023년 7월7일)

남자가 전화를 대신 받아 “남친, 여친까리 싸웠는데 경찰 오지 말라”고 하며, 최초 여성 신고자 바꿔주지 않음. 전화기 너머 고함소리 들림. (2023년 10월15일)
25일 한겨레가 입수한 ‘거제 교제폭력 사망사건’ 관련 ‘112 신고사건 처리 내역서’의 일부다. 2022년 가해자와 교제를 시작한 피해자 이효정씨는 그해 12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총 11차례(목격자 신고 포함) 경찰에게 피해 구조를 호소하는 신고를 했다. 반복된 신고에도 경찰은 번번이 가해자를 풀어줬다. ‘폭행죄’는 반의사 불벌죄다. 신고 직후 이뤄진 초동 수사 과정에서 이씨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거나 ‘사건 접수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이유로, 경찰은 수사를 종결했다. 이씨는 이후 지난 4월1일 자신의 집에 무단침입한 가해자에게 수차례 구타당한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열흘 만에 숨졌다.

“스무살 갓 넘은 아이가 경찰서에서 조사받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었겠어요. 일이 복잡해지는 게 겁이 나 매번 처벌불원서를 써준 거죠.” 피해자의 어머니는 지난 1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애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더라도) 이토록 여러차례 피해를 호소하고, 맞은 게 눈에 보이는데 수사를 종결한 건 국가의 명백한 직무유기 아니냐”며 이렇게 말했다. 이씨의 반복된 신고에서 드러난 ‘위험 신호’를 경찰이 보다 적극 해석해 대처했더라면 안타까운 죽음을 피할 수도 있지 않았겠냐는 통탄이다.

지난해 7월 27일 촬영된 거제 교제폭력 사망사건 피해자 이효정씨의 상처. 유가족 제공

전문가들 사이에선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듯한 이런 수사 관행이 자칫 가해자에 대한 국가의 처벌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게 될 수 있다며, 이참에 ‘처벌불원=수사종결’ 관행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예림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은 이와 관련해 “친밀 관계 폭력 가해자는 집 주소, 직장 등 피해자의 사적인 정보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복이 두려워 처벌불원 의사를 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현재 수사 관행은 가해자에게 피해자를 공격할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뉴욕 등 23개 주에선 처벌불원=수사종결 관행이 불러올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가정폭력(전·현 배우자는 물론 애인 등 ‘친밀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 포함) 발생시 주 가해자를 식별해 의무 체포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이들 주에선 경찰이 피해자에게 ‘가해자 처벌을 원하느냐’ ‘고소할 것이냐’ 같은 질문도 할 수 없다.

아울러 장윤미 한국여성변호사회 교육이사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수사를 종결할 게 아니라, 폭행죄 외 다른 혐의 적용을 적극 검토해 가해 행위를 제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가족 쪽에서도 이씨가 이별 통보 이후 가해자의 연락을 차단하기 위해 휴대전화 번호와 에스엔에스(SNS) 아이디 등을 수차례 바꿨는데도 가해자가 반복적으로 이씨를 찾아왔던 만큼 스토킹 처벌법을 적용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유족 주장대로 사건 초기 경찰이 스토킹 처벌법을 적용했더라면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접근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 ‘두 사람이 약속을 잡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상대방 의사에 반해 지속적으로’라는 스토킹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데 그쳤다.

최윤아 기자 [email protected]

※ 성폭력‧디지털성범죄‧가정폭력‧교제폭력‧스토킹 등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여성긴급전화1366(국번없이 ☎️1366)에 전화하면 365일 24시간 상담 및 긴급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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