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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민주주의 이론가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
"소셜미디어, 승자독식 선거제로 정치 양극화 
미국의 트럼프 현상, 한국의 비토크라시 낳아
양 극단 목소리 배제할 선거제도 개편 필요"
신기욱(왼쪽) 스탠퍼드대 교수와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가 지난 19일 경기 이천시 SKMS 연구소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천=신용주 인턴기자


"정치적 양극화라는 점에서 지금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미국과 비슷한 점이 있어요.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내각제 전환, 비례대표 확대, 선호투표제 도입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법관 임기도 지금의 6년에서 10년 이상으로 늘리는 게 좋습니다."

'용산 대통령'과 '여의도 제1당 대표'가 맞부딪히고 있는 한국 정치의 교착 상태에 대해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가 제안한 해법이다. 한국을 포함한 전 지구적 민주주의 후퇴의 원인은 대통령제, 소선거구제, 단순다수결제가 만들어낸 정치적 양극화 때문이라는 진단에 의한 것이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미국민주주의재단’이 펴내는 ‘민주주의저널’의 공동 편집자이자 여러 정부 기관 등에 자문하는 세계적 민주주의 이론가로 꼽힌다. 특히 '2006년부터 전 세계 민주주의가 퇴조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으로 주목받았고, 최근엔 중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샤프 파워(sharp power·정보조작, 경제보복 등을 통한 영향력 행사)가 자유민주주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그런 다이아몬드 교수가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경기 이천시 SKMS연구소에서 열린 한국고등교육재단과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의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라운드 테이블' 회의 참여차 한국을 찾았다. 아태연구소장 신기욱 스탠퍼드대 교수와 '전 세계 민주주의 위기와 미국, 그리고 한국'을 주제로 대담을 했다.

러시아와 중국에 단호하지 못한 서구, 민주주의 퇴조 불렀다



신기욱
= 지난 10년간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가 도전받았다.

래리 다이아몬드
= 2006년 이후 세계는 자유민주주의에 훨씬 더 적대적이 됐다. 글로벌화된 경제와 정보 환경 등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는 건 맞다.

래리 다이아몬드(오른쪽) 스탠퍼드대학교 교수가 지난 19일 경기 이천시 SKMS 연구소에서 열린 대담에서 신기욱 교수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이천=신용주 인턴기자


= 민주주의의 후퇴 요인은 뭔가.

다이아몬드
= 1980년대까지 미국과 여러 나라들이 자유민주주의에 적극적이었다.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미국 단극 체제' 아래서 그런 흐름은 더 강화됐다. 그때엔 민주주의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정치적, 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21세기로 넘어가고 2006년쯤부터 튀르키예, 헝가리, 베네수엘라 등을 시작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민주주의가 아니어도 별 문제가 되지 않고 견제받지 않는다는 걸 알아채기 시작한 것이다. 1980~1990년대 제3의 글로벌 민주화 물결이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다.

= 이런 추세가 제4의 글로벌 민주화 물결로 반전될 가능성도 있나.

다이아몬드
= 변화의 조짐은 있다. 최근 그리스를 시작으로 체코, 폴란드, 튀르키예 등에서 좌파 포퓰리스트 정권이나 권위주의적 정권들이 선거에서 패배했다. 민주세력이 연합해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면 민주주의는 번영할 것이다. 사실 그간 서구 세계는 너무 수동적이었고 러시아와 중국에 단호한 메시지를 보내지 못했다.

바이든과 트럼프, 지금은 49 대 51 ... 27일 첫 토론회가 중요



= 미국 얘기를 해보자. 1930, 1940년대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도전에 맞서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도 위험하고 리더십이 예전같지 않다고들 한다. 왜 그런가.

다이아몬드
= 대통령제, 양당체제, 그리고 당파적 양극화 때문이다. 이제 공화당과 민주당은 서로의 존재 자체를 적대시한다. 우선 소셜미디어가 과도한 불안, 공포, 위협을 퍼트리고 있다. 과반수 지지를 못 받아도 한 표라도 이기면 그만인 승자독식 선거제도 또한 문제 있다. 이런 선거에 가장 적극적인 이들은 이념적으로 치우쳐 있고, 선동적인 호소에 취약한 이들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 공화당은 이런 흐름에 완전히 굴복했다. 마지막으론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 임기를 다 채울지조차 불안한 81세 노인이다. 확실한 리더십이 안 보인다.

조 바이든(왼쪽 사진)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FP 연합뉴스


= 한국에선 민주당에 왜 바이든밖에 없느냐고들 한다.

다이아몬드
= 두려움과 계산착오 때문인 것 같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이긴 유일한 사람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패하면 민주주의가 위협당할 것이란 걱정이 크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전통적인 백인 노동자 계급 출신이다. 그가 아니면 민주당이 분열될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다. 그 때문에 아무도 나서지 못했고 '지금 최선은 바이든'으로 굳어졌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에즈라 클라인 같은 이는 차라리 다른 후보를 뽑으라 했지만, 27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토론회가 열린다. 이젠 어쩔 수 없는 일이 됐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전당대회 전에 선거운동이 시작된 거다.

= 트럼프 전 대통령이 34개의 혐의로 기소된 건 선거에 영향을 줄까.

다이아몬드
= 여론조사를 보면 중범죄 혐의가 유죄로 결론나면 고려하겠다는 응답이 일부 있다. 경합주에서 스윙보터 5%만 흔들어도 선거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더 결집할 수 있어서다. abc방송국이 여러 여론조사와 각종 분석을 종합 정리한 자료를 보면 현재까진 트럼프 51%, 바이든 49%다. 27일 토론은 그래서 중요하다. 바이든은 정신적 능력과 활력을, 트럼프는 절제하고 정책에 밝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파괴적 양극화' 겪는 한국 또한 미국과 비슷하다



= 한국을 보자. 내가 연세대 김호기 교수와 공동 편집한 책 '한국 민주주의 위기'에서 한국 민주주의 후퇴 문제를 비교적 관점에서 쓰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나.

다이아몬드
= 한국의 문제는 미국과 비슷하다. 두 개로 갈라진 정당이나 진영이 ‘파괴적 양극화(pernicious polarization)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냥 정치적 진영이 나뉜 게 아니라 상대를 존재론적 도전이나 도덕적 실패로 간주한다. 국가적 차원의 성공보다 상대의 실패를 바란다.

비토크라시가 이어지자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3일 대통령 거부권 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뉴스1


= 좀 더 구체적으로, 국회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한 야당은 주요 법안을 밀어붙이고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는 '비토크라시'가 진행 중이다. 이 교착 상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다이아몬드
= 지금 미국의 선거제 개혁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데 한국에도 적용가능할 것 같다. 우선 내각제를 도입한다. 대통령은 의례적 역할만 한다. 그다음으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를 5 대 5 비율로 맞춘다. 어렵다면 지금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이니까 비례대표만 100석 늘려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147석으로 만들어도 된다. 마지막으론 선호투표제 도입이다.

내각제와 선호투표제의 결합, 진지하게 고민해야



= 선호투표제를 설명한다면.

다이아몬드
= 호주 등 일부에서 시행하고 있다. 투표 때 한 후보만 찍는 게 아니라 여러 후보들 중 1, 2, 3 순위 선호도를 적는다. 과반 후보가 나오면 당선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선호도가 가장 낮은 후보를 탈락시키고 그 후보의 표를 다음 선호도 후보들에게 배분한다. 과반 득표 후보가 나올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 제도는 두 가지 점에서 좋다. 첫째, 당선되려면 전반적 선호도를 높여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극단적 주장이 줄어든다. 둘째, 당선 가능성이 낮은 소수 정당이라 해도, 가령 전국 투표의 5%만 얻어도 내각제에서는 잠재적 연정 파트너다. 정치적 양극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 나도 내각제 주장을 했지만 대다수의 한국인은 여전히 망설인다.

다이아몬드
= 대안을 잘 몰라서 그렇다. 지금처럼 여소야대에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는 윤석열 정부라면, 차라리 내각제여서 해산하고 선거를 치르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제는 거의 없다. 미국은 연방제여서 모델이 될 수 없다. 한국 국민도 정치 현실을 직시하고 대안을 고민하면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난 20일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법정에 도열해있다.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국 대법관 임기 6년이 지나치게 짧다고 평가했다. 뉴시스


= 또 하나, 대법관 임기를 6년에서 10, 12년 정도로 늘리자고 제안했다.

다이아몬드
= 대법관의 정치적 독립은 아주 중요하지만, 누군가로부터 임명받는다는 점에서 쉽지 않다. 대법관 임기는 장기적 관점을 가질 정도로 길되, 사회적 현실에서 분리되지 않을 정도로 짧아야 한다. 미국 대법관은 임기가 종신이라 20~30년씩 근무해 너무 긴 반면 한국의 6년은 너무 짧다. 한국 대법관은 14명이니까 매년 새 대법관을 1명씩 지명하는 건 어떤가. 개별 대법관 임기 14년은 충분히 길고, 1년에 1명씩 바뀌니까 대법원은 매년 갱신된다. 미국 대법관은 9명이니까 18년 임기에 2년에 1명씩 지명하는 게 어떨까 싶다.

전 세계 민주주의 회복? 여전히 불확실하다



= 올해 전 세계에 선거가 많다. 전 지구적 민주주의는 수렁에 빠질까, 회복할까.

다이아몬드
= 핵심 키워드는 '불확실성'이다. 11월에 트럼프가 패배하면 바닥을 치고 올라온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프랑스 조기 총선에서 마린 르펜이 이기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이익을 얻는다면, 그리고 인도에서 권위주의적인 추세가 이어지고 중국이 대만을 향해 군사적 행동을 한다면, 최악의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신기욱(왼쪽) 스탠퍼드대 교수가 19일 경기 이천시 SKMS 연구소에서 열린 대담에서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에게 세계 민주주의의 전망에 대해 묻고 있다. 이천=신용주 인턴기자


= 민주주의가 회복할 것이라 본 프랜시스 후쿠야마보다 비관적이다.

다이아몬드
= 물론 그의 말이 맞았으면 좋겠다. 나도 비관주의자가 되긴 싫다. 내가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지만,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지성의 비관, 의지의 낙관'이란 말을 좋아한다. 지적으론 낙관할 근거가 없다 해도 의지적으로 낙관하면, 우리가 하려는 일이 좀 더 좋아질 수 있다. 이 기사를 읽을 분들을 위해 농구에 비유하자면, 전 세계 민주주의는 지금 '점프 볼' 상황이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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