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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의무 법 어기고, 형식적인 경우 많아
"이런 환경 개선 안 되면 참사 반복될 것"
25일 경기 화성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일용직 노동자한테 안전 교육이요? 해주면 고맙고 안 해줘도 어쩔 수 없는 거죠, 뭐."

몇 년 전 중국에서 귀화했다는 이모(46)씨는 31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 사건 소식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해 경기 한 공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했을 때 한 번도 안전 교육을 못 받았다. 그전에 약 2년 근무했던 공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행법에 따르면 사업장은 일용근로자 및 근로계약 기간이 일주일 이하인 기간제 근로자에게 채용 시 0.5~1시간의 안전 보건 교육을 해야 하는데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이씨는 "지금 생각하면 불났을 때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도 몰랐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리셀 공장 화재가 단일 사고로는 가장 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사망한 참사로 기록되면서, 이들에 대한 안전 교육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언어 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특히 일용직이라는 이유로 안전 교육에 소홀해 피해를 키운 것 아니냐는 것이다.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화성 참사가 남의 일 같지 않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외국인 사고사망자 10%



25일 고용노동부 '2023년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사고사망자는 85명으로 전체(812명)의 10.5%를 차지했다. 전체 사고사망자는 전년(874명) 대비 62명 줄었지만, 외국인은 전년과 동일한 규모(85명)로 유지됐다. 외국인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근무 환경에 놓여 있다는 얘기다.

소홀한 안전 교육이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여러 언어를 활용해 안전 교육을 하기엔 업체 실정이 마땅찮거나 며칠만 일하고 떠날 일용직이라는 이유로 화재 및 산업안전 교육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다. 이주민 지원 시민단체인 이주공동행동의 정영섭 집행위원은 "외국인에게 산업안전 관련 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건 오랜 문제"라며 "모국어 진행 등 현장 맞춤형 교육 필요성이 계속 제기돼 왔다"고 답답해했다. 실제 안전 교육 미비로 외국인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일은 매년 반복된다. 2022년 7월 경남 양산 금속 부품 제조 공장에서 기계 내부를 청소하다 머리가 끼여 사망한 네팔 노동자 A씨 관련 사건에서 재판부는 업체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며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충분한 교육을 하지 않아 안전 문제를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사고 이틀 전 불났는데도 교육 없어"



교육을 하더라도 실효성이 없는 경우도 적잖다. 외국인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데도 한국어로만 일방적 교육을 한다든가, 온라인 프로그램을 제작해놓고 수강은 자율에 맡기는 식이다. 외국인 노동자 피해 사건을 다수 맡아 온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건설 현장에 나가 보면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있는데, 그 나라 언어에 맞춰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25일 전날 화재가 난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이 그을려 있다. 최주연 기자


아리셀 공장 외국인 노동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 국적 사망자 A씨 유족은 "아내가 사고 이틀 전(22일) 배터리에 불이 났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대피 교육을 받았다는 말을 못 들어봤다"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도 이날 입장문을 통해 "아리셀은 50인 이상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이면 선임하도록 돼 있는 안전관리자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비판했다. 박순관 아리셀 대표가 이날 화재 현장을 찾아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안전 교육은 정기적으로 충분히 이뤄졌다"고 항변했지만 형식 맞추기에만 급급했던 건 아닌지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외국인 노동자를 둘러싼 교육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대형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노동분야 전문가인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위험성 높은 일자리에서 주로 근무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정교하고 실효성 있는 안전 교육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외국인 노동자에게 취약한 조건들을 들여다보고 안전 관리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며 "일하는 공간이 죽음의 공간으로 바뀌어선 절대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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