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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틴이 없는데 이걸 왜 피울까?'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 중인 '무니코틴' 전자담배 액상 광고를 보고 든 생각입니다. 업체들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금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흡연 욕구저하제품'이나 '흡연습관 개선 제품'이 아닌데 말이죠. 참고로 흡연습관개선보조제(의약외품)로 식약처 허가를 받은 무니코틴 제품은 국내에 1개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제품은 담배를 끊을 생각이 없는 사람을 위한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니코틴이 없는데 무슨 효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일반적인 전자담배 용액은 니코틴과 프로필렌글리콜(PG), 베지터블 글리세린(VG), 액상향료를 배합해 만듭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니코틴입니다. 우리 뇌에 작용해서 도파민 호르몬을 분비시켜 기분을 좋게 만듭니다. 특히, 담배를 피우는 느낌 이른바 '타격감'을 주는 역할을 하는데, 바로 여기에 중독되는 겁니다.

타격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흡연자가 굳이 이 제품을 선택하진 않을 텐데요. 그런데 무니코틴 액상 전자담배 후기에는 "맛이 좋다", "가성비가 좋다"는 글이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한 업체는 이런 비결(?)로 '신규 물질'을 꼽았습니다. 해당 업체는 "신규 물질을 추가해 담배와 비슷한 느낌을 낸다"면서도 안전한 제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과연 무얼까요?

무니코틴 전자담배 용액 성분 검사 결과
■ 무니코틴 제품서 '유사 니코틴' 검출…"니코틴 아닌데 니코틴 같은 효과"

취재 결과, 이 신규 물질의 정체는 '유사 니코틴'이었습니다. 정확히는 '메틸 니코틴' 성분인데요.

전문가에게 성분 분석을 맡긴 3개 회사 6개 제품 모두에서 메틸 니코틴이 0.05~0.26% 농도로 검출됐습니다. 최근 논란이 된 합성 니코틴 제품도 함께 분석을 맡겼는데, 여기에선 일반 니코틴이 0.99% 농도로 검출됐습니다. 물론 담배라는 식물에서 추출하지 않았을 뿐 합성 니코틴도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니코틴입니다.

다시 메틸 니코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메타틴이나 피리딘으로도 불리는 메틸 니코틴은 니코틴과 화학 구조가 유사합니다. 니코틴에 메틸기(-CH3)이 결합된 변형체인데요. 니코틴보다 더 적은 농도로도 비슷한 효과를 내는 거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호상 국제특성분석연구소 고문은 "중추신경 흥분 효과나 중독성을 실험해서 니코틴과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을 골라낸 게 바로 메틸 니코틴"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는 "무니코틴이 아니라 유사 니코틴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하루에도 몇 통씩 '유사 니코틴' 영업 메일이 온다"면서 "유사 니코틴 용액 판매 업자들이 샘플을 들고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메일이든 현장 영업이든 업자들은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는데, 핵심은 각종 규제와 세금에서 자유롭다는 점입니다. 비슷한 성질에 비슷한 구조이긴 해도 엄밀한 의미에서 '니코틴'이 아니기 때문인데요.

업계 관계자는 "최근 합성 니코틴 액상전자담배 규제 논의가 시작되자 '유사 니코틴'이 새로운 규제 사각지대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무니코틴도 의약외품이라더니"…액상전자담배 업주 '혼란'

전자담배 업계에선 이런 일을 미리 막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 2016년 식약처는 흡연습관개선보조제의약외품으로 지정할 당시 '무니코틴' 용액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식약처가 전자담배협회에 보낸 공문을 보면 "제품 포장에 기재된 문구와 관계없이 니코틴이 함유되어 있지 않고 전자담배기기와 같은 전자장치에 그 자체를 충전하여 전자담배와 유사한 형태로 사용(흡입)할 수 있는 제품은 의약외품(흡연습관개선보조제)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이 공문에 대해 "식약처가 가습기 살균제 파동 이후 에어로졸 형태로 흡입할 수 있는 액상전자담배에 대해서도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니코틴은 담배로, 무니코틴은 의약외품으로 지정해 관리한다고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2016년 식약처가 전자담배협회에 보낸 공문
그런데 지난해 유사 니코틴을 공급받은 일부 업체들이 식약처에 다시 문의하자 "해당 물품의 성분, 함량, 형상, 명칭, 표시된 사용 목적, 판매할 때의 선전 또는 설명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판단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 같은 답변을 무니코틴 액상 판매 업계에서는 식약처가 기존 입장에서 한 걸음 물러난 것으로 받아들인 겁니다. 판매업체들은 곧 의약외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지하고 온라인에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한 액상전자담배 판매 업주는 "무니코틴이 문제없이 팔리고 있는 걸 보다 보니 우리도 따라 가야 하나 고민이 든다"면서 "식약처가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답변하지 말고, 명확히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당시에는 무니코틴 액상을 흡연습관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광고하는 제품들이 많았기 때문에 담배의 부품으로 판단한 것"이라면서 "식약처의 입장이 바뀐 것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또, "무니코틴 용액에서 '유사 니코틴'이 검출됐다면 담배의 구성품으로 볼 수도 있는데, 이런 제품을 의약외품으로 관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렇다고 보건복지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아직 합성 니코틴도 담배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상황에 '유사 니코틴'까지 논의하기는 이르다"면서 "필요하다면 식약처가 유해성 평가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액상전자담배 판매 업주는 "'유사 니코틴' 판매자들은 보건 당국 어느 쪽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런 상황을 반기고 있을 것"이라면서 "업주들이 한탕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정부가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담배 시장은 끊임없이 세금과 규제를 피하는 방법을 찾아 왔습니다.

담뱃잎에서 추출한 천연 니코틴에 부과하는 세금을 피해서 담배의 줄기와 뿌리를 이용한 니코틴이 등장했고, 여기에도 세금이 붙자 화학물질 합성을 통한 '합성 니코틴'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다 합성 니코틴에 대한 규제 논의가 시작되자, 새롭게 떠오른 게 바로 무니코틴 즉 '유사 니코틴'입니다.

천연 니코틴의 유해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합성 니코틴의 경우 국내에선 아직 유해성 평가가 없지만, 미국은 2022년부터 규제하고 있습니다. 유사 니코틴에 대해서도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자료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중국 업체를 중심으로 유사 니코틴이 개발되고 있고, 이를 식품 첨가물(가향물질) 형태로 수입해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면서 "니코틴과 아주 흡사한 성분이라면 기본적으로 니코틴이 우리 몸에 일으키는 여러 가지 문제를 동일하게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센터장은 "미국에서 메타틴 성분 전자담배를 판매하는 업체는 이런 위험성을 홈페이지에 고지하고 있다"면서 "유사 니코틴 성분이 어떤 일로 어떤 상황으로 변화를 일으킬지는 예측이 전혀 안 되기 때문에 보건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위험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면 인과관계가 불확실하더라도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사전 예방주의 원칙'을 보건당국이 곱씹어 봤으면 합니다.

[연관기사]
①담배 아니다? 법 개정은 ‘하세월’…금연정책까지 ‘흔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67548
②[취재후] "이것은 담배가 아니다"…'뛰는' 규제에 '나는' 신종 담배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68983
③[단독]판매 폭증 ‘무니코틴’ 전자담배…‘유사 니코틴’ 검출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93813
④규제 사각 ‘무니코틴’…‘유사 니코틴’ 검출에도 대응 엇박자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9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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