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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런던 한 경매장에 전시된 에르메스 버킨백25의 모습. AP연합뉴스


세계적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유명 가방 ‘버킨백’ 소비 현상과 관련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친 경제학(crazy economics)’이란 표현을 썼다. 구매하자마자 ‘리셀’(되팔기) 시장에 내놔도 정가의 2배 넘는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양상이 나타난다는 분석이다. 제품 구매를 위해 기다리지 않을 법한 부유층도 버킨백을 위해선 오래 대기하고, 매장 종업원에게 굽신거리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에르메스 매장에서 1만1400달러(약 1580만원)에 팔리는 검은색 기본형 버킨백25를 구매한 사람은 매장을 나가자마자 2만3000불(약 3190만원)에 리셀 업체에 판매할 수 있다고 WSJ는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일부 리셀 업체는 같은 가방을 최대 3만2000달러(약 4440만원)를 받고 판다. WSJ에 따르면 해당 가방의 원가는 1000달러(약 140만원) 수준이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은 뭘까. 유명 연예인 킴 카다시안이나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리가 버킨백을 든 사진이 화제가 되듯 버킨백은 ‘부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작고한 여배우 제인 버킨이 비행 도중 스케치를 통해 가방 디자인 탄생에 기여했다는 독특한 스토리도 버킨백에 매력을 더하는 요소다. 이 가운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몇 년 동안 낮은 금리가 유지되면서 버킨백이 일종의 대체 자산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게 WSJ의 1차 분석이다. 일명 ‘히말라야 버킨백’ 등 희소 모델은 경매에서 10만 달러를 거뜬히 넘어섰다.

WSJ는 이에 더해 버킨백을 파는 에르메스 매장의 독특한 판매 방식을 지적한다. WSJ에 따르면 에르메스에선 판매 직원이 구매 대기를 건 잠재 고객 명단을 관리하다가, ‘구매 자격’을 갖췄다고 판단되는 고객을 선별해 매니저의 승인을 받는다. 이렇게 선별된 고객도 한 해에 단 두 개의 버킨백만 구매할 수 있다.

이처럼 사실상 ‘구매 제한’을 실시한 결과 버킨백을 둘러싼 판매·구매 관계는 독특한 형태를 띠게 됐다. 고객은 일단 막대한 구매 이력을 쌓아야 한다. 일정 수준 이상 소비를 해야 직원이 구매 명단에 넣어준다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일부 고객은 직원에게 ‘매장을 더 자주 방문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WSJ는 버킨백을 원하는 고객이 실크 스카프, 시계, 신발 같은 다른 상품에 먼저 쓰게 되는 돈은 1만 달러 이상이라고 전했다. 히말라야 버킨처럼 희귀한 가방을 얻으려면 20만 달러 이상을 지불할 수도 있다고 한다. 에르메스가 명시적으로 이 용어를 쓰거나 설명한 적은 없지만, WSJ에 따르면 버킨백 컬렉터들 사이에서는 ‘사전소비(prespend)’ 또는 ‘지출 비율(spend ratio)’이란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고객이 오히려 직원에게 깍듯하고 밝게 인사하고, 아무리 부유한 고객이라도 에르메스 매장에서는 긴 대기 시간을 감내하는 것도 특이한 풍경이다. WSJ는 “에르메스 부티크에서 굽실거리는 사람은 바로 구매자”라며 세계에서 손꼽는 갑부가 직원과 친해지려 집에서 직접 구운 쿠키를 갖다주거나, 버킨백을 손에 얻고자 값비싼 비욘세 콘서트 티켓 등을 직원에게 건네는 사례를 전했다.

몇몇 수집가는 에르메스 직원이 일부 ‘큰 손’은 2개 이상 가방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아닌지 의심한다고 WSJ는 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소비자 2명은 에르메스의 이런 판매 방식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한 ‘끼워팔기’에 해당한다며 지난 3월 독점금지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지만, 에르메스는 다른 상품 구매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법원에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WSJ는 이처럼 험난한 구매 여정을 고려할 때 소매가의 2배에 달하는 버킨백 리셀 가격이 꼭 비합리적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정식 판매장에서 버킨백 하나를 구매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까지 들어가는 비용을 고려하면 오히려 손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부 구매자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색상을 구매하기 위해 리셀 마켓을 이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WSJ는 “핸드백에 거액을 지출하는 한 가지 이유는 버킨백이 좋은 투자(처)라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재판매 이익은 (구매) 자격을 얻기 위해 다른 상품에 지출하는 수천 달러를 고려하면 낮아진다”고 분석했다. 이어 에르메스 주식이 2010년 이후 20배 이상 올랐다며 “(해당) 주식이 버킨백보다 훨씬 현명한 투자였다”고 했다. WSJ는 “사람들이 버킨백을 대하는 방식은 일종의 코드로 변했다”고 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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