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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5천 마리를 키우는 축협 돈사에서 분뇨가 샜다, 혹은 몰래 버렸다"는 의혹을 경찰이 수사했습니다. 6개월을 끌다 최근 결론을 내렸는데, 증거가 없다며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그런데 의혹을 풀 주요 증거가 수사 도중 철거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증거가 사라지고 현장이 훼손될 때 경찰은 뭘 했을까요?
지난해 9월, 전북 진안군 한 마을 도랑으로 흘러든 잿빛 오염수

■ 비 온 다음 날 잿빛 물 '콸콸'…"돼지 분뇨 아냐?"

마을 개울로 잿빛 물이 쏟아집니다. 지난해 9월, 전북 진안군 마령면에 있는 농촌 마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주민들은 당장 가축 분뇨로 의심했습니다. 탁한 물이 쏟아졌던 곳 바로 옆에서 축협이 돼지 5천 마리를 키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 색깔이 그랬고, 냄새도 아주 지독했습니다.

의심만으론 안 될 일이니 정확한 분석이 필요했습니다. 진안군은 물을 떠 전북 보건환경연구원에 맡겼고, 곧바로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염수를 채수해 분석하니, 동물 배설물이 부패하며 나오는 암모니아성 질소가 검출됐습니다.

수질을 따질 때 가장 흔하게 쓰는 지표, 생물화학적 산소 요구량(BOD)이 무려 357.8ppm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천 수질 기준은 1급부터 6급까지 있는데, 매우 나쁘다는 6급수 기준이 10ppm입니다. 그러니까 '매우 나쁨'을 기준치 삼아도 350배 초과한 겁니다. 물속 부유물질 양(SS)도 630ppm에 달했습니다. 이 정도면 물 반, 찌꺼기 반인 셈입니다.

무엇보다 암모니아성 질소(NH₃-N)가 98.322ppm 다량 검출됐습니다. 암모니아성 질소는 동물의 사체나 배설물이 질소 화합물로 부패하며 생기는데, 천연 하천수에선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축산폐수가 방류됐는지 가늠할 때 이 지표가 쓰입니다.

수질검사 성적서를 받아본 진안군은 암모니아성 질소를 확인하고 분뇨가 샌 게 맞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축협을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분뇨 저장탱크가 사라지기 전과 철거한 뒤 모습 비교

■ 사라진 증거…6개월 끌다가 '증거불충분' 종결

오염된 물이 발견된 곳은 축협 돈사 울타리와 맞닿은 곳입니다. 그리고 울타리 너머엔 가축 분뇨 저장 탱크들이 줄이어 서 있습니다. 탱크가 낡아서 샜는지, 오작동 탓이었는지, 아니면 작정하고 방류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주민들은 처음부터 이 탱크들을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집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이 분뇨 저장 탱크들이 사라진 겁니다. 경찰이 진안군으로부터 고발장을 접수한 건 지난해 10월 11일, 축협은 고발된 지 열흘 만에 탱크 3개를 철거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런 과정을 멀뚱히 지켜만 보고 그대로 내버려 뒀습니다. 매우 주요한 증거가 훼손되는 걸 묵인한 셈입니다. 이후로도 분뇨 저장탱크를 없앤 축협에 책임을 묻는 일은 없었습니다. 경찰은 그렇게 6개월을 끌다 '증거불충분'을 들어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분뇨 탱크들을 왜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경찰은 "진안군이 처음 낸 고발장에 탱크들을 조사해달라는 말이 없었다"는 취지로 다소 엉뚱한 해명을 내놨습니다.

경찰 수사결과 통지서, 수사 6개월 만에 ‘증거불충분’ 이유로 혐의 없음 종결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반발하며 주민들은 삭발식을 벌였습니다.

■"오래전부터 빈 탱크"…"의혹 풀 길 없어"

축협은 일단 돼지 분뇨가 샌 일도, 몰래 버린 일도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또 문제가 된 가축분뇨 저장탱크는 오래전부터 비어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탱크를 철거한 건, 주민들이 원하는 냄새 저감을 위해 분뇨 저장 시설을 땅에 묻는 공사를 했을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시기가 공교롭지만, 이미 오래전 일정이 잡힌 작업이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축협 말대로라면 애먼 분뇨 저장탱크들이 의심받는 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증거들은 이미 모두 사라졌고, 주민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탱크 안에 뭐가 들어있었는지, 정말 오래도록 쓰지 않은 시설이었는지 알 길이 없어진 겁니다. 명명백백한 수사로 의혹 한 점 남기지 않았다면, 어쩌면 지금 이 갈등은 주민들이 머리칼을 밀고 거리에 나앉을 만큼 가열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주민들은 재수사를 원한다며 검찰에 진정서를 냈고, 고발 주체인 진안군도 경찰의 무혐의 불송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의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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