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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서울신학대학교 교양교육원 소속 박영식 교수가 지난 4월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서울신대 박영식 교수 징계 의결 철회 요구 공동기자회견’에서 입장문을 읽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종교학)

나는 종교가 사람을 멍청하게 한다는 주장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멍청한 사람들이 때때로 종교를 핑계로 멍청한 일을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그런 사람들이 멀쩡한 타인들까지 자기네 수준으로 멍청해지도록 강요하는 것은 심히 모욕적인 일이다. 지난 6월20일,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의 서울신학대학교는 박영식 교수의 해임을 확정했다. 연구 실적이 부족하거나 윤리적인 비위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서울신대는 박 교수가 교단이 지지하는 ‘창조과학’을 인정하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와 같은 중징계를 결정했다.

이 이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조신학, 창조과학, 창조론 등 비슷비슷해 보이는 개념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신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종교 교리가 있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 이른바 아브라함계 종교들에서는 핵심적인 믿음이다. 그러나 ‘창조’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세계가 창조되는 순간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고, 신의 활동이라는 것은 인간의 인식이나 이해 범위를 벗어난 무언가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의 창조라는 신비한 사건을 설명하고 교리화하기 위한 ‘창조신학’이라는 분야가 만들어졌다. 박영식 교수는 바로 이 영역의 전문가로 그의 주저서는 2018년에 초판이 발간된 ‘창조의 신학: 나는 창조의 하나님을 믿습니다’다.

한편 ‘창조과학’의 동조자들은 대단히 기이한 방식으로 창조의 신비에 대한 질문에 답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창조에 있어서 신비하거나 불가해한 것이 없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세계의 모든 진실을 담고 있는 성경에 우주와 생물의 창조에 대한 확실한 사실이 남김없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는 신에 의해 6일 동안 지금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졌고, 이때 모든 동식물도 함께 창조되었기 때문에 한때 인간은 공룡과 공존했다. 오늘날 우리가 공룡을 화석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대홍수가 세상을 휩쓸었기 때문이고, 현존하는 생물들은 노아가 방주에 데리고 간 동물들의 후손들이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시기 또한 성경의 연대 기록을 통해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데, 가장 급진적인 창조과학 신봉자들은 세계의 창조로부터 지금까지 6천년 정도가 지났다고 믿는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이런 믿음은 결코 ‘중세적’인 것이 아니다. 창조과학은 근대 이후 천문학, 지질학, 생물학의 발전이 자신들의 세계관을 위협한다고 믿는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을 중심으로 20세기 초에 시작된 운동이다. 그들은 과학을 지식을 확장하기 위한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수호하고자 하는 교리와 대립하는 ‘신념’으로 이해한다. 자연과학의 여러 영역에 개입하여 성경의 기록이 문자 그대로 사실임을 입증하려고 하지만, 과학적 방법에는 관심이 없다. 따라서 학술이 아닌 대중교육 영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 주된 수단이 된다. 세계 각지의 창조과학 지지자들은 공교육에서 진화생물학만이 아니라 창조과학도 가르쳐야 한다며 법적 투쟁을 벌여 왔으며 놀랍게도 몇몇 지역에서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에도 일부 대학이 창조과학 강좌 개설을 시도하는 일이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사건은 서울신대, 그리고 일부 언론 보도에서 말하는 것 같은 교단의 ‘창조론’과 박 교수의 ‘유신진화론’ 사이의 대립이 아니다. 유신진화론은 진화론을 받아들이되 진화 과정에서 신의 개입을 인정하는 입장을 말하지만,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부터가 창조과학이 설정한 틀이다. 박 교수의 창조신학은 신학과 과학이 서로 다른 영역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자연과학적 지식은 세계와 삶 속에서 신의 섭리를 통찰할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것에 가깝다. 반면 자연과학의 외형만을 흉내 내며 자신들이 승인한 교리 밖의 지식은 믿지 말라는 반지성주의를 퍼뜨리는 창조과학은 그런 진지한 신학적 고민과는 별 관련이 없다.

신에 대한 이해는 인간 지식의 확대와 함께 성장해 왔다. 고대인들에게 6천년 남짓의 시간은 창조세계의 경이를 묘사하기에 충분한 규모였다. 그러나 이제 인간은 인간의 인지능력을 넘어선 무한한 시공간조차 초월하는, ‘있음’과 ‘없음’ 따위의 이분법적 언어의 한계 너머에 있는 신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창조과학의 폐해는 신자들의 지적 발달을 방해하고 공교육 시스템을 교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참람하게도 신을 자신들의 낡고 빈곤한 언어 속에 끼워맞춤으로써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치명적인 신성모독을 저지르고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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