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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의협회관 모습. 연합뉴스
“아직 때는 무르익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병원 하나라도 무너져야 합니다.”

인터넷 카페 ‘의대생 학부모 모임’엔 지난 20일 이 같은 글이 올라왔다. 의대생 학부모로 추정되는 글쓴이는 “아이들이 버리는 시간이 아깝나. 손해 본 시간을 보상 못 받고 평생을 의료노예로 살겠다고 숙이고 돌아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여기엔 “칼을 뽑았으니 버티자” “노예 짓 하라고 등 떠미는 일은 부모로서 할 일이 아니다” 등과 같은 댓글이 이어졌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넉 달째 이어지는 가운데 장외 여론전도 뜨겁게 펼쳐지고 있다. 의대생 학부모가 주축인 ‘의대생 학부모 모임’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18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주최한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에도 참가했다. 집회 현장에서 이들은 ‘의학모’라는 문구가 적힌 파란색 모자를 쓰고 “의료농단 교육농단 필수의료 붕괴한다”고 외쳤다. 의학모 운영자는 지난 20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의협은 사태 해결에 대표성을 가지고 앞장서는 단체”라며 “일정 부분 동지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의학모 카페는 정부가 ‘5년간 2000명 증원’을 발표한 지난 2월 개설됐다. 의대생 학부모인 운영자 A씨는 정부 발표 직후 카페를 만들었다. A씨는 “정부의 막무가내식 추진으로 허탈하고 황망한 마음에 ‘기록이라도 남기자’는 생각으로 카페를 만들었다”라며 “차츰 (카페가) 알려지면서 같은 심정의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됐다”고 말했다. 의학모에선 의대 학생증 또는 의사 면허증 인증을 거쳐야 정회원이 되는데, 현재 정회원은 1200여명 정도라고 한다. A씨는 “회원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일반 시민 중 한 사람”이라며 “열심히 일해서 자녀 뒷바라지하고, (이들이) 커서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 어머니·아버지”라고 설명했다.

의학모에선 의정갈등과 관련한 언론 기사나 정부의 필수의료정책패키지 등 의료정책 자료가 주로 올라온다. 최근엔 이국종 대전 국군병원장이 지난 19일 “의대생을 늘린다고 소아청소년과를 하겠냐”고 말한 기사가 화제였다. 의학모에선 “(기사에) 댓글 달러 가자”는 반응이 나왔다.

A씨는 “평생 알 필요가 없던 의료시스템을 이해하는 글이 소개되고 (회원간) 의견이 나누어지고 있다”라며 “처음엔 자녀들 걱정을 했다면 지금은 나라 걱정을 하게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대 증원이 필요하면 해야 하지만 납득할 합리적인 근거와 절차적인 정당성 문제에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라며 “실상을 알게 될수록 의료시스템이 갖는 구조적인 문제, 인권 문제, 공정 문제까지 관심이 간다”고 덧붙였다.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열린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은 의료계에 더 적극적인 투쟁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의 전면 휴진 결정 당시 A씨는 ‘서울대 의대 비대위에 고함’이라는 글을 통해 “오늘의 환자 100명도 소중하지만, 앞으로의 환자는 1000배 이상으로 (중요하다), 당장의 환자 불편에도 지금은 행동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서울의대 교수들은 자처하진 않았지만 한국 의료의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을 제시하는 분들”이라며 “다 큰 성인 자녀를 대변할 수도 없고 의료 정책을 논할 전문가 입장도 아닌 학부모들이 하소연할 수 있는 사람은 교수다. 학부모에게 귀를 내어줄 유일한 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의대 교수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학부모가 펼치는 장외 여론전을 놓고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A씨는 “우리는 부모기도 하지만 시민”이라며 “나섰다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수준이다. 최소한의 목소리를 냈을 뿐이고 이마저 하지 않으면 부모로서, 시민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부모들이) 의대 증원만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라며 “정책 입안·실행 과정에서 강압과 비민주성을 개선해달라는 요구다. 이는 궁극적으로 의료 시스템의 올바른 정착을 희망하는 시민의 작은 목소리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또 “성인인 의대생이나 전공의들을 부모가 대변할 순 없다”라면서도 “학부모들은 묵묵히 젊은이들을 지켜보고 지지하고 있다. 정부, 국회, 교수들과 지혜를 모아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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