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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출판 현장에서 물러나는 삼인 홍승권 부대표

삼인 출판사 퇴직을 앞둔 홍승권 부대표가 18일 한겨레와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시원섭섭’ 중에서는 ‘시원’ 쪽에 더 방점을 찍고 싶네요.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재미있게 잘 …다 갑니다.”

도서출판 삼인의 홍승권 부대표(63)가 이달 말 퇴직을 앞두고 밝힌 소감이다. 1996년 9월에 출판사를 설립해 대표를 맡았다가 1998년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대표직을 다른 이에게 넘기고 자신은 부대표 직함으로 출판사를 이끌어 온 그가 27년 10개월 만에 출판 현장에서 물러나기로 한 것. 퇴직 뒤에는 충북 괴산에 내려가 농사꾼으로 제2의 인생을 꾸릴 계획인 그를 지난 18일 서울 마포의 한 카페에서 만나 소회와 계획을 들었다.

“고교 시절이던 1970년대 말 한국브리태니커에 다니던 누나가 가져다준 ‘뿌리깊은 나무’를 읽고 감명을 받아 그 잡지의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대학 졸업 뒤 보험회사에 취직해 2년 가까이 일하다가 그만두고 현암사의 영업자로 들어갔습니다. 활자 매체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 거죠. 1년 몇 개월 만에 현암사에서 나와 창고업을 하시던 부친의 일을 돕다가 은행 대출을 받아 삼인출판사를 창립했습니다.”

그가 현암사 동료였던 이홍용 현 샨티출판사 공동대표와 함께 창업한 삼인에서 낸 첫 책이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 등이 공저한 ‘레드 콤플렉스’였다.

“대학 시절 리영희 선생님이 잡지 ‘말’과 한 인터뷰에서 레드 콤플렉스라는 말을 접하고 크게 공감했습니다. 이 책은 저희가 왜 출판을 시작했는지를 선포하는 것 같은 책이었죠. 사회과학적 주제를 대중이 쉽게 접하도록 하겠다는 게 저희 생각이었어요. 다행히 첫 책이 언론에서도 크게 다뤄지고 제법 반향이 있었죠.”

출발이 좋은 편이었지만 출발 시점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사태가 몰아닥치고 도매상 부도 피해까지 입게 되면서 개인 출판사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그 와중에 소설가 조세희 선생 등이 창간한 잡지 ‘당대비평’까지 인수하게 되어 추가 자금이 필요해지자 출자와 대여로 큰 힘을 보탠 신길순 대주주가 대표를 맡고 홍 대표 자신은 부대표 자리로 내려갔다. ‘당대비평’은 통권 5호(1998년 겨울호)부터 20호(2002년 가을호)까지 삼인에서 발행하다가 21호부터 다른 출판사로 발행처를 옮겼다. 2000년대 초에는 자회사로 샨티출판사를 출범했다가 1년여 뒤에 독립시키기도 했다.

1996년부터 28년 출판 생활 접고
충북 괴산서 농사꾼으로 ‘제2인생’
삼인은 색깔 유지 조건으로 넘기기로
강준만 공저 ‘레드 콤플렉스’가 첫 책
9만질 나간 ‘김대중 자서전’ 효자상품
최다 출간 필자, 20권 낸 이현주 목사


“김종철 선생님 덕에 농사꾼 될 결심
아쉬움 없지 않지만 잘 놀다 갑니다”


첫 책 ‘레드 콤플렉스’부터 최근에 나온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이송희일)까지 홍 부대표가 삼인에서 낸 단행본은 모두 400여권에 이른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책은 ‘김대중 자서전’(전2권, 2010)으로, 양장본만 9만질 가까이 나갔고 지금도 삼인 매출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효자 상품이다. 삼인에서 가장 많은 책을 낸 이는 이현주 목사로 번역서를 포함해 20권 가까이에 이른다. 김진호 목사와 중문학자 김근 교수 역시 삼인의 주요 저자들이다. ‘당대비평’과의 인연으로 내게 된 ‘반세기의 신화’(리영희), ‘정치와 삶의 세계’(김우창),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김종철), ‘우리 안의 파시즘’(임지현 등) 등도 홍 부대표의 기억에 남는 책들이다. 이희수 교수 등이 집필한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와 그 후속작인 ‘더 넓은 세계사’ 역시 보람을 느낀 작업이었다. ‘거대한 체스판’(즈비그뉴 브레진스키)과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조지 레이코프) 같은 번역서들도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8일 한겨레와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는 홍승권 삼인 부대표. 최재봉 선임기자

이 많은 저자와 책들 중에서도 홍 부대표 자신에게 가장 의미가 크기로는 이현주 목사와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을 꼽을 수 있다.

“마흔 살 무렵 죽음이라는 화두가 갑자기 튀어올라와 제가 거의 공황 상태에까지 이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성공회대에서 강의하던 이현주 목사님을 찾아가 세 시간 정도 교정을 걸으며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게 큰 위안이 되었어요. 그 인연으로 첫 책 ‘길에서 주운 생각들’을 필두로 목사님의 저서와 번역서를 잇따라 내게 되었죠. 김종철 선생님의 책을 낸 건 저의 자부심이자 기쁨이었습니다. 소농과 식량 자립을 강조하신 선생님의 말씀 덕분에 제가 농사꾼으로 살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2011년에 괴산에 집을 마련해 식구들과 함께 내려가서는 농사일과 출판을 겸하게 되었고, 4~5년 전쯤부터는 출판업 은퇴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출판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매각을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경영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지만, 그 뒤로는 ‘내가 언제까지 서울에서 이러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어요. 무엇보다, 예전에 비해 출판에 대한 열정이 식어 가는데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는 게 마음에 걸리더군요.”

다행히 출판 경력 20년 정도 된 이를 소개받아 3억원 남짓한 채무를 떠안는 조건으로 출판사를 넘기기로 했다.

“처음 출판사를 시작할 때는 내부에서 성장한 후임자에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상태로 출판사를 물려줄 생각이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후임자가 마케팅과 기획 능력이 탁월한 이여서 지금 삼인의 색깔을 유지하는 가운데 매출도 크게 늘리겠다고 해 마음이 놓입니다.”

퇴직 이후 그는 괴산에서 기존의 밭농사에 더해 논농사 역시 짓는 한편,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대형버스와 포클레인, 지게차, 드론 등의 자격증을 딸 계획이다. “스쿨버스 운전을 하게 된다면 가장 좋겠지만, 아마도 현실성이 있는 건 공장 지게차 기사일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무엇보다 김종철 선생의 뜻을 받들어 소농으로 자급자족 하겠다는 포부를 챙기고 있다.

“농업은 의식주의 한 축을 담당할 만큼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힘들고 돈이 안 되는 일이지만, 나 같은 사람이라도 소농으로 자급자족하기 위해 애를 쓰다 보면 같은 생각을 지닌 이들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요? 제가 사는 괴산에도 귀농·귀촌 인구가 계속 늘고 있어요. 비록 큰돈을 벌지는 못해도 소농으로 사는 길은 어디에서든 가능합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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