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최고야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자원연구센터장

최고야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자원연구센터장


‘연패’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이 있다. 경기에서 연달아 우승한다는 연패(連霸)와 경기에서 계속 진다는 연패(連敗)로, 의미가 정반대다. 한글로만 쓰면 어느 것을 가리키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한약재에도 있다.

‘황금’이라는 이름의 두 가지 한약재가 있다. 하나는 귀금속인 황금(黃金) 즉 순금이고, 하나는 꿀풀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인 황금(黃芩)의 뿌리이다.

순금을 한약재로 쓴다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으나 우황청심원이나 공진단을 감싸고 있는 금박이 바로 순금이다. 오늘날은 캡슐, 코팅, 멸균 포장 등 다양한 제형 보존 방법이 있지만 과거에는 값비싼 환약을 변질하지 않게 보존하기가 어려웠기에, 가장 반응성이 낮으면서도 인체에 무해한 원소인 금박을 입혀서 약성이 손실되지 않도록 했던 것이다.

옛 의서에는 금이 정신을 안정시키고 경련을 멈추는 효과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체내에서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으므로 플라시보 이외의 활성은 없다. 다만 최근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금 나노입자는 염증 억제, 항산화 작용, 항암 효과 등 다양한 활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 꿀풀과 식물인 황금(黃芩)은 우리말 이름으로는 ‘속썩은풀’이다. 이 식물은 자란 지 2~3년이 지나면 뿌리 속 부분이 죽어서 흑갈색으로 부스러지기에, ‘속썩은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속썩은풀’ 뿌리에는 바이칼레인 등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많이 들어있어 소염·진통, 항산화, 항균, 항바이러스, 신경 보호, 동맥경화 억제 등 다양한 효과를 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약 중에서 아스피린 역할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례로는 ‘진피’가 있다. 진피(秦皮)는 물푸레나무의 수피를 가리키고, 진피(陳皮)는 귤껍질을 말한다. 물푸레나무는 수피를 물에 담갔을 때 물이 푸른색이 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소염 작용이 있어 대장염, 결막염, 방광염, 기관지염 등의 치료에 쓰인다.

한편 귤껍질은 본래 귤피라고 했으나 오래 묵을수록 약성이 좋아진다는 전통적 경험에 따라 ‘묵을 진(陳)’ 자를 써서 진피라 부르게 됐다.

귤피의 주성분인 헤스페리딘도 항산화 활성이 좋은 플라보노이드인데, 약간의 변환 공정을 거치면 요즘 치질 증상 개선에 많이 쓰이는 디오스민이 된다. 물푸레나무 수피와 귤 껍질 모두 한국 의약품 공정서에 ‘진피’라는 이름으로 등재돼 있어 혼동을 주므로 한약재 유통 현장에서는 물푸레나무 수피를 흔히 ‘목진피’라고 부른다.

진짜 약재와 가짜 약재의 이름이 같아서 혼란을 일으키는 사례도 있다. 농양이나 림프선염 등의 치료에 쓰이는 ‘산자고’라는 한약재는 난초과 식물인 약난초의 지하부가 정품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백합과에 속한 산자고라는 이름의 식물이 있어 헷갈리기 십상이다. 백합과 식물 산자고는 비록 이름은 산자고이지만, 한약재 산자고로 사용하면 가짜 산자고가 된다.

한의학계에서는 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해 식물 이름은 한글이나 라틴어 학명으로, 한약재 이름은 한자로 표기하는 관습이 오래 이어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일반 소비자가 한자나 라틴어로 기재된 이름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는 한약재 종류와 가공 형태에 따라 숫자로 정리된 코드를 부여하는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정한 표준이 제정되기도 했는데, 앞으로 시장의 혼란을 해소할 수 있는 유통 체계 구축을 기대한다.

경향신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39539 "의사 처방전 있어야 전자담배 산다고?" 금연법 강하게 미는 '이 나라' 랭크뉴스 2024.06.26
39538 정부·여당 뜻대로 했으면…‘화성 참사’ 아리셀, 중대재해법 피할 뻔했다 랭크뉴스 2024.06.26
39537 성매매 단속하며 몰래 녹음·촬영…대법 “적법한 증거” 랭크뉴스 2024.06.26
39536 전기차로 돌아온 ‘강남 싼타페’...韓 시장 돌풍 예고 랭크뉴스 2024.06.26
39535 참사 희생자 영정 자리엔 꽃만 덩그러니…신원 확인 아직 랭크뉴스 2024.06.26
39534 尹 대통령 “임기 내 100만명 심리상담... 국민 정신건강 국가가 챙길 것” 랭크뉴스 2024.06.26
39533 급증한 화물열차 탈선, 원인은 베어링 열 손상… ‘차축 모니터링 장비’ 도입 시급 랭크뉴스 2024.06.26
39532 복지차관 “의료공백 사과”, 의협 회장 “우리 탓 아냐”···질타 쏟아진 복지위 청문회 랭크뉴스 2024.06.26
39531 6·25 때 생이별한 3세·15세 남매… 56년 만에 눈물의 상봉 랭크뉴스 2024.06.26
39530 639마력에 제로백 3.3초…'괴물 전기SUV' 포르쉐 마칸 일렉트릭 스펙 보니 랭크뉴스 2024.06.26
39529 밤부터 제주·남부 다시 장맛비... 다음주 전국 본격 장마 랭크뉴스 2024.06.26
39528 서울 도심 결혼식인데 대관료 '공짜'…역세권 예식장 어디 랭크뉴스 2024.06.26
39527 전기차 ‘관세 폭탄’은 EU의 큰 그림?… 中, 유럽 현지 생산 박차 랭크뉴스 2024.06.26
39526 불붙은 ‘이사 충실의무’ 논쟁… “경영권 방어 정식 수단 없으니 꼼수 쓰는 것” 랭크뉴스 2024.06.26
39525 [단독]"모르는 번호 받지 말래서…" 참사 사흘째 아들 찾은 노모 통곡 랭크뉴스 2024.06.26
39524 尹 "정신건강정책 대전환"…100만명에 심리상담 제공 랭크뉴스 2024.06.26
39523 이자스민 “한국은 선택적 인종차별 국가···정치가 혐오·차별 증폭”[2024 경향포럼] 랭크뉴스 2024.06.26
39522 "어쩌다 한국이"...작년 마약사범 2만명 첫 돌파 랭크뉴스 2024.06.26
39521 화상 참사 20명 신원 확인 불가… “DNA 작업 진행” 랭크뉴스 2024.06.26
39520 박세리, 파리올림픽 골프해설위원 됐다…"열심히 다시 시작" 랭크뉴스 2024.06.26